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이 최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숙청하는 등 군부 인사들에 대한 일련의 숙청 작업으로 군부 다스리기에 나섰다는 게 교수님 분석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김정은이 공포정치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은 국내적으로 불안정한 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란코프: 물론 부작용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숙청은 쿠테타의 가능성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숙청 역사를 살펴보면 그 대답을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원래 숙청을 많이 했습니다. 1940~50년대 고급 간부들을 겨냥한 숙청도 많이 했고, 서민들을 겨냥한 숙청들도 많이 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김일성이 정권을 잡은 1950년대 들어서 숙청은 살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북한이란 국가를 창시하는 데 일조한 사람들 대부분이 처형됐습니다. 박헌영, 김두봉, 허가이, 박창옥, 최창익 등은 북한 공식적인 역사 자료에서 간첩이나 정파 분자로 기록됩니다.
기자: 하지만 김일성 시대에도 김일성에 반대하는 쿠테타 음모가 발각돼서 연루된 많은 인사들이 처형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네, 맞습니다. 김일성 시대에도 숙청이 없지 않았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사례는 1960년대 말 갑산파 숙청사건입니다. 갑산파는 김일성의 만주항일무장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금철, 이효순 등이 주요 인물이죠. 갑산파는 광복 이후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등 다른 계파를 차례로 몰아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갑산파는 흔히 빨치산파라고도 합니다. 그래도 김일성 시대엔 숙청을 당한 고급 간부들은 대부분의 경우 처형당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주민들이 지옥과 같은 정치범 관리소로 끌려갔지만 고급 간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숙청당한 뒤 일단 시골로 유배되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몇 년 후에 복귀되어 다시 간부가 되었습니다. 아주 대표적인 사례는 최관이라는 사람입니다. 만주 빨치산 출신인 최관은 1960년대 말에 인민군 총 참모장으로 지냈습니다. 갑산 사건 때, 그는 숙청을 당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행방불명이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광산에서 육체노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그는 복권돼서 중급 간부가 되고, 1980년대 들어와 완전히 복권 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한 번, 인민군 총 참모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김일성 시대에, 비교적으로 대표적인 숙청의 방법이었습니다.
기자: 김일성 치하 당시 고급 간부나 군인들은 자신들이 숙청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이들이 취한 가장 합리주의적인 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란코프: 그때는 자기가 숙청을 당할 줄 알면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었습니다. 일단 숙청 대상에 올라도 자기비판을 열심히 하고,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충성을 약속하면 됐습니다. 또한 유배를 가더라도 충성심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나중에 복권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기자: 하지만 이처럼 숙청 대상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던 김일성과 달리 지금의 김정은은 그렇지 않죠?
란코프: 맞아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일성 시대와 사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숙청은 대부분 죽음을 의미합니다. 숙청을 당한 고급 간부는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숙청을 당할 것 같은 간부들은 가만히 있기 보다는 도망을 가려 할 것입니다. 김정은 시대 숙청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확실히 처형당할 것이란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가장 합리주의적인 선택이 되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숙청 대상에 오른 북한 간부 일부는 김정은 체제에 도전하는 음모까지 꾸밀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김정일의 짜증이나 분노가 죽음을 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체제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김정은 정권에 도전한다 해도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정은의 숙청작업이 국내 안정을 강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해친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습니다.
기자: 문제는 김정은이 자기가 벌이고 있는 숙청작업이 안정보다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까요?
란코프: 김정은 제 1위원장은 작금의 숙청작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은 숙청을 결정할 때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극단적인 감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충분히 처형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숙청은 국내 안정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일은 역설적으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쿠테타나 정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지금과 같은 공포정치를 과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인데요. 어떻게 봅니까?
란코프: 알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탈린의 공포정치는 25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아마 김정은 정권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급군인이나 간부들을 제거한다면 좀 더 가벼운 정책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김정은 평생동안 이런 공포정치를 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김정은이 위험한 사람을 없애버린 뒤 공포정치를 중단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몇 년 후에만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