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최근 4차 핵실험을 해서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유엔은 추가 제재를 마련 중인데요. 그런데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 핵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주로 경제부문, 특히 인민생활 부문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보면 인민생활 향상이란 주장도 구호정치로 볼 수 있을까요?
란코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향상에 대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듣기 좋은 구호를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역사를 보면, 인민 생활 향상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시대가 거의 없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이웃인 남한보다 잘 살던 북한은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지금 김정은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인민 생활수준을 향상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열심히 일하자는 연설만을 하거나, 열심히 일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만 한다면 아무런 결과가 없을 것 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나라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도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주민들에게 스스로 열심히 일 하려는 동기를 만들어주고, 노력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인민이 열심히 일할 이유를 느껴야만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결국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할 필요를 느끼도록 하는 방법은 시장경제 도입 방법 밖에 없습니다.
기자: 북한이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언제 강성대국을 이룰지도 불확실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강성대국'을 주민들한테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란코프: 과거 북한 주민은 구호를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은 사례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 대부분은 새로운 구호이든, 옛날 구호를 모두 무시하고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지도부가 구호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한 지도부가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김정은 시대의 북한 지도부는 사상 관리를 잘한 줄 모른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지도 않을뿐더러 김일성 시대의 방법을 여전히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구호나 명령을 통해서 주민들을 동원하고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였지만, 지금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북한 사상 일꾼들도 이러한 사실을 마음속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강성대국’과 같은 의미가 별로 없는 헛된 구호를 만들고, 일반 북한 주민들이 전혀 믿지 않는 선전 활동들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구호정치는 1960년대는 통했어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이번에 김정은이 강성대국을 언급하면서 "북한 자체의 힘, 기술, 자원을 통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즉 외부세계 도움을 받지 않는 '자강력 제일주의'를 제시했는데요. 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상호의존적인 상황에서 북한 자체 힘만으로 강성대국이 가능하겠습니까?
란코프: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지금도 자력갱생, 즉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 지도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잘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기자: 속마음은 그게 아니다는 뜻인가요?
란코프: 아닙니다. 그들은 불가능한 걸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느 정도 체제를 바꿀 생각이 있다고 할지라도, 김일성 시대에 남아있는 선전과 사상에 위배되는 말을 전혀 할 수 없습니다. 북한 정치를 보면, 그들은 해외투자 유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이집트 오라스콤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유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해외투자 유치와 같은 주장은 김일성 주석 시대 많이 운운했던 자력갱생이란 환상에 위배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빈 말을 반복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자: 새해는 김정은 이 집권 5년차에 접어듭니다. 지난 5년을 돌아볼 때 김정은이 집권한 뒤 북한이 국정수행과 관련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봅니까?
란코프: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마 100년 후에야 객관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에 문제점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은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의 기본 목적은 변함없는 현상 유지입니다. 현상 유지를 해야만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정책은 한계가 많고,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책 실수도 있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외부세계에서 지원과 투자가 많이 필요했을 때 막상 이와 같은 투자를 많이 제공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북 대규모 투자의 능력과 의지도 없는 러시아에 대해 환상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고위 간부와 인민군 고급 군인들을 많이 숙청하였습니다. 이것은 북한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정책도 많습니다. 농업에서 인센티브, 즉 동기를 부여한 포전담당제를 실시함으로써 식량위기를 거의 극복하였습니다. 장마당에 대한 단속을 하지 않고, 자발적인 시장화를 암묵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공업에서도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김정은이 고급 간부를 숙청했지만 일반 사람들에 대한 탄압과 단속은 심하지 않다는 것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결정적인 것은 과연 북한 지도부가 1970년대 중국처럼 개혁으로 알려진 정치적 변화를 할 의지가 있느냐 여부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정말 장기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면 경제 발전을 많이 가속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