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최근 7차 당대회 이후 남측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9일에도 북한은 정부, 정당, 단체 연석회의를 열어 남북한 당국과 정당, 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통일대회합'을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북한이 정말 대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 대화공세를 펴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을까요?
란코프: 사실상 현 단계에서 북한 측은 대남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거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남측도 사실상 대북관계 개선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 북한측은 남한과 관계개선을 할 의지가 없으면서도 이러한 유감스러운 현실에 대한 책임을 남한측으로 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측은 통일대회합에 대한 제안을 남한에 했지만, 북한 측은 남한 측이 이러한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이러한 대화공세를 통해 남북관계에서 위기에 대한 책임이 남한측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남북 긴장 상황은 다른 무엇보다 북한 측의 핵무기 개발에 의해서 초래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측은 북핵 문제라면 어떤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적어도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한이나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긴장완화정책을 실시할 수 없습니다.
기자: 북한은 앞서 남측에 대해서도 군사실무회담 등을 제의하지 했다가 남측의 거부로 무산됐는데요? 당시 군사실무회담 제의의 목적은 뭘까요?
란코프: 북한의 다른 대화공세처럼 군사실무회담에 대한 제안도 남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제안은 선전용 제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북한이 이와 같은 제안을 많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남한의 국내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남한은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준비를 시작한 느낌입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의 성공은 거의 확실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반면 선거에서 제1당으로 올라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당 등 야당 세력이 보수세력보다 더 힘이 세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내년 남한의 대통령 선거는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한은 야당의 성공에 어느 정도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북한측은 내년 남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자가 당선된다면 남한이 1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 대해 공짜로 많은 지원을 제공할 줄 알고 있습니다.
기자: 당시 남한 정부가 햇볕정책을 통해 상당히 북한에 지원을 많이 했죠?
란코프: 물론입니다. 실제로 남한에 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실상 북한의 희망대로 될 지도 모릅니다. 어쨌건 북한 정권은 이러한 희망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에서 야당의 성공을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 정부가 앞으로도 북한의 제안을 앞으로도 계속 거부한다면 야당이 남한 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비판할 수도 있고, 유권자들도 어느 정도 불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기자: 북한은 남측에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공세를 펼쳤습니다. 즉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와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하라는 공개서한까지 보냈는데요? 이같은 대미 공세의 목적은 뭘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미국에서도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라는 미지수가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에서는 공화, 민주당 대선 후보 끼리 지금 수십년 전부터 보지 못한 심한 대립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북정책에 대한 후보들의 견해가 주목할만 합니다. 공화당 후보자인 트럼프는 사실상 강경파이지만, 북한에 대해서 비교적 가벼운 정책, 즉 포용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트럼프에 희망을 거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대미 평화 공세를 통해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미국의 양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에 대북적대시 정책을 폐기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낸다고 해도 이런 공세는 트럼프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자: 북한의 이런 대화공세에 진정성이 있다고 봅니까? 아니면 국제사회 제재로 고립돼 있는 김정은 정권이 고립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일까요?
란코프: 제가 벌써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북한이 남한과 미국에 그런 제안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남한 선거와 미국 선거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북한에 유리한 국제상황을 마련하기 위한 선전공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남한 정부는 북한이 대화를 제의하면서 핵 문제를 뺀 채 연방제통일과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한 것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선전공세라며 일축했습니다. 이런 남측 주장에 동의합니까?
란코프: 물론 북핵 문제를 초래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핵을 체제 유지, 권력유지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타협책을 지금도,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남한이 북한과의 회담에서 핵문제 해결 안건이 없다면 회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으로 남북 회담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주장과 사실상 똑 같은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그래도 북한을 대화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북한은 핵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개발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동시에 남한을 비롯한 다른 정부와 여전히 회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평화 공세는 주로 남한이나 미국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북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회담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