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선 북한에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과 관련해 북한 지도부 연구로 이름난 켄 가우스 미 해군분석연구소 연구국장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이 숙청된 뒤에 이런 저런 궁금증이 계속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정은이 과연 단독으로 이번 일을 벌였느냐 아니면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군부 실세들의 도움을 받아 장성택을 제거했느냐 하는 건데요. 어떻게 봅니까?
가우스: 글쎄요. 저는 최룡해 총청치국장이 김정은을 위한 섭정 체제의 일원이긴 하지만 그를 정치적 거물이라곤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최룡해를 기회주의자로 봅니다. 최룡해는 북한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거대한 후원체제를 통제할 수 있다곤 보지 않습니다. 이런 후원체제는 장성택과 김경희와 연계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최룡해를 김정은에 강력히 천거한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김경희입니다. 분명하진 않지만, 아마도 장성택을 견제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최룡해 스스로는 중요한 정치적 인물은 못 됩니다. 제가 볼 때 최룡해는 김정은과 김경희와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만 정치적 인물로 건재할 겁니다. 최룡해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대개는 올바른 쪽에 줄을 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최룡해가 북한 정권 내에 다른 거물끼리 맞붙는 상황이 오면 누군가 강력한 후원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의 입지는 약화될 겁니다.
기자: 그렇군요. 흥미로운 점은 장성택이 숙청된 뒤 지재룡 주중 대사와 박봉주 총리를 비롯해 장성택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숙청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김정은이 현 단계에서 친 장성택 인사들에 대한 숙청을 재고했다고 봐야 합니까?
가우스: 그게 아주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최근 북한은 장성택과 친척 관계의 쿠바주재 대사와 말레이시아주재 대사가 소환되긴 했지만 지재룡 주중 대사는 그대로 남겨 뒀습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작금의 숙청작업이 생각보다는 특정인을 겨냥한 ‘정밀 숙청’(surgical purge)이며, 또한 기존에 펼쳐오던 정책도 극적인 변화를 겪지 않으리란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북한은 미국인 인질을 석방했는데요. 이는 미국에 대해 “봐라, 우린 김정일 시대 말기와 김정은 시대 초기에 정해진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법과 규칙에 따라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극적인 정책변화가 없을 것이란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경제특구와 관련된 것인데요. 특구와 관련된 사람이 평양에 소환되고 일부가 숙청됐을 수도 있겠지만 특구사업 자체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아직 상당한 경제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는 만큼 여전히 특구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길 바란다는 뜻일 수도 있죠. 만일 지금과 같은 정치적 혼돈 상황에다 경제 개혁까지 후퇴한다면 이는 북한에 재앙이 될 겁니다.
기자: 그렇군요. 장성택 제거 이후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다음 가는 실세로 자리잡았다는 점일 텐데요. 그런 만큼 군부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도 확고하다고 봐야겠지요?
가우스: 맞습니다. 제가 볼 때 북한 군부는 김정은에 의해 거의 장악이 된 상황이라고 봅니다. 지금 군부도 김정은을 뒷받침하고 있고, 김정은도 지금껏 군부를 화나게 하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을 단행했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선군 정치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물론 김정은이 앞으로 군대를 축소하는 방안을 찾게 되고, 군으로 들어가는 자원을 줄이려 한다면 문제에 봉착할지 모릅니다. 지난 5월, 8월, 9월 김정은이 단행한 군인사를 보면 상당한 인사 교체가 있었는데요. 특히 이들은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가 강한 군 사령관들입니다. 인민군 총참모장에 리영길이 임명된 것이나 장정남이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것이 그런 예입니다. 두 사람은 군부 내에 중요한 후원체제 없이 큰 사람들이죠. 물론 두 사람은 총정치국을 관할하는 최룡해보단 힘이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군부 내에 김정일에 반대할 만한 세력은 없다고 봅니다.
기자: 한때 군부 실세로 알려졌고, 최룡해보다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은 완전히 숙청된 것으로 바야 합니까?
가우스: 글쎄요. 최근 정치국 확대 회의 때 맨 앞에 장성택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김격식 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격식이 숙청됐다고 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김격식은 김정은의 비서실로 물러나 현재 군사고문 역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북한 군부 내 후원체제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자 김 씨 가문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 북한 군부엔 김정은에 반대하는 어떤 세력도 없습니다. 군 인사든 누구든 현재 작금 사태를 주시하며 김정은에 대해 뭘 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에 대한 충성경쟁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기자: 일부에선 장성택에 대한 잔인한 숙청을 감안할 때 김정은이 반대파에 대해 일종의 ‘공포정치’를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는데요?
가우스: 글쎄요. 앞으로 장성택과 관련된 숙청이 얼마나 확대될 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공포정치의 시대를 맞이할 것인지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에 대한 숙청 자체는 상당히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김일성 혹은 김정일 치하에서도 이런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 과거 김일성, 김정일 반대 인사들이 반당, 종파분자란 낙인이 찍힌 일은 있어도 장성택처럼 온갖 죄목으로 숙청된 사람은 없었죠.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실제로 장성택이 이런 죄를 졌다면 왜 일찌감치 그를 제거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가 오랜 세월 그런 일을 하도록 방치됐을까요? 그걸 보면 김정은은 최근까지도 장성택에 대한 어떤 조치를 취하기엔 힘이 너무 약했다는 걸 방증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김정은도 장성택의 과거 일을 몰랐다곤 볼 수 없기 때문이죠.
기자: 지금 말씀하신 대로 이번에 장성택에 대해 공표된 죄목을 보면 옛날에 묵인돼다 새삼 문제가 된 것들인데 이걸 문제 삼아 이번에 그를 숙청한 점도 의문이죠?
가우스: 그렇습니다. 최근 정치국 회의가 끝난 뒤 나온 장성택이 월권을 했다는 죄목을 보면 옛날에 행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가 일찍이 그런 월권행위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면 왜 그땐 제거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그를 모든 직책에서 해임한 정치국 성명이나 그의 처형과 관련한 글을 들여다 보면 여러 가지로 무리가 많습니다. 혐의 가운데 일부는 조작됐을 겁니다. 장성택의 부패 문제만 해도 북한에선 지금 누구나 부패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왜 이 난리를 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을 놓고도 북한 정권은 왜 좀 더 일찍이 장성택을 제거하지 못했고, 장성택과 같은 암적 존재가 자라도록 지금까지 방치하곤 이제 와서 그를 제거했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기자: 김정은이 2년 전 세습권력을 장악한 뒤 그의 후견인으로 불려오며 권력 2인자 행세를 해온 장성택 제거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견인이 없는 김정은의 권좌가 더욱 확고해졌다고 봅니까?
가우스: 그 문제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제거한 동기가 무엇이냐 하는 점을 따져보면 압니다. 이를테면 하필 이 시점에 장성택을 숙청을 했으며, 그것도 신속히 단행했는가, 또 이번 숙청이 김정은의 기분에 좌우돼 한 것이냐 하는 등등 말입니다. 김정은이 너무 자신감에 찬 나머지 장성택을 밀어내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장성택이 너무 권한이 막강해지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숙청을 단행한 것인지 말입니다. 만일 김정은이 자신감에서 이번 일을 주도했다면 앞으로 당분간은 정권의 안정기를 맞이하겠지만 아마도 불안정이 뒤따를 겁니다. 하지만 피해망상증에서 김정은이 그랬다면 이번 숙청은 정권에 불안정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단기적으론 정권의 불안정이 뒤따를 겁니다.
기자: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이 숙청작업을 잘 못 진행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가우스: 그렇습니다. 지금 나오는 징후를 보면 김정은이 장악한 것 같고, 정권은 안정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 숙청작업이 얼마나 광범위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만일 정권 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숙청 작업이 너무 지나쳐서 지도부 세대교체가 너무 급속하게 이뤄진다면 정권 내에 반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특히 권력을 가진 세력들은 반발하는 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겁니다.
기자: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