“북, 핵협상 앞서 비핵화 재공약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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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미국의 6자회담 특사인 성 김 대사가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 최근 미국과 북한과의 직접 대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터프츠대 국제대학원의 이성윤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중단된 지도 5년이 넘었습니다. 미국은 본격 핵 협상을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사실 이런 요구는 핵 합의를 어겨온 북한의 전례를 보아 당연한 것 아닐까요?

이성윤: 너무도 당연한데 그 외교적 수식어가 의미가 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위험할까요? 북한에 대해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은 북한보고 내일이라도 나와서 '앞으로 당분간 미사일 실험, 핵실험 유예를 선포한다, 당분간 자제하겠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그런 선언만이라도 핵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2012년 2월 미국과 북한 간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죠. 당시 김정은이 집권한지 3개월 정도 밖에 안 됐을 시점이죠. 당시 합의내용은 이렇습니다. 북한이 당분간 미사일 실험,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 대신 미국은 북한에 식량지원을 재개한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그로부터 16일 뒤 북한은 인공위성 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놀랬다. 어떻게 불과 2주 전 미사일 실험을 자제하겠다고 선언한 북한이 위성실험을 할 수 있는가? 심지어 북한이 미친 것 아니냐고 말씀한 분도 있었다. 국제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더구나 북한으로선 식량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합의를 체결한 지 16일만에 이렇게 나올 수 있나? 비합리적 집단이 아니냐? 이런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이것 역시 북한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북한이란 나라는 거짓말과 연막전술이 체제의 핵심 대외전략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인식이라 생각됩니다.

기자: 그렇군요. 사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약속만 믿고 실망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죠?

이성윤: 과거 부시 행정부나 혹은 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아주 작은 제스처를 취했을 때, 이를 테면 영변 핵시설을 동결시킨다 또 우라늄 핵시설에 대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우라늄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냥 영변 핵시설만 동결시키겠다, 냉각기를 폭파시키겠다 이런 양보를 북한이 했을 때 북한과 심각한 대화를 하고, 북한에 대한 통 큰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2012년 2월29일에도 결국 북한의 진정성이라는 것은 장거리 미사일 실험, 핵실험을 유예한다, 당분간 안 하겠다 그 뿐이었습니다. 그런 거짓 약속은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지금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아무런 전제 조건없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이걸 미국이 받아들이긴 힘들죠?

이성윤: 북한 외무성에선 아무 조건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여러 번 말했죠. 반면 최소 2009년부터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핵을 포기하리라는 하나의 꿈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해왔지요. 현실적으로 북한이 내일 그냥 핵실험, 장거리 실험 유예하겠다는 선언만으로 미국이 협상장으로 달려가긴 힘들 겁니다. 북한이 어떤 식으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까요? 우선 영변 핵시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을 다시 들어오라고 하고, 영변 핵시설을 동결시킬 때 미국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대화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 경우 북한은 작은 것을 이루면서도 우라늄 핵시설이 영변에 있는지 다른 곳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계속 핵무기를 제조하고 핵 능력을 진전시키면서 또다시 대화를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

기자: 북한 핵 문제가 터진 지도 20년 이상이 흘렀지만 결과는 오히려 3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 실험이 보여주듯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성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전한 실패로 들어났을까? 지난 10여년간 북한의 도발, 핵 위협 차원에서 북한의 행동을 분석해보면 북한은 2000년부터 정기적으로 한 해 중 상반기엔 도발을 하고 하반기 들어선 유화공세를 펼쳐왔습니다. 즉 1~6월 사이 북한은 도발이나 핵 위협 등으로 한국과 미국 등 상대국에 큰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고 7월 이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와 협상을 제의하며 보상을 얻어내는 등 악순환을 거듭해왔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2006년, 2010년, 2012년이 그렇습니다. 우선 2006년10월9일, 노동당 창건일 바로 전 날이죠. 그날이 미국은 콜럼버스데이라고 공휴일이었죠. 그날 북한은 최초의 핵실험을 강행했죠. 당시 김정일은 미국 재무부의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압박책이 필요했는데 바로 이게 핵실험이란 긴장고조 전술이었다고 봅니다. 2010년 3월엔 천안함 북침 사건이 있었고 11월엔 연평도 포격이란 아주 수위 높은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아들 김정은 후계체제의 공고화라는 사활이 걸린 숙제가 있었습니다. 젊고 경험이 없는 김정은에게 군사적, 전략적 지도력을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강도높은 도발을 감행했을 걸로 봅니다.

기자: 그런데 북한은 도발을 하기 앞서 이를 위장하기 위한 연막전을 구사한 전례가 많았죠?

이성윤: 북한은 큰 도발이나 공격을 감행할 때 예외없이 바로 직전에 연막전을 펼칩니다. 예를 들어 2010년 3월초 북한은 남북간의 군사대화를 제의했습니다. 그런 뒤 3월26일 천안함을 북침시켰습니다. 그리고 11월11일에 북한은 금강산 관광재개와 관련한 회담을 남한 측에 제안했습니다. 그리곤 불과 12일 뒤 연평도를 포격했죠. 그리고 지난 10월4일 북한의 핵심 3인방이라 할 수 있는 최룡해, 현영철, 김양건이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 차 전격적으로 방한했는데요. 저는 그 때도 이들 3명의 한국 방문을 평화의 개막식이라기 보다는 도발의 전초전으로 봤습니다. 즉 북한이 또 다시 연막전으로 대화, 평화의 거짓말을 하면서 한국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화의 가능성을 비추면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무력도발을 일으킬 것으로 보았죠. 역시 불과 3일 뒤 10월 7일 서해에서 총격전이 있었죠. 북한은 이런 전략적 사고가 아주 발달돼 있고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잘 써왔죠. 한국과 미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 계속 반복적으로 당했다고 저는 봅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