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지난 6월 이후 계속해서 대외용 라디오 매체인 평양방송을 통해 난수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엔 10월 중순에도 내보냈습니다. 난수방송은 냉전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난수방송은 냉전시대의 산물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난수방송 분석가들 가운데는 방첩기관 직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많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라디오 수신기를 통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북한 뿐입니다. 누구든지 좋은 수신기를 사서 난수방송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덕분에 새로 잡은 난수 방송에 대한 자료를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비교 분석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비밀이 제일 많은 국가인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의 연구를 보면, 난수방송은 냉전 시대에도, 냉전시대 이후에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해외에 파견된 간첩들이나 멀리 위치한 군대기지나 초소에 비밀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수단입니다. 지금도 그 입장에서 보면 난수방송은 믿을 만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비밀 연락 방법보다 제일 중요한 장점은 수신자, 즉 받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난수방송은 간첩들에겐 최고의 통신 수단이겠네요?
란코프: 난수방송을 하면 간첩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난수방송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비싸지 않은 방법입니다. 물론 냉전시대에 첩보전이 많이 있었을 때 난수방송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 세상에 주권국가이면 거의 모두 정보기관이 있고, 해외에서 이웃 나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간첩들을 여전히 파견하고 있습니다. 북한이든 남한이든, 미국이든 러시아이든, 중국이든 인도이든 다 비슷합니다. 그 때문에 난수방송 자체가 냉전의 산물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렇군요. 그런데 북한은 과거에도 평양방송을 통해 난수를 읽어 남파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리곤 했지 않습니까? 그러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난수방송을 중단했죠?
란코프: 맞아요. 중단했습니다. 물론 저는 올해 북한측이 난수방송을 다시 시작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가설적으로 말하면 2000년에 방송을 중단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난수방송을 재개했다는 것은 남한 안에서 북한 간첩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 난수방송이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이 남한에는 당연히 북한 간첩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에 난수방송을 중단했을 때 이러한 간첩이 없는 듯이 행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혹시 난수방송의 대상이 남한에 있는 간첩들은 물론 제3국에 있는 간첩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란코프: 그럴 수도 있지만 북한 정보 공작원 대부분이 남한을 겨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제관계와 외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영화만 보고서 모든 국가가 세계 어디에나 간첩을 파견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벌써 말한 바와 같이 간첩을 운영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정국가의 정보기관이 모든 나라를 겨냥할 능력은 없습니다. 아마 세계 어디에나 정보활동을 하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몇 개의 강대국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간첩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인적 자원입니다. 간첩을 훈련하고 후방에서 암약하는 데 따른 지원 등에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는 오로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과 위험하게 생각하는 이웃나라에 간첩을 파견해 첩보활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경제력이 취약한 북한은 사실상 동아시아, 러시아 그리고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첩보활동을 할 능력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난수방송의 신호를 받은 북한 간첩들은 워싱턴이나 모스크바, 북경에 가끔 있을수도 있지만 압도적으로 남한에 많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기자: 북한이 2000년 이후 16년 이상 중단하다 갑자기 올해 들어 난 수 방송을 재개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재개한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가설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순수한 기술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파견된 간첩과의 교신 방법으로 난수방법만큼 좋은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정찰총국을 비롯한 북한 첩보기관이 다른 방법을 취해 봤는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난수방송을 다시 시작하기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가설은 정치적 이유로 재개한 것입니다. 제가 벌써 말한바와 같이 2000년에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에 난수방송을 중단한 것은 남북화해를 겨냥한 정치적 신호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남북관계는 지난 몇년간 안 좋았지만 특히 지난 1-2년 동안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난수방송을 재개한 것은 남북관계가 악화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