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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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산책> 김철웅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줍니다.

김철웅 : 호주 사람, 사이먼 바커는 어느 날 우연히 한국 음악을 듣게 됩니다. 바커는 재즈 분야에서는 꽤 알아주는 드럼 연주자입니다. 그에게 이 음악을 소개한 한국 친구는 '끔찍한 음악'이라고 말했지만 바커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멋진 음악이라며 감동합니다. 바커가 들은 그 한국 음악은 전통 악기, 장구를 치는 김석출 선생의 연주곡이었습니다.

보통 한국 사람도 잘 모르는 이름이지만 김석출 선생은 장구의 명인입니다. 신이 내려서 무당이 되는 강신무가 아니라 집안 대대로 세습되는 세습 무당이었고 '동해안 별신굿' 이란 무속예술의 예능보유자이기도 합니다. 남한에서는 인간문화재라고 부르기도 할 만큼 뛰어난 전통예능의 명인이죠. 파란 눈의 외국인 바커는 자신에게 평생의 큰 감동을 안긴 그 곡을 연주한 사람, 김석출 선생을 만나러 7년 동안 17번이나 한국을 방문합니다.

이현주 : 바커의 이런 사연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제목은 '땡큐! 마스터 김', 우리말로 풀어보면 '감사합니다. 김 선생님'입니다. 철웅 씨! 이 영화에서 바커가 김석출 선생을 만나나요?

김철웅 : 2번 만났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바커가 김석출 선생을 찾은 당시 김석출 선생은 이미 84세의 고령으로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김 선생이 바커를 만난 지 3일 만에 이 명장은 세상을 뜹니다.

이현주 : 정말 영화로 기록될만한 얘기입니다. 어떻게 한국의 전통 음악이 그것도 굿에서 연주되는 그 음악이 파란 눈의 재즈 음악가에게 감동을 줬으며 그는 단지 그 곡을 연주한 사람을 만나겠다고 그 먼 호주부터 17번이나 한국에 왔을까요?

김철웅 :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바커가 그렇게 흠모했던 김석출 선생, 저도 이 영화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몰랐는데요... 현주씨는 김석출 선생 아세요?

이현주 : 사실 저도 영화 얘기를 듣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김철웅 : 이렇게 우리 전통 음악을 몰랐다는 민족주의적인 죄책감도 있지만 또 우리에게 있는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살았다는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일본과 호주 자본으로 제작됐습니다. 한국 영화계에는 아예 제안이 안 들어갔는지 아니면 제작사들이 얘기를 듣고도 외면했는지 모르지만 영화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는데요, 이런 영화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현주 : <음악산책>에서도 참 이런 우리의 전통 음악, 소개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오늘 준비해봤습니다. 첫 곡 비단길입니다.

선곡 1 비단길 2장

김철웅 : 청취자 여러분, 이 곡을 연주한 악기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가야금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고 연주한 사람은 남쪽의 대표적인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입니다.

이현주 : 남쪽에서 말하는 '국악'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음악과 전통 악기를 위해 새롭게 창작된 음악을 모두 포괄합니다. 그리고 황병기 선생은 40년 넘게 이 두 분야에서 모두 가장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김철웅 : 지금 들으신 곡은 황병기 선생이 1977년 작곡한 비단길이라는 곡 중 2장입니다. 이곡은 4장으로 이어져 있는데요, 클래식 음악의 악장과 비슷하게 황병기의 가야금 창작곡은 악장으로 나뉘고 각각의 악장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 청취자분들에게는 너무 전문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고 고루한 옛날 노래로 들릴 수 있지만 눈 감고 조용히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가야금 선율이 가슴을 잔잔하게 울리는 동안 묘하게 마음은 고요해 집니다.

선곡 2 시계탑 66

김철웅 : 황병기 선생이 2007년, 15년 만에 발표한 음반, '달하 노피곰'에 수록된 '시계탑' 들으셨습니다.

이현주 : 황병기 선생이 대장암 수술을 받고 나서 병실에서 서울대학병원 시계탑 건물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는데요,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4장을 함께 이어서 들으면 훨씬 좋은데요, 시간이 허락이 안 돼서 안타깝네요.

김철웅 : 황병기 선생은 1936년생입니다. 6.25 전쟁 중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대학에서는 음악을 배우지 않고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59년 서울 대학교에서 국악과가 만들어지면서 첫 가야금 강사로 출강했고 이후 많은 제자를 길러 내는 좋은 스승으로 새로운 가야금 연주곡을 만들어내는 좋은 작곡가, 연주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가 처음 가야금 곡을 작곡한 때는 1962년, '숲'이라는 곡이었는데 이후 비단길, 침향무, 미궁 등 많은 창작곡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곡은 이미 전통 가야금 곡들이 연주되는 무대에서 함께 연주되는 위치에 올라 있습니다.

이현주 : 황병기 선생이 높이 평가되는 부분은 그가 전통 음악이라는데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새로운 연주 기법들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만든 가야금 곡도 이 연주가 가야금이야? 의문을 가질 정도로 전통 음악, 전통 악기의 선입견을 깬 곡들을 만듭니다.

김철웅 : 이 곡 한번 들어보시죠.

선곡 3 미궁

김철웅 : 가야금으로 연주한 것이죠?

이현주 : 맞습니다. 한 때 이 노래를 3번 들으면 죽는다는 소문이 퍼져서 황 선생이 직접 나서 해명을 하기도 했는데요, 정말 좀 으스스하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지만 황 선생의 설명을 읽고 보니 좀 다르게 들리기도 합니다.

김철웅 : 황 선생의 설명을 좀 읽어 드리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거나 들으면 무서워지기 쉽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처음 서양 사람들이 왔을 때 그 파란 눈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들은 귀신같다고 질겁했고 내가 어렸을 때 여자들이 처음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발랐을 때 동네 얘들은 쥐 잡아 먹었다고 욕을 퍼부었다. 미궁에는 여러분이 그동안 다른 음악에서 익숙하게 듣던 소리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소리들이 많이 나오니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미궁은 새로운 음악 세계를 탐험하려는 모험심과 개척정신이 필요한 것 같다. 젊은이들의 험난한 산에 도전하듯 이 새로운 음악에 도전해 달라."

선곡 4 고향의 달

이현주 : 고향의 달. 박목월의 향토색 짙은 동명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랩니다.

김철웅 : 휘영청 밝은 저 달은 고향의 달일세, 천리를 떠나와도 날 따라오네, 고향 산천 그리는 이 마음이사 변할 리 없네.... 가사 좋습니다.

선곡 5 달아노피곰 5

이현주 : 철웅 씨, 북쪽은 가야금 음악 많이 연주되나요?

김철웅 : 그럼요, 가야금 하면 북한이죠. 북쪽은 가야금 병창이라고 해서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형태가 많죠. 사실 남쪽보다는 더 많이 들어요. 좋아서 본인이 찾아듣는다기보다는 음악도 다양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장비도 많지 않으니 어디서 나오면 그냥 듣는 거죠. 아마 다른 노래를 찾아 들을 수 있으면 남쪽과 비슷하게 될 겁니다.

이현주 : 그런데 북쪽에서 연주되는 전통 음악을 들으면 참 남쪽 것과 다르거든요? 같은 조상으로부터 온 것인데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철웅 : 전통은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지키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니 전통도 현재와 동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남북의 전통 음악이 다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많이 다르니 우리가 각각 '전통'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다른 것이죠.

이현주 : 네, 저도 동의합니다. 바꿔 말해보면 이렇게 천 년 동안 만들어진 전통도 변화시킬 만큼 분단된 60년의 세월은 길었다는 얘긴데요, 우리가 또 같이 살려면 그 배의 시간에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철웅 :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전통 음악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같아지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할 때, 이렇게 우리가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김석출 선생, 황병기 선생의 음악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이런 음악들 열심히 들려 드려야겠죠?

이현주 : 맞습니다. <음악산책>에서도 좀 자주 들려드려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네요. 저만 해도 전통 음악을 하려면 뭘 찾아봐야 할지 모르겠고 좀 지루하게 느껴지고... 그런 면이 있거든요. 다 저희가 가진 선입견이겠죠. 올해는 좀 열심히 들려드리겠습니다.

김철웅 : 마지막 곡으로 '달아 노피곰' 들으면서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진행 김철웅 이현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