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최근 장성택에 대한 전격적인 숙청으로 격변을 맞이한 북한의 심상치 않은 상황과 관련해 미국에서 북한 지도부 연구의 권위로 꼽히는 켄 고스(Ken Gause) 해군분석연구소(CNA) 연구국장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제1위원장이 2년 전 세습권력을 차지한 뒤 그간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오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국가전복 음모죄'로 전격 숙청됐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장성택에 대한 숙청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신속히 이뤄진 점이 눈에 눈에 띠는데요?
가우스: 그렇습니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사태가 벌어진 시점입니다. 김정은은 현재 3단계에 걸친 권력 강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요. 1단계인 권력 세습을 거쳐 권력강화 2, 3단계 과정에 들어가면 김정은이 자신을 떠받들던 섭정 인맥을 점점 후퇴시킬 것으로 예상했고, 이런 단계는 앞으로 1년 정도 뒤에야 벌어질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김정은이 권력을 조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1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레 궁금증은 자연히 왜 김정은이 이런 권력 강화작업을 급속히 서둘렀느냐 하는 점이죠.
기자: 김정은이 왜 그렇게 서둘렀다고 봅니까?
가우스: 제가 생각하기론 김정은이 자신을 둘러싼 섭정 구조가 아마도 깨졌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간 김 씨 가문의 이익을 지켜온 고모 김경희가 정치적으로 점점 약화됐거나 아니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지요. 만일 김경희가 건강 문제로 허약해지거나 사망한다면 막강한 권한에 광범위한 후원조직을 가진 장성택이 권력을 장악하려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장성택은 기존 김정은 정권 안에서 또 하나의 정통성있는 정권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을 김정은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이번 사태의 원인과 관련해 한 가지 짚어볼 수 있는 가능성은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를 정점으로 한 자신의 유일영도체계를 완전히 확립하기 위해 장성택이란 또 하나의 권력 원천과 정통성을 사전에 분쇄했다는 겁니다. 자기 외에 누구도 권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은 겁니다.
기자: 그러니까 장성택을 신속히 제거해 자신의 절대권력 확립과 관련해 어떤 후환도 없애려 했다는 건가요?
가우스: 맞습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제거했다는 건 정권 내부에서 장성택이 자기 수하들과 계획하려던 것을 완전히 분쇄하려는 의지를 내보임으로써 북한 정권에는 오로지 김정은이란 하나의 권력 원천과 하나의 정통성 만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교훈을 주려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북한 정권은 장성택에게 권력남용이나 마약사용, 여자관계 등의 혐의를 씌운 겁니다. 북한 역사를 봐도 이런 혐의로 고위 관리를 숙청한 전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1950년대 후반 김일성에 반대한 종파사건이 벌어졌어도 이번처럼 최고 윗선의 사람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성택의 숙청은 북한 지도부에 대해 김정은 정권 내에선 그 어떤 반대세력의 준동을 막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번 사태와 유의할 점은 만일 이번에 확실히 장성택 일파를 분쇄하지 않을 경우 장성택에 충성하는 세력이 반격을 가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김정은이 지난해 여름 이영호 상장을 교체한 뒤 군부 내 일부 사령관의 반발 움직임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기자: 고모부 장성택을 신속히 제거했다는 건 그만큼 김정은이 고모부를 보호자가 아닌 위협적 존재로 봤다는 반증이겠죠?
가우스: 그렇습니다. 장성택을 그런 식으로 제거함으로써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것이죠. 거듭 말하지만 이번 일은 김일성이나 김정은보다는 권력이나 정통성이 덜한 김정은이 행한 짓입니다. 더구나 이토록 급속히 숙청을 추진한 것은 어떤 일정표에 따라 이뤄진 게 아니라 강요된 측면이 강합니다. 이를테면 고모인 김경희 건강 악화 등과 같은 변수가 작용한 것이지요. 만일 김정은이 이번 숙청 작업을 향후 1년 뒤에 좀 더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행했더라면 장성택은 아마도 좀 더 점잖게 퇴장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김정은 정권이 한 짓을 보면 장성택 숙청이 급하게 추진됐다는 점입니다. 장성택이 김정일 사후 지난 2년 권력의 통제탑 역할을 해왔음을 감안하면 김정은 정권이 신속히 행동에 나섰을 수밖에 없었을 걸로 봅니다. 김정은은 정권 내에 그토록 광범위한 자신의 인맥을 구축한 장성택을 제거함으로써 정통성있는 방식으로 지도부내의 세대교체를 단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봅니다. 또한 지도부 교체작업은 우선은 각 부의 부부장급에서 시작해 결국은 최고 윗선 인사까지 미칠 겁니다.
기자: 일부에선 김정은이 장성택을 제거하는 데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정적들의 힘이 작용했다고 하는데요?
가우스: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이번 숙청은 김 씨 가문 사람들이 주도한 것입니다. 장성택의 숙청 결정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인물로는 우선은 김정은이고, 김경희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의 숙청에 약간 반대하거나 혹은 처형에 결사 반대했더라도 결정과정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오랜 경험을 가진 냉혈 정치인답게 그녀는 장성택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숙청을 독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밖에 김정은의 이복 누나인 김설송이나 친형인 김정철도 관여했으리라 봅니다. 이들은 일종의 타격대 같은 것을 만들어 장성택을 은밀히 감시하고 조사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원홍 국가보위부장도 한 몫 거들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장성택의 숙청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 최룡해도 숙청의 낌새를 알아차릴 순 있었겠지만, 직접 나섰다기 보다는 김정은이 숙청을 단행하도록 군부의 강경파들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자: 이제 관심사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숙청한 뒤 그와 연계된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다룰지에 쏠려 있습니다. 현재 향후 이뤄질 숙청의 폭과 관련해 많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과연 일반의 예상대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지, 나아가 그런 숙청의 여파가 미칠 영향은 뭘까요?
가우스: 글쎄요. 물론 장성택과 연계된 사람들이 많고, 또 이들은 이번 숙청과 관련해 맨 먼저 영향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겠죠. 하지만 숙청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만일 장성택과 관련한 사람을 전부 조사 하겠다면 수백 명이 숙청당할 걸로 봅니다. 그 경우 숙청의 시작을 정권 내부, 이를테면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 고모인 김경희부터 할지 아니면 군부 내 친 장성택 인사들도 손볼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광범위하게 할지도 말입니다. 이번에 숙청을 일으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김정은입니다. 그래서 마치 불에 휘발유를 끼얹는 것마냥 북한 정권 내부에서 김정은에 대한 과도한 충성경쟁과 권력 경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정권 내 여러 파벌이 상대를 약화시키려 경쟁할 것이고 과도한 충성심 경쟁에 따른 여파로 광범위한 숙청이 이어질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김정은도 통제하기 힘들 게 될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선 장성택의 숙청과 관련한 북한 정세에 관해 켄 고스 해군분석연구소 연구국장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