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선친 호전적 노선 그대로 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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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북한 김정은 체재의 현 주소와 문제점 등에 관해 브루스 벡톨 박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미국 국방연구원 정보분석관 출신인 벡톨 박사는 현재 안젤라 스테이트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고, 최근 <김정일의 마지막 나날>이란 책을 펴내 호평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4월 권력을 승계한 뒤 1년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외부세계에선 그가 선친 김정일과는 좀 다른 노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거리 로켓 실험과 핵실험 등 여전히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 실망을 안겼는데요. 일부에선 김정은의 행동을 보면 선친 김정일에 비해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벡톨: 우선 김정은은 이미 짜여 있는 지령에 따라 정치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김정일이 2011년 사망하기 전에 지도급 인사들과 함께 자신이 사망한 뒤 군사, 외교, 국내 정책 등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미리 지령을 준비해놓았다고 확신합니다. 자기 아들을 위해 말입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 같은 유훈에 따라 정치하는 게 분명합니다. 이를테면 김정일이 사망한 뒤 북한은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을 단행하더니 한동안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또 몇 달 전까지도 험한 언사와 낭떠러지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이런 행태로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선친과 그의 측근들이 써준 지령에 따라 국정을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김정은이 뭔가 다른 것 같다”고 말하는데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김정은이 선친보다 더 잘 웃는다는 뜻일까요? 그건 아니죠.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겉모습이 아닙니다. 그가 실제로 펼치는 정치를 보면 선친처럼 당과 군대, 보안부대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런 부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지금 보다 큰 불안이 나올 수도 있고, 북한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일종의 유훈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벡톨: 제가 볼 때 분명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선친처럼 돈줄도, 경험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김정일이 사망한 지 두 달 뒤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실험을 강행했는데 이는 그가 사망하기 전에 미리 짜놓은 수순에 따라 행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난 2월 전격 단행한 핵실험도 마찬가지 입니다. 북한이 근래 마치 미사일 실험을 할 듯 시위를 벌이다간 감추고 하는 식의 수법도 종전과 비슷합니다. 김정은이 이런 걸 하려면 선친이 하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됐을 겁니다. 김정은이 최고 권력을 장악한 뒤 당과 군, 정부 부처 여러 곳에서 인사를 단행했는데, 이것도 새로운 건 아닙니다. 선친도 그랬습니다.

기자: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의 행태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즉 선친과 달리 부인을 공식 행사에 대동했는가 하면 모란봉 악단이 서구 음악을 연주하게 하기도 하고, 최근엔 왕년의 미국 농구선수인 데니스 로드맨을 초청해 스포츠를 즐기는 등 뭔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벡톨: 맞습니다. 김정은은 선친과 달리 여러 형태의 음악을 즐기고, 부인을 공개적으로 대동하기도 하고, 미국 농구를 좋아합니다. 어릴 때 스위스의 국제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다 보니 이런 서구적인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어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펼치는 정책은 종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북한 정부가 현재 돌아가는 방식이 똑같습니다. 제가 볼 때 선친 김정일과의 차이는 김정은이 선천처럼 처음부터 권력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정부의 안정성은 김정일 때보다 더 의문입니다. 실은 그 점이 진정한 불안요인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안정이 중요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당, 군부, 보안기구에서 권력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데 아직 여기까진 미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직은 확고한 권력기반 과정을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선친 김정일이 통치할 때보다 지금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군사적으로 더 위협적인가요?

벡톨: 제가 볼 때도 그런 위협이 전보다 더 악화됐다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김정은은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등 끔찍한 지도자였지만 군사정책이나 외교정책을 보면 아주 꼼꼼한 측면이 엿보였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지금 자기 나름의 길을 추구하려 노력하지만 선친이 과거 권력을 장악할 당시 가졌던 국정 경험도 없고, 권력 기반도 확고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오판에 따른 위험은 김정은 쪽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2년이 정말 중요합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선친에 비해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벡톨: 김정은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는 지식이라곤 주변 측근들의 조언 정도입니다. 따라서 그가 판단 실수를 할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선친 김정일이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실수인데요. 지난해 2월 윤달에 북한이 미국과 맺은 합의를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합의가 나온 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했지요. 그게 바로 외교부와 군부 사이에서 김정은의 판단이 혼란스러웠음을 보여줍니다. 불과 몇 주 뒤면 미사일 실험을 할 텐데 북한이 그런 합의를 미국과 했을까요? 김정일이라면 분명 그렇지 않았을 텐데 김정은은 이런 부분을 몰랐던 겁니다. 김정일이라면 미국과 그런 합의를 하려 했다면 미사일 실험을 취소했거나 아예 처음부터 그런 합의를 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미국과 합의를 하고도 몇 주 뒤엔 장거리 로켓 실험을 강행함으로써 김정은은 판단 혼란을 보여준 것이죠. 김정은의 이런 판단 실수가 북한의 위협을 고조시키는 겁니다. 그걸 보면 김정은은 분명한 통제권을 가진 지도자로 볼 수 없고, 아직 권력 기반을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기자: 현재 김정은 정권이 직면한 당면 최대 외교과제는 핵 문제 아닙니까? 미국은 북한의 대화 손짓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먼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비핵화 의지를 내보였지만 지금은 공공연히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며 버티고 있는데요.

벡톨: 제가 볼 때 북한이 그렇게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확실한 사실은 북한이 오랜 숙원인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북한이 말로는 핵 폐기가 목표라고 할지 모릅니다. 또 그런 문서에 서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절대 모든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은 또 핵보유 현황을 미국과 유엔 등에 결코 투명하게 밝히지 않을 겁니다. 북한은 핵을 국방의 근간으로 보기 때문이죠. 북한은 핵을 담보로 대화하고 싶어하고, 미국과 남한, 비정부 단체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싶어합니다. 게다가 핵 문제를 풀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핵이 김 씨 가문의 유산이란 점입니다. 북한을 핵국가로 만드는 것은 김일성의 꿈이었는데 이를 아들 김정일에 물려줬고, 이게 다시 김정은에게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김정은은 김 씨 가문의 유산인 핵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겁니다. 그가 핵을 포기할 길은 없습니다.

기자: 금방 북한이 핵을 국방의 근간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요. 핵을 가지려고 하는 데는 국방도 국방이지만 정권의 안전, 구체적으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정점으로 한 김 씨 정권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닐까요?

벡톨: 양쪽 다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핵무기는 김 씨 가문의 유산입니다. 북한의 지배계층 사이엔 이게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띱니다. 그들은 지금 핵을 아주 중요한 방어수단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인 가다피가 한때 핵을 가지려다 포기한 뒤 미국 등이 결국 그를 무너뜨린 뒤부터 북한은 더욱 핵에 집착합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한 가다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핵을 갖고 있는 한 어떤 강대국도 감히 북한과 전쟁을 하지 못할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기자: 올 봄 북한의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그리고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중국을 방문해 6자회담을 다시 열어 핵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최근엔 미국에 고위급 대화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걸 보면 김정은도 미국과는 대화를 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 것 같은데요?

벡톨: 그렇습니다. 북한은 분명 회담에 복귀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핵을 포기하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북한은 회담에 임하면 늘 자기들이 원하는 걸 취해왔다는 걸 잘 압니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북한과 했던 회담을 상기해보면 압니다. 그건 현재의 오바마 행정부가 아닌 전임 부시 행정부 때 일어난 일인데요. 당시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따라 경제 제재로 <방코델타아시아>에 묶인 북한의 자금을 풀어줬습니다. 게다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해제했습니다. 또한 미국, 남한, 일본 등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 북한에 대한 지원을 장려했습니다. 북한은 단지 회담에 복귀하는 것만으로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나중에 회담장에서 퇴장했습니다. 원래부터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거죠. 북한의 이런 성공적인 전술을 우린 이미 경험을 했고, 북한은 또 다시 회담에 복귀해 이런 전술을 쓰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북한이 회담에 복귀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을 포기하거나 국제사찰관들을 입국시켜 의심스런 곳을 사찰하거나 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 이를 허용해도 사찰대상을 숨기거나 은폐하려 할 겁니다. 제재를 풀고, 식량 등의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북한은 회담에 복귀하려는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