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 전망과 관련해 컬럼비아 대학의 북한 전문가인 찰스 암스트롱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은 북한 정권의 창립 과정을 규명한 '북한의 혁명'이란 저서에서 북한을 김일성 일가가 경영하는 '가족국가'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요. 실제로 북한은 세계 역사에서도 선례가 없는 세습구조를 가질 정도로 아주 폐쇄적이고 후진적인 나라가 아닙니까?
암스트롱: 분명 북한은 경제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아주 문제가 많은 나라입니다. 북한은 가족국가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고, 국내의 우선순위가 바뀌어도 이에 제대로 부응할 줄 아는 융통성이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지도부의 폐쇄성 때문에 주민들의 욕구와 필요에 대해서도 수용적이지 못합니다. 따라서 북한에 개발된 독재는 주민들의 현실적 욕구와 점점 동떨어져 왔는데요. 이게 지난 수 십 년 동안 큰 문제였습니다.
기자: 오늘날 세계는 모든 나라들이 정치, 경제,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을 정도로 지구촌이 되고 있는 실정인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나라가 아무런 개혁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고 봅니까?
암스트롱: 사실 많은 사람들이 1991년 구소련이 멸망한 뒤 북한도 생존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까지 생존해왔다는 건 놀랄만한 일입니다. 물론 북한은 생존하기 위해 외부세계의 정보를 상당히 통제해왔는데요. 주민들은 대부분 외부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고, 그 덕에 북한 정권은 주민사회를 철저히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봇물을 이루고 여행이 자유로운 요즘과 같은 세계에서는 국가가 정보를 계속 통제하는 건 갈수록 점점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과연 북한은 좀 더 현대적인 국가가 될 수 있는가? 북한은 주민들에 대한 정보통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21세기에도 계속 생존해나갈 수 있을까? 또 정보통제가 이미 약화되긴 개방과 함께 더 약화된다면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을까? 만일 북한이 지금처럼 철저한 정보통제와 주민들에 대한 정보기구의 감시를 유지한다면 생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이 개방하고도 생존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기자: 설령 외부세계의 정보가 유입되고 주민감시가 약화된다 해도 다른 민주국가들처럼 조직적인 저항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북한 인민이 정권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암스트롱: 사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주민의 저항을 기대하긴 힘들지요. 하지만 한 두 가지 변화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나는 지도부 내부에서 나라의 방향이 바뀌길 바라는 사람들이 군부 혹은 당의 보수적인 인사들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북한처럼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구조에선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당파를 지어 지도부에 도전하는 것은 무척 어렵죠. 하지만 언제든 상황이 급속히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단 북한 사회가 외부세계에 어느 정도 개방되면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급속히 퍼져 모종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동유럽의 알바니아와 루마니아가 그런 예입니다. 지난해 중동을 뒤덮은 아랍민주화의 봄도 그런 예이지요. 따라서 북한에서 개방이 시작된 뒤 그 다음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하기란 무척 힘듭니다.
기자: 북한은 1970년대초까지도 남한에 비해 경제적 사정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부터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더니 오늘날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남한에 비해 뒤쳐져 있는데요. 북한이 이처럼 내리막길을 걷게 된 구조적이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암스트롱: 북한 체제는 영구적으로 지속하도록 고안된 체제입니다. 즉 김일성 일가에 의한 지배구조이지요. 그런 점에선 김 씨의 지배구조가 지속되는 한 정치적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이런 정치, 경제 체제가 변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물론 2001년과 2002년 김정일 시대에 경제 제도를 개선해보려는 시도가 있긴 했습니다. 아마도 현 지도자인 김정은도 경제개혁을 하고 싶었고, 지금도 그러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의 주된 관심사는 정권을 유지하고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겁니다. 그들은 외부세계, 특히 남한을 아주 위협적인 것으로 봅니다. 남한이 북한에 비해 월등히 풍요하고 잘 사는 나라라는 사실은 북한 주민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북한 주민들이 알면 이게 북한 정권에겐 큰 문제가 될 겁니다. 그런데도 북한 지도부는 경제개혁을 하려는 진정한 의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개방하면 특히 남한의 위협을 받게 되고, 정치체제 전반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오늘날 북한을 실패한 국가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암스트롱: 글쎄요. 실패한 경제국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북한의 국가자체는 기능하고 있지만 마치 정부가 없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같은 느낌을 줍니다. 북한에서 정부는 그런대로 기능하고 있고, 정권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기능을 살펴볼 때 북한은 국가로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봅니다.
기자: 지금 북한은 젊고 국정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이 지난해 4월 최고 권력을 이어받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의 국정을 지켜보셨을 텐데요. 선친 김정일에 비해 그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암스트롱: 그의 선친과 비교해볼 때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다소 예측이 불가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선 그는 대중의 눈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있다는 점에서 선친과는 무척 다른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주변에 있는 권력자들은 그가 할아버지 김일성의 모습을 닮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아주 의도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난 8개월 북한이 취한 여러 행동을 보면 선친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올 봄 남한, 미국과도 충돌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젊고 새로운 지도자이다 보니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그는 군사적 충돌도 모험하는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선친보다 공격적이고, 외향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잘 모르는 것은 경제개혁 등과 관련해 북한을 어떤 식으로 끌고 가고 싶어하느냐는 점인데요. 아직은 그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현재까진 그는 선친의 노선을 답습하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들어선 뒤 종전보다 더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 자신이 공식 행사에 부인을 대동하는가 하면 모란봉악단이 미국 문화의 상징이라 할 미키마우스 음악을 연주하고 일반 주민들은 한결 자유스런 분위기인데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봅니까?
암스트롱: 이런 것은 분명 김정은의 다른 통치 행태를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북한 정권의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김위원장은 언론에 비쳐질 자신의 모습을 의식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죠. 그가 왕년의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불러서 농구를 함께 관람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에릭 슈미트 구글회장이 아닌 로드먼이 김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난 미국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김정은이 선친과는 다른 통치 스타일과 공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보이진 않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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