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광산물 수출론 경제성장 못해

북한이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중인 나선경제특구의 수산물 가공업체에서 직원들이 대게를 나르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중인 나선경제특구의 수산물 가공업체에서 직원들이 대게를 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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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이신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북한의 빈약한 무역 때문에 경제 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셨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오늘날 사회주의권 가운데서도 가장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중국이 이처럼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역 덕분 아닙니까?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무역량은 3조5천억달러가 넘었고, 미국 다음으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란 말이 나오는데요.

란코프 : 맞아요. 지난 20여년 동안 중국은 기적과 같은 고도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이 기적과 같은 성공을 초래한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중국 정부가 농민들로 하여금 토지를 자유롭게 경작할 수 있게 한 토지 개혁 즉, 협동농장의 해산입니다. 또 하나는 대외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정책입니다. 중국은 국토가 넓고 인구도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이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면 무역을 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중국에 비해 인구도 적고, 국토도 별로 넓지 않은 북한이 무역 없이 잘 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변: 북한이 무역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데는 자력갱생의 원칙 말고도 북한 경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해주셨는데요?

란코프 : 네,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북한이 생산한 물건 가운데 세계시장에서 잘 팔리는 물건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무역을 무시하는 김일성의 '자력갱생' 정책과 관련이 있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북한 경제가 효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 수출 구조를 보면 1차 상품인 광산물과 수산물이 대부분입니다. 세계시장에서 잘 팔리는 북한 상품은 말린 명태나 오징어와 같은 수산물, 아니면 석탄이나 철석과 같은 광산물입니다. 바꿔 말해서 이런 물건은 북한에서 가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수출한 물건입니다. 북한이 생산한 기계나 완성품은 품질이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습니다.

변: 구체적으로 예를 하나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란코프: 예를 들면 북한에 평화자동차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남한에서 들여온 자금과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에서 자동차 생산을 시도하였습니다. 사실상 생산이라기 보다 조립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 회사는 외국에서 들여온 부속품을 이용하여 자동차를 조립했습니다. 원래 이 회사는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자동차를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면 잘 팔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구조상 조립생산마저 문제가 많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북한에서 조립된 자동차가 고장이 자주 나고 품질이 형편없어 싫어하였습니다. 결국 평화 자동차는 북한에서만 광고가 많았고 북한 사람들에겐 팔 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계 시장을 뚫을 수는 없었습니다. 통계를 보면 지난 2003년 평화자동차는 1만대의 생산 규모를 갖추고도 실제로 생산한 차는 고작 314대에 불과하였습니다.

변: 결국 조립한 차도 문제가 많았고, 그나마 생산한 차도 중국에 팔 수 없어 평화자동차는 북한에서만 팔게 됐다는 말씀인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 제가 볼 때 한가지 방법은 북한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효율성이 없는 경제 제도를 버리고 대신에 중국처럼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시장경제 와 같은 새로운 경제 방식을 도입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이와 같은 방법을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시행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 역사가 잘 보여주듯,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와 무역이 없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중국도, 일본도 오늘날 대규모 무역을 해서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빈곤 국가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남한도 비슷합니다. 남한이 잘 사는 이유는 무역에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변: 만일 북한이 진정으로 개혁과 개방을 하고, 경제 체제를 시장 경제로 바꾼다면 지금보다 무역이 훨씬 늘어날 수 있을까요?

란코프 : 물론 그 경우에도 북한이 앞으로도 광산물을 수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광산물을 수출해선 북한이 경제를 키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나라에는 별로 찾아볼 수 있는 북한의 강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주 중요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 자원이란 다름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의 값싼 노동력입니다. 1960년 대 당시 아무런 자원과 자본, 기술이 없던 남한이 경제개발을 시작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값싼 노동력에 기반해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수출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1960년 대 남한은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이걸 국내에서 가공해 완성품을 외국으로 수출하였습니다. 당시 남한은 선진국가처럼 기술과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일인 옷 생산, 구두 생산을 주로 했습니다.

변: 교수님 말씀대로 1960년대 남한은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과 기술이 많이 들지 않는 경공업 산업에 주력하면서 수출을 했는데요. 그렇게 해서 1964년에 사상 처음으로 무역 규모 1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남한은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이 출현해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면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맞아요. 남한은 처음엔 경공업으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경험을 쌓은 남한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보다 더 정교하고 세련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게 바로 말씀하신 대로 자동차, 전자제품이었습니다. 남한은 처음 무역을 하던 1960년대엔 기술과 자본이 없던 시절 노동 집중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수출주도형 무역 전략을 택했고, 이를 기반으로 자동차와 전자제품과 같은 3차산업까지 발전시키면서 지난 수 십 년 동안 허덕이던 빈곤 국가에서 부자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북한도 남한처럼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조건이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지금처럼 잘못된 경제 체제와 지배계층의 그릇된 정책을 가지고 있는 한 남한이 채택했던 경제 발전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을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무역을 왜 이처럼 소홀히 해서 결과적으로 북한 경제를 후퇴시켰는지에 관해 란코프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