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슨 “북, 혼합경제 뒷받침할 제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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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대담에서도 북한 경제 전문가로 존스 홉킨스 국제대학원(SAIS) 부설 한미경제연구소 북한경제연구포럼 의장인 브래들리 뱁슨 (Bradley Babson)씨로부터 북한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관해 들어봅니다. 북한에선 지난해 뭔가 경제개혁을 시도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눈에 띠지 않고 있는데요.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개혁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가 개혁과 수구 가운데 어느 편이라고 봅니까?

뱁슨: 저의 추측으론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본능적으론 젊은이들 편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관심이 많죠. 반면 늙은이들은 과거에 더 관심이 많고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길 거부합니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수구파 인사들에 의해 둘러 쌓여 있다는 점인데요. 그러다 보니 김 위원장이 개혁과 수구란 서로 다른 기대감 사이에 끼어있다는 점입니다.

기자: 북한에서 경제를 제대로 챙기려면 당보다는 내각이 힘을 갖고 움직여야 되지 않습니까?

뱁슨: 사실 1년 전만해도 북한이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앞서 당 대회를 열어서 내각이 경제전략을 짜는 데 있어 더 많은 주도권을 갖고, 경제를 좀 더 조직적으로 관리하도록 권한을 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군부가 맡던 경제 일부를 내각에 이관하는 게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와 당, 내각 간에 긴장이 유발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제정책 변화와 관련해 내각이 큰 힘을 받았다는 증거는 보지 못했습니다. 군부의 반발 때문이죠. 바로 이런 경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아온 게 군부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게 중대한 내적인 실패인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오늘날 북한에선 대다수 주민들이 국가공급이 아닌 장마당 경제에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더는 사회주의 경제라고 할 수 없겠지요?

뱁슨: 제가 볼 땐 혼합경제입니다. 북한엔 아직도 나라가 지시하는 국가 경제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맥주공장을 들어보지요. 몇 년 전에 연간 7만 킬로리터의 생산능력을 가진 북한의 맥주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7만 킬로리터 가운데 5만 킬로리터는 국가의 생산 할당량이었죠. 나머지2만 킬로리터는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국내 시장으로 나가거나 혹은 해외 수출용이었습니다. 이걸 봐도 한편으론 국가 생산할당량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런 국가 통제 밖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북한 기업들을 보면 이처럼 국가 할당량이 있지만 동시에 합법적으로 개인 차원의 사업활동을 위한 기회도 존재합니다.

기자: 다시 말해서 오늘날 북한 경제는 더는 사회주의 경제가 아니란 말씀이죠?

뱁슨: 맞아요. 혼합경제입니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경제인데 이게 문제입니다. 북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경제를 가지고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땐 그럴 수 없을 겁니다. 김정은과 지도부는 한국전 이후 생성된 북한의 현 경제체제론 또 다시 60년을 버틸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경제론 젊은이들이 원하는 경제도, 주민 생활의 향상도 이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 사회나 경제가 다른 외부 나라와 관계를 구축하면서 경제의 근본 틀을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기자: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 경제가 직면한 문제점을 설명해주시죠.

뱁슨: 현재 북한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이른바 경제관리 기관들이 전부 국가 주도의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세금 부문이든 예산이든 아니면 금융부문이든 이런 공공부문을 관리하는 제도가 시장의 수요를 충족하도록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투자라든가 돈이 필요한 금융부문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안 돼 있습니다. 민간 부문이라면 보통 이런 경우라면 은행에 가서 필요한 자금을 빌릴 수도 있죠. 또 은행은 민간 부문의 저축을 관리하고 정부는 공공 부문의 저축을 관리해 사회간접부문의 투자 같은 것에 활용할 수가 있죠. 바로 이런 자원을 효율적으로 할당해서 투자라든가 생산성에 활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것을 다룰 수 있는 금융제도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볼 때 북한의 가장 큰 취약점은 현재 혼합경제를 운용하면서도 혼합경제 혹은 시장경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해나갈 수 있는 금융 부문과 관련 법 분야의 경제기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기자: 이처럼 혼합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금융제도를 갖게 되면 북한 지도부가 위험한가요?

뱁슨: 그럴 경우 사업 결정은 정부가 아닌 개인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은 북한도 2002년과 2003년 장마당을 합법적으로 용인했을 때 부분적으로 그런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즉 북한 당국은 개인 사업자가 필요한 국가가 공급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스스로 자원을 구하는 걸 허용했죠. 반면에 경제관리의 구조를 살펴보면 북한 기업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즉 기업들이 뭘 어떤 식으로 할지 아주 막연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런 저런 교역이나 사업이 눈에 띄었지만 합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의 보호 아래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당시 북한은 점점 시장화 경제로 나가고 있었지만 이런 시장을 제대로 성장시킬 만한 제도가 없었던 것이죠. 당시 시장에 종사하고 이를 통해 혜택을 받는 주민들이 많다 보니 이를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죠. 당국이 지시하고 조종하는 경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이처럼 대세는 시장 경제로 나가고 있었지만 북한 정부 차원에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금융부분을 총괄할 수 있는 중앙은행을 갖추지 않으면 북한이 거시 경제를 관리할 방법은 없습니다.

기자: 북한도 서방 나라들처럼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뱁슨: 지금 북한이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중앙은행처럼 기능할 수 있는 중앙은행입니다. 현재 북한에는 군 경제나 당, 무역일꾼을 위한 별도의 은행은 있어도 이런 은행은 중앙은행에 보고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든 중앙은행을 통하지 않고는 화폐 정책을 취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거시경제 관리 측면에서 딱 갇혀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경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구조가 필요한지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물론 박봉주 신임 총리가 주위에 능력이 있는 사람을 불러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당과 군대가 이런 금융 제도적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국방위원회의 정치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자: 그런데 아무리 북한이 이런 경제제도를 갖추고 경제 개혁에 나선다 해도 국제환경이 안 좋으면 안 될 텐데요.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북한이 핵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고립에 처한 상황이라면 경제 개혁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뱁슨: 맞습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좀 더 긍정적인 경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경제를 개선하려면 외국 투자와 외국의 원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북한 자체론 돈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부정적인 경제관계를 유지해선 국내 경제개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요. 설령 북한이 어떤 경제개혁을 하고 싶은지 알아도 지금처럼 끔찍한 대외환경으로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데는 북한이 자초한 측면이 크지요. 북한이 현재 직면한 제재는 금융과 무역 부문의 제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특히 북한은 외환 거래부문에서 아주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도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은 대다수 주민들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장마당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북한 주민의 장마당 참여가 많으면 많을수록 북한 정부에게도 더 많은 개혁 압력이 되지 않겠습니까?

뱁슨: 제가 볼 때도 어느 정도의 사회적 압력은 북한 정부의 개혁을 유도하는 데 도움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댐에 물이 가득 고이면 더는 막아놓을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죠. 사회적 압력이 높아지면 북한 당국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휴대 전화기가 한 예인데요. 북한 당국은 휴대 전화의 사용 확대를 용인했습니다. 북한 주민 혹은 이익계층 간에도 휴대전화를 통해 서로 통신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죠. 북한당국도 일일이 주민들의 통화를 통제할 순 없습니다. 북한도 이런 사회적 압력에 부응해 일부 분야에선 단속을 늦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1990년대 초 베트남에서 일할 때 옛날 사회주의 경제를 유지하려는 수구파와 사업가적 생각이 들어찬 개혁적인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경험했는데요. 베트남의 경우 개혁파가 승리해 총리직에 훌륭한 경제 경험을 가진 개혁파 인사가 등용됐는데요. 공교롭게도 초기엔 월남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 차지했습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