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가까이 오면서 날씨가 바짝 춥습니다. 북쪽과 달리 겨울에 대학 시험을 보는 남쪽에는 '입시 한파'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학 입학시험, 입시를 보는 날이 다가오면 시험 날을 전후해서 날씨가 추워진다는 건데, 올해도 비켜가질 않네요. 이번 주 목요일이 대학 입학시험 날이었습니다.
남쪽은 대학 입시 제도가 몇 년을 주기로 바뀌고 대학 입학시험의 이름도 제도에 따라 바뀌는데, 본고사, 학력고사를 지나서 지금은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봅니다. 그래서 이런 대학 입사 고사로 어떤 시험을 봤냐 하는 것이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수능 세대는 아무래도 젊은 층이고 이에 비해 학력고사 세대는 좀 구세대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대학 시험 외에 세대를 가르는 또 다른 기준을 찾아보자면 바로 '가수'입니다. 요즘 활동하는 5-6인조 가수의 이름을 다 알고 있으면 신세대, 모르면 구세대... 이렇게 돼는 것이죠. 이 기준을 따르자면 저는 영 젊은 세대가 아닌데요, 요즘 이런 기준을 모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조카 이름은 몰라도 10대 여자 가수 이름은 물론, 애칭까지 모조리 외우는 30-40대 아저씨들!
이런 별종 아저씨들의 등장 배경엔 바로 올해 남쪽 가요계를 휩쓴 소녀 가수들이 있습니다.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는 이런 소녀 가수 열풍과 삼촌팬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곡은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입니다.
펄 시스터즈- 커피 한잔
펄 시스터즈, 우리말로 하면 진주 자매 정도 되겠습니다. 이런 여성으로 구성된 악단, 즉 그룹 가수가 나온 것은 1930년대, 저고리 시스터즈가 최초라고 합니다. 북쪽에는 여성들로만 활동하는 악단이 없지만 남쪽에는 이런 여성 악단들이 50년대 이후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무슨 무슨 자매 또는 무슨 무슨 시스터즈는 지금 보면 영 촌스럽지만 이들이 바로 반세기가 지난 오늘, 큰 인기를 얻는 소녀 가수 그룹의 시작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S.E.S와 핑클이라는 새로운 소녀 그룹이 등장합니다. 제가 남쪽에 왔을 때만해도 S.E.S 나 핑클을 모르면 정말 간첩 취급을 받았는데요, 요정 같은 외모와 깜찍한 춤을 추는 이 20대 여성 가수들은 대형 기획사에서 기획한 여성 그룹 가수 1호였습니다. 지금의 소녀 그룹들은 대부분 S.E.S나 핑클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친구들의 노래 한 곡 들어보죠.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
핑클 - 내 남자친구에게
그리고 2009년, 정말 텔레비전에는 수많은 소녀 그룹들이 등장했습니다. 고등학생 정도의 그야말로 '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 여성 가수들이 적게는 4명, 많게는 9명으로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하고 있는데,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소녀 가수 그룹의 구성원이 거의 100명에 달합니다.
한 가수가 농담 삼아 요즘 가요 방송에 가면 여고생 한 반을 볼 수 있다고 했다는데, 정말 요즘 활동하는 소녀 그룹들이 많긴 많습니다. 소녀 시대, 카라, 에프터 스쿨, 2EN1, 포미닛... 다 외울 없는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수십 개의 소녀 그룹들은 차별화된 매력이 있고 청순함이나 순수함, 또는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활동하던 기존의 여성 가수들과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친구들의 노래를 다 틀어볼 수는 없고 몇 곡 모아봤습니다. 맛보기로 조금씩 들어보시죠.
음악 MIX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소녀 그룹들이 어떻게 등장을 했나...? 그 배경에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라는 여성 그룹의 성공이 있습니다. 이 두 그룹이 지난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이런 저런 비슷한 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자그마치 구성원이 9명이나 되는 소녀 시대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누가 누군지 구별도 안 되고 저 얘들이 다 나와서 뭘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소시당 - 소녀시대 당'이라는 팬 모임이 있을 정돕니다. 이 소녀 시대와 원더걸스는 삼촌 팬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합니다. 소녀 시대의 노래도 한곡 들어보겠습니다. 소녀 시대.
소녀 시대 - 소녀시대
팬이라는 말은 아마 여러 번 설명 드려서 대강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특정 가수나 배우 등을 좋아하는 사람을 팬이라고 하는데, 사실 '어떤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 팬이에요' 이렇게 드러내는 것은 10대 학생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게 그 동안의 사회 통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30-40대의 성인 남자들이 자신의 조카 같은 이 소녀 그룹의 팬이라고 하고 나서니 삼촌뻘 된다고 해서 삼촌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사실 아저씨들이 나이 값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죠.
그런데 이 삼촌팬들은 팬 모임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고 공연도 직접 보러가고, 심지어 딸과 함께 활동하는 아저씨도 계시더군요. 좋아하는 그룹이 광고를 찍으면 그 제품을 광적으로 팔아주기도 하고 영상물을 만들거나 좋아하는 그룹 가수의 이름으로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단순히 음반을 사고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 이상으로 적극적인 활동입니다.
이 정도 얘기만 듣고도 뭐하는 짓이냐고 혀를 차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사실 저도 그렇게 공감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한 소녀시대 삼촌팬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소녀 시대가 좋으냐고 말입니다.
이런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이 아이들을 보는 것으로 위로가 된다.' 왜 무엇이 위로가 될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도전을 하고 성공을 했고 연예계라는 치열한 세계에서 잘 살아남은 소녀들에 대한 대견함 같은 걸까요? 이런 쪽으로 생각해보면 이해도 됩니다.
남쪽은 확실한 자본주의 경쟁 사회입니다.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일하며 남들과 동등한 기회를 받는 것은 좋은데, 그 기회를 잡아 남들보다 성공하고 잘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경쟁 사회 속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가는 30-40대 남자. 녹녹치 않은 인생 속에 밝고 상큼한 소녀 시대는 일종의 돌파구가 되어주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소녀시대 - kissing you
소녀시대를 다룬다니 여기 방송국의 분위기도 각각이었습니다. 30-40대 남자 직원들은 얼마 전부터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서 소녀 시대 한번 해라, 언제 하냐고 재촉이었고 조금 나이드신 국장급들은 주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베이비 복스라는 여성 가수들이 생각나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2천년 초 남북이 관계가 좋을 때, 남쪽의 여러 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남쪽에서 한참 인기 있었던 이 베이비 복스라는 여성 그룹도 함께 평양에 갔는데 이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때 유난히 썰렁했습니다. 남자 관객들은 멍한 표정, 또 여성 관객들은 약간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가수들도 당황했습니다. 문화차이가 너무 큰 거죠. 아마 오늘 들려드리는 소녀 시대나 이런 소녀 그룹들의 노래에 아직도 여러분은 비슷한 생각, 비슷한 반응일 겁니다.
그렇지만 또 이런 현상도 분명 남쪽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에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 담아 봅니다.
또 이런 바람도 가져봅니다.
소녀 가수들의 발랄하고 밝은 목소리가 힘든 인생의 돌파구까진 아니라도 청취자 여러분께 잠깐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곡은 소녀시대의 태연이 부르는 '들리시나요' 입니다.
태연- 들리시나요
이 노래와 함께 저는 인사드립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