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최근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 70주년을 맞이해 사상 최대의 열병식을 벌인 배경과 관련해 살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올해 사상 최대의 열병식을 가졌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해마다 창건일을 기념해 열병식을 벌이는 까닭을 무엇이라고 봅니까?
란코프: 최근에 북한은 다소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북한은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사력을 과시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대외억제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기본적인 이유는 협박 외교를 위해섭니다. 즉, 북한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양보를 국제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국제 사회에서 북한을 위험한 국가이자 무서워해야 할 국가로 포장해서 보여주는 방법뿐입니다.
원래 북한이 군사력을 과시하는 방법은 간단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북한은 단지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기술적으로도 필요로 하는 실험이나 발사를 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외교적인 성과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이번에도 북한은 열병식을 거행했다고 생각됩니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려고 했는데요. 그런데 북한이 과거엔 미사일, 핵실험을 해도 통했지만 지금은 우방이던 중국이 이런 북한의 협박 외교에 호응하지 않으면서 지금은 이런 외교도 통하지 않죠?
란코프: 맞습니다. 지금은 그런 협박외교가 통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최근 중국과 남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이들 국가로부터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지원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현재 가장 중요한 포용 대상 국가는 다름아닌 중국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대북 지원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결코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편으로는 국제 사회에 자신의 군사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과 관계개선의 길을 막지 않기 위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할 수가 없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이번에 열병식에서 군사력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핵, 미사일 실험을 자제해 중국에게 도발로 간주되지 않는 일석이조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열병식의 기본적인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추가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김정은 제 1위원장은 열병식을 매우 선호합니다. 김일성은 49년 통치 기간 동안 열병식을 13차례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임기가 4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와 동일하게 지금까지 13번 실시하였습니다. 재임 기간에 비해 많은 열병식을 한 것입니다.
기자: 불과 4년 동안 13번이나 열병식을 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병식을 준비하기 위해선 인민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겠죠? 이번에 많은 주민들이 동원돼지 않았습니까? 새벽 5시부터 도시가꾸기에 총동원됐고 10만원씩 각출했다고 합니다.
란코프: 물론 북한은 많은 주민들을 총동원하였습니다. 이것은 북한뿐만 아니라 많은 권위의 국가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민주 국가에서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피를 무릅쓰고 행사에 참가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평양 시민들에게는 다른 선택과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기자: 이번 열병식엔 북한군 2만명과 10만여명의 주민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 특히 이번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준비한 목적은 뭘까요?
란코프: 이번은 역대 최고로 규모가 큰 열병식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이처럼 대규모 열병식을 꼭 해야 할 이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노동당 창건일로 여기는 10월 10일은 노동당 역사이므로 인민군이 직결된 행사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렇게 북한 역사상 규모가 큰 행사를 한 이유는 외교적인 목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 같은 당 창건일에 북한으로 대표단을 보낼 수 있는 중요한 나라는 중국 밖에 없습니다.
기자: 실제로 중국은 고위급 당대표를 보냈는데요. 그런데 우방이던 러시아도 대표단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란코프: 아닙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오늘날 러시아에서 공산당은 여러 야당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사실상 러시아에서 서로 다투고 대립하지만 자신들이 자신을 공산당이라고 부르는 사회단체는 15개 정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러시아 공산당들은 모두 야당 세력일 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의 정책을 많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감안한다면, 러시아 공산당 대표단이 열병식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중국은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공산당은 사실상 유일한 정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중국 대표단이 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 대표단이 이번 기회를 통해 몇 년 전부터 위기에 빠져 있었던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시발점으로 여긴 것입니다. 지금 중국 공산당을 대표하고 있는 류윈산 단장은 김정은 제 1위원장과 자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분위기는 친절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번 열병식은 중국을 겨냥하여, 중국을 포용하기 위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