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서 처벌과 ‘택간이 심정’

지난 4월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황병서(왼쪽)가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4월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황병서(왼쪽)가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다. (AP Photo/Wong M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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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디로> 진행에 한영진입니다. 최근 북한 김정은 권력구축 과정에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불순한 태도"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고 한국 국가정보원은 20일 밝혔습니다.

김정은의 손과 발이 되었던 황병서까지 처벌대상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외부사회에서는 한동안 잠잠했던 북한의 간부 숙청이 또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평생 당과 수령께 충성을 다 했는데도, 종당에는 반동으로 숙청되는 북한 간부들의 속마음을 '택간이 심정'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북한은 어디로> 시간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처벌과 북한 간부들이 권력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속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20년만에 처음으로 북한군 총정치국에 대한 검열을 단행하고,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여러 정치장교들을 처벌했다고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황병서 총 정치국장의 신상에 이상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부터였습니다. 2014년부터 김정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황병서는 10월 13일 김정은의 만경대혁명학원 참관에 동행한 이후 북한 매체에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김정은은 류원신발공장과 평양화장품 공장, 3월 16일 공장, 금성뜨락또르(트랙터)공장 등을 잇따라 참관했지만, 황병서는 불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10월 8일에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추대 20주년 경축보고대회 때에는 최룡해와 박봉주 총리에 밀려 호명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징후들은 최근 황병서가 처벌을 받았다는 첩보내용을 뒷받침해준다는 게 한국 정보당국의 분석입니다.

북한에서 이러한 정치지각 변동이 감지된 것은 지난 10월 8일 평양에서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2차 전원회의였습니다.

이 전원회의에서는 한때 총정치국장에서 밀려나 혁명화까지 갔던 최룡해가 다시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 군사위원에 재선되고,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최룡해가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자리에 오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최룡해의 주재하에 당 조직지도부가 불순한 태도를 문제 삼아 군 총정치국에 대한 검열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당과 군, 정부기관을 조직장악하는 조직지도부를 틀어쥔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인 황병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입니다. 황병서의 과오로는 인민군 내에서의 김정은 충실성교양을 소홀히 하고 군기문란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북한의 전통적인 간부 숙청 및 처벌 방법인 '토사구팽' 즉, 사냥이 끝난다음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는 행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2014년에 최룡해를 밀어내고, 총정치국장 자리에 올랐던 황병서가 오히려 최룡해의 검열을 받는 즉,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황병서는 과거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부터 권력구축까지 도우면서 승승장구해왔습니다.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을 비롯해 황병서는 총정치국장 지위에 오른 뒤에도 현영철 인민군무력부장과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 군대의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는 데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황병서가 여전히 북한 매체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앞으로 좀 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견제대상이 되었음에는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렉 스칼라티우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사무총장은 황병서의 처벌과 관련해 다른 북한 간부들을 숙청할때와 마찬가지로 토사구팽식 방법을 쓰고 있다고 2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스칼라티우 사무총장: 김정은이 2013년 12월에 고모부까지 숙청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의 경우는 너무 심한 형편이지만, 이러한 경향은 모든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에서 있었습니다. 레닌이나 스탈린 시대도 그렇고, 구소련에서도 그랬고 고위 간부들을 이용해먹고, 임무를 다 마무리한 다음에는 숙청시키고, 또 마무리 되기 전에 숙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권력이 독재자에게만 있고 남이 권력을 가질 수 없는거지요.

스칼라티우 총장은 "현재 김정은은 젊은 간부들로 자신의 통치집단을 꾸리려고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노 간부들을 밀어내는 과정에 있다"면서 "앞으로 40~50대의 간부로 전면 교체하기 까지는 시간이 아직 좀 더 걸리겠지만, 노 간부들의 퇴장은 불가피해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스칼라티우 총장: 고위간부들의 평균 나이가 김정은의 나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뭐 40~50년까지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고위 간부들의 평균 나이와 김정은의 나이와 차이가 그렇게 크면 정권이 안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차이를 줄여야 정권이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과정에 많은 고위 간부들이 다치는 거지요.

남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의하면 김정은 정권하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약 340명의 고위간부들이 숙청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간부들이 숙청당해도 북한 간부들이 '영예로운 은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연좌제 때문이라고 스칼라티우 총장은 지적했습니다.

스칼라티우 총장: 북한은 아주 대단한 관료사회기 때문에 한명만 숙청을 당하는 게 아니라, 친척들까지 처형을 당할 수 있고, 숙청당할 수 있고, 그리고 북한이라는 체제에서 일반 주민들뿐아니라 고위간부들도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임명을 받으면 무조건 그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당했는데 나도 당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거부할수도 없지 않습니까, 거부하면 연좌제에 따라 친척들까지 당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그냥 위험한 임무라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연좌제 때문에 동료 간부들이 숙청되어도 북한 간부들은 반항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당할 지 모를 숙청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간부들이 숙청을 당하기 보다는 꾀병을 부려서라도 미리감치 사퇴하는 방법을 택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개인이 직장을 다니다가도 맞지 않으면 사표를 낼 수 있고, 또 직장을 그만둔 다음에는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간부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진 사퇴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 사는 한 북한 간부 출신 탈북인사는 간부들이 직위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특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탈북인사: 북한에서는 권력이라는 것은 일정한 위치에 올라가면 거기에 대한 보상이 많지 않아요. 도당에서 중앙당 과장, 부장으로 올라가는 순간, 그 권력과 물질적 부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대우나 그런 것들이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에 그것을 놓지 못하는 거지요.

그는 "노동당 비서급 대상 간부들은 전용차와 전용주택, 무료의료 혜택 등 풍족한 물질적 부를 누리고, 상명하복식 관료에 젖어 있기 때문에 그 특권의식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주변의 간부들이 숙청되도 본인은 "설마 내가 당하겠는가?"고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겁니다.

탈북인사: 북한의 간부들 입장에서는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고 이렇게 생각하는거지요. 우려는 하지만, 그 우려는 권력에 대한 야심과 권력을 가짐으로서 자기에게 돌아오는 혜택, 이런 것들이 눈앞으로 가리는 거지요. 그게 말하자면 마약이지요.

북한 간부들도 말년에 '영예로운 퇴직'을 원하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권력일선에서 물러난 노동당 부위원장들인 최태복, 김기남 등이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숙청과 처형, 좌천 등을 통해 불명예스럽게 사라진 사람들은 수백명에 달합니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피하기 위해 일부 간부들은 꾀병을 이유로 물러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간부들 속에서는 "병으로 사망한 간부들은 다행히도 자기 가족은 구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한 탈북인사는 "실례로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뇌출혈을 당해 의식불명으로 제대되었는데, 그는 다행히 자기 자녀들은 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봉건시대에도 왕이 바뀌면 스스로 벼술을 접고 낙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연좌제가 발목을 잡고 있고, 또 권력의 단맛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심리가 결국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간부들의 딱한 사정을 가리켜 요즘 외부 사회에서는 '택간이 심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보이지 않는 요새'라는 영화가 있지요. 이 영화는 1930년대 중반 중국 동북지방에 '비밀혁명근거지'를 꾸렸다는 항일빨치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이 영화에는 근거지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택간이라는 밀정이 활동하다 적발되어 처단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처형되기 전 연기를 하도 신통하게 잘해서 영화가 본 북한 사람들 속에서는 '택간이 심정'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즉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난감한 처지에 놓였을 때'를 빗댄 말인데요, 요즘 간부들의 마음이 이런 '택간이 심정'은 아닐까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북한은 어디로> 오늘 시간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처벌을 통해 본 북한 권력층의 속내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영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