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수 년 째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북한 핵문제, 나아가 이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간 관계에 대해 헤리티지 재단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선임 연구원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미 중앙정보국에서 20여년 이상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관련 분석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올해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를 보면 미국에 대한 관계 개선의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클링너: 글쎄요. 신년사를 보면 미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북한을 압제하려 한다면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폐지하라고 언급한 게 그겁니다. 또한 연례 한미군사합동훈련을 언급하며 한반도 긴장과 대결을 유발한다고 비난한 대목도 있습니다. 즉 미국에 대한 언급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좋게 지내보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은 주체, 사회주의, 선군을 계속 강조하면서도 경제개혁에는 별 의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김정은 치하에서 북한이 2013년 3월 핵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병진노선도 실은 과거 1962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이미 정한 것이라 새로운 게 아닙니다.
기자: 북미 관계의 핵심은 북한 핵 문제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만 확인하면 언제든 대화를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아직까지 대화가 열리지 않는 것을 보면 북한 쪽 태도가 문제죠?
클링너: 맞습니다. 미국과 남한, 일본은 북한이 언제까지나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에선 비핵화가 유일한 목적인 6자회담에 복귀하는 데 별 흥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만에 하나라도 기존의 핵합의를 존중할 의사만 있다면 그게 바람직한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면 6자회담의 목적은 비핵화이지만 북한은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것이고, 헌법까지 고쳐서 자신들을 핵 국가로 명시한 상황입니다.
기자: 미국의 성 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1월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비핵화를 할 준비가 돼 있으면 북한과 양자회담을 할 준비가 있다고까지 말해 적극적인 대화의지를 보였는데요?
클링너: 성 김 특별대표의 발언은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등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발언과 일맥상통합니다. 미국은 언제나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만 의미있는 협상이 진행되려면 기존의 비핵화 합의에 대한 북한의 존중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기자: 지금 계속 북한의 비핵화 준수 의지에 대해 지적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이를테면 비핵화를 합의한 2009년 9월 공동합의나 2012년 2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중지에 관한 이른바 ‘윤달합의’ (Leap Day Agreement)를 지키라는 것인가요?
클링너: 우선은 2012년 윤달합의에 나온 합의사항부터 실천하라는 겁니다. 북한이 윤달합의만 잘 지켰더라도 양국 간에 긴밀한 협상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미국이 결과에 만족했다면 결국은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을 겁니다. 하지만 윤달합의가 나온 다음달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 합의를 깨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개입노력도 무산됐습니다. 2009년 9월 핵합의 공동성명에 이어 2012년 윤달합의 등 북한과 두 차례 합의하고도 북한이 이런 합의를 지키지 않음을 확인한 오바마 행정부가 먼저 북한에 손을 뻗치고 싶지 않은 까닭도 그래섭니다.
기자: 그러고 보면 북한이 지금과 같은 핵 불포기 입장을 버리지 않는 한 오바마 행정부의 남은 2년여 임기 동안 어떤 진전도 보기 어렵다고 봐야겠네요?
클링너: 글쎄요. 미국은 지금처럼 뉴욕의 외교통로를 비롯해 비공식적으로 양자 대화를 가질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이 기존의 입장을 상당히 바꾸지 않는 한 6자회담이 재개되긴 힘들 겁니다.
기자: 하지만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동안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요?
클링너: 그게 위험한 일이죠. 바로 그 때문에 일부에선 북한이 계속 저런 식으로 핵을 개발한다면 기존의 원칙을 접어두고 하루빨리 북한과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아무 것도 얻은 것은 없으면서 혜택만 주는 햇볕정책을 되살리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이 동원 가능한 모든 힘을 이용해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북한이 기존 합의도 지키지 않는 마당에 장차 핵 협정도 지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협상 무용론을 펼치고, 한국과 일본 등 동맹에 대한 방위를 미사일 방어망 등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자: 이런 북한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늘 거론되는 나라가 북한의 우방인 중국입니다. 중국도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을 하고 있지만 100% 완전하진 않죠?
클링너: 중국은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중국은 사실 대북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골치거리를 안겨준 나랍니다. 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 내에서 자행되는 북한의 대량무기확산활동을 방치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유엔의 대북제재에 100% 동참하지 않고 있으며, 보다 효과적인 유엔의 대북결의를 반대했을 뿐 아니라 문제의 북한 기관들을 제제 대상에 올리는 데도 반대했습니다. 예를 들어 2012년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미국과 한국이 40개에 달하는 북한 기관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3곳을 제외한 모든 기관에 대한 제재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추가로 37개 북한 기관에 대한 제재를 별도로 취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좀 더 강화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제재의 허점입니다. 즉 북한의 위반을 방조하는 기관들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게 중국계 은행이든 기업이든 예외 없이 말입니다. 우린 중국계 단체들이 유엔에 의해 금지된 활동에 간여하고 있다는 점을 압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현재 이런 중국 단체들이 빠져있다고 봅니다.
기자: 북한의 우방인 중국의 제재동참이 100% 이뤄지지 않아 북한도 유엔의 대북제재를 경시하는 느낌인데요. 하지만 미국이 2005년 북한 계좌를 가진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제재한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지 않았습니까? 미국이 지금이라도 이런 금융제재를 할 순 없을까요?
클링너: 말씀하신 대로 과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함께 방코델타은행에 대한 제재 조치가 아주 효과적이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북한 지도부 인사들의 금융거래를 봉쇄하도록 한 관련 법을 엄격히 시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선 시행하는 제제를 북한에 취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북한의 돈세탁방지 위반부분이나 달러화 위조부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인권위반 등 이런 것들을 미국이 밝혀내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미국은 과거 짐바브웨의 경우 북한보다 3배나 많은 기관에 대해 제재를 취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언급했지만 미국이 북한에 취할 수 있는 제재는 분명 지금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달리 북한에 대해 왜 아직도 제재를 충분히 취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이런 제재는 일반 북한 주민이 아닌 북한 지도부와 관련 범죄에 연루된 외국 기관 등에 국한한 선별적 제재입니다.
기자: 지금 금방 북한 지도부에 대한 선별적 제재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사실 지난해 북한은 유엔 차원에서 인권탄압에 관여한 북한 관리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권고한 조항이 담긴 대북인권결의안이 채택됐고, 그 과정에서 북한 측은 이를 무마시키려고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폈지만 실패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단순히 경제제재뿐 아니라 바로 이런 인권카드로 북한 지도부를 압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클링너: 당연합니다. 사실 많은 나라들이 북한의 강력한 대응 방식에 놀랐습니다. 과거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대한 제재 시 북한이 보였던 것과 같은 강경한 반응이었죠. 이걸 보면 지금까지 핵 문제에 가려 뒷전에 남아있던 북한 인권문제가 북한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장이 된다는 이유로 인권 문제를 저버려선 안됩니다. 북한의 조직적인 인권위반이 반인륜 범죄에 해당한다는 유엔의 판단이 어떤 사람에겐 놀랍기도 하겠지만 북한을 쭉 지켜본 사람들에겐 당연한 결과입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