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서도 북한의 장마당 세대의 이모저모에 관해 살펴볼까 합니다. 교수님 지적대로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주로 30대를 지칭하는데요. 이들은 장마당 세대가 아닌 다른 일반 주민들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행동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다를 것 같습니다. 장마당 세대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장마당 세대의 특징은 제일 먼저 개인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들은 진짜 자력갱생을 가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판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고위들을 비롯한 사법 기관에 대한 공포가 있지만 그 공포심이 부모 세대보다 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장마당을 직접 경험한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력갱생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관영 언론의 선전을 많이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국의 규칙이나 명령을 무시해도 되고, 자기 식으로 살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자: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국가가 제공하는 배급 제도가 아닌 시장이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인 만큼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그만큼 약하고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볼 수 있겠죠?
란코프: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복잡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장마당 시대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와 현실주의 때문에 정권에 대한 충성이 비교적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애국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돈의 힘은 정치권력 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없다는 것이 곧 민족에 대한 충성도가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과 달리 어떤 필요에 의해 조직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는 사법기관, 보안기관 등을 무섭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걸 너무 무섭게 생각하지만 장마당 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 다시 말해 부모세대와는 다르다는 뜻인데요. 장마당 세대는 국가가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이념보다는 돈벌이에 더 관심이 많겠죠?
란코프: 물론 그렇습니다. 제가 만나본 북한 사람들은 노동신문을 믿지 않지만 민족 자부심, 애국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체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보다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들에게 돈을 버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유일한 가치는 아닙니다. 그들은 애국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의 맛을 느껴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혹시 장마당 세대 가운데 요즘 북한의 떠오르는 부자인 신흥 자본가를 일컫는 '돈주'들도 출현했다고 볼 수 있고, 그만큼 빈부격차도 늘어났다고 봐야겠죠?
란코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디든 시장 경제를 채택한 나라이면 불평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 국가 사회주의 시대에도 불평등이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평범한 인민 보다 훨씬 더 잘 살지 않았습니까?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1990년대 국가 배급체제 마비로 식량위기가 가중되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장마당이 북한주민의 생명수단으로 변했고, 장마당이 성행하면서, 즉 북한경제의 시장화가 계속 되면서 과거에 그리 심하지 않던 빈부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정권과 관계가 가까운 일부 사람들은 새로운 부자들이 되었습니다. 제가 보니까 북한은 남한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합니다.
기자: 문제는 이들이 국가의 혜택대신 시장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오면서 과연 북한 사회변혁의 주체가 될 수가 있겠느냐 하는 점인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란코프: 제가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장마당 경제가 진행돼온 지난 20년 동안 북한 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권력이 아닌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북한 청년들이 출세에 대한 야심이 있다면, 가장 합리주의적인 방법은 노동당에 입당하여 간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이 있어야 잘 살 수가 있었던 시대가 김일성 시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노동당에 입당하는 게 아니라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더구나 북한에서 권력은 어느 정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힘이 많은 간부들은 잘 살기 위해서라면 비리를 저지르고라도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북한 간부의 공식적인 생활비는 4~5천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 월급으론 옥수수 1kg 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간부들이 입는 옷, 먹는 음식들은 보면, 그들이 잘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잘 사는 이유는 팔리는 상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권력은 바로 이렇듯 잘 팔리는 상품인 것입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이와 같은 ‘권력의 시장화’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자:방금 ‘권력의 시장화’란 새로운 개념을 언급하셨는데요. 이 말이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장마당이 성행하고 이를 통해 돈 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북한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이들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인가요?
란코프: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간부들은 권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돈으로 팝니다. 돈주들은 돈은 있지만 권력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돈을 주고 권력을 살 수 있습니다.
기자: 만일 개인주의 성향에 시장화 확산의 혜택을 누려온 장마당 세력이 급성장할 경우 김정은 체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란코프: 북한의 장마당 세력은 앞으로 김정은 정권을 위협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더 중요한 것은 장마당 세대가 북한 사회의 변화를 위한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입니다. 이 같은 변화의 기본 방향을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장마당 세대는 겉으론 주체 사상을 비롯한 당국의 공식 사상에 도전하지 않아도,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정책을 다른 어떤 정책보다 선호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그들은 북한 사회에 경제 변화를 초래한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