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 김철웅의 음악산책] 1970년대 유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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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석: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철웅, 오중석의 음악 산책입니다.

오늘은 1970년대 음악에 대해서 얘기 나눠 볼까합니다

나훈아 ‘사랑’

철웅씨 지금 나오는 노래 아시죠?

김철웅 :

네 잘 알죠 제가 들었던 기억이 80년대 후반이 었던걸로 알고 있는데요 나훈아씨가 70년대 등장한 가수였군요

오중석 :

그렇습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는 사실 한국 가요계가 아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라고 보여집니다 특히 남진, 나훈아라는 두 걸출한 가수가 등장했는데요 이들 가수 이외에도 통기타 가수들 이런 실력 있는 가수들이 등장해서 70년대가 한국음악이 발전된 시기라고 보는 겁니다

제가 듣기로는 나훈아씨 노래는 북한에서도 많이 알고들 있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까?


김철웅 :

네 저도 어릴 때 학생 때 중국을 통해 들어온 테입을 들어 가만히 따라 불렀던 생각도 나고요 또 그 이런 노래를 알고 있는 학생들이 가장 인기 있을 만큼 북쪽에서는 꽤인기있는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노래를 통해서 받는 정서적 그런 것들이 저의 성장, 사랑, 연애 성장촉진에 쉽게 말하면 인간의 감정전달이라던지 인간애에 대한 감정이 이 노래들을 통해서 상당히 건전하게 성립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을 한편으로 해봅니다

오중석 :

네 70년대 북한에서는 어떤 노래들이 작곡되고 불려졌나요?

김철웅 : 네 북한에서도 남한도 물론 70년대가 가장 음악적으로 풍성한 세대였다고 한다면 북쪽에서도 사회적으로나 대외적으로는 70일 전투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국내 경제건설발전도 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문화의 발전 그야말로 영화의 소나기, 70일 동안 가곡 5편을 만들어내는 거의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다보니까 북한 역시 그 시기가 가장 문화 부흥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 걸맞게 많은 주옥같은 곡들이 나왔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북한 예술영화 ‘의용군 여전사들’에서 나오는 노래입니다 ‘생이란 무엇인가’

‘생이란 무엇인가’


오중석 :

네 이 노래를 들어보니까 혁명가요나 개인 찬양 일색인 노래만 있는 줄 았았더니 이렇게 개인의 감성, 특히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도 북한에 있었군요


김철웅 :

네 그렇습니다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물론 여러 가지 찬양, 선동 이런 것을 뺀 그런 노래들이 인간의 감성을 가장 자극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중석 :

네 이시기에 70년대는 역시 남진 나훈아 이외에도 통기타가수라는 특별한 세대의 가수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 차림에 티셔츠를 입고 통기타 하나 달랑 메고 나와서 자기가 연주도 하고 노래하는 그런 가수를 통칭하는데요 북한에서도 통기타 가수라는 말 아시죠?


김철웅 :

네 그럼요 그쪽에서도 통기타가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중적으로 기타의 열풍이 불었던 시기도 있었고 기타를 잘 연주하는 남자는 그쪽에서도 꽤 인기가 있죠


오중석 :

통기타 가수들 중에는 트윈폴리오라고 하는 남성 이중창단이 있었는데요 송창식, 윤형주라는 두 남자가수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트윈폴리오가 부른 ‘하얀 손수건’이라고 노래는 통기타가수 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인기를 얻었던 곡중에 하나인데요

지금 나오는 노래가 ‘하얀 손수건’이라는 노래입니다

트윈폴리오 ‘하얀 손수건’

김철웅 :

아 이곡 이었군요 참 이 당시 정서가 현재 북한 젊은이들의 감성과 제일 잘 맞는거 같아요 저도 물론 이곡을 한국에 온 이후에 들었지만 곡조에 담긴 정서가 그 당시의 음악이 저한테 좋았던 거 같아요 북한에서도 현재 일명 칠보산 악단이라고 이를 비롯한 협주단을 통해서 대개 이런 비슷한 정서의 음악들이 많이 창작되고 일반인들에게 널리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곡을 또 하나 추천하고 싶네요

북한의 정탐영화죠 ‘이름 없는 영웅’의 주제곡입니다 최삼숙씨가 부른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요 ‘승리의 기쁨안고 돌아가리라’ 들려드리겠습니다

‘승리의 기쁨 안고 돌아가리라’


오중석 :

자 그럼 통기타 가수 이야기에서 다시 분위기를 바꿔서요 김연자라는 가수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철웅씨도 이 가수는 아시죠?

김철웅 :

네 잘 알죠

오중석 :

김연자는 아주 뛰어난 목청과 훌륭한 가창력으로 한국가요계에 데뷔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다음에는 다시 또 일본가요계에 진출해서도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김연자씨가 평양공연을 갔다오면서 북한사람들한테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이름이 알려졌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김철웅 :

그럼요 김연자씨를 얘기하려면 아마 지금 청취자들도 어서 빨리 김연자 노래를 듣고 싶다고 생각하실겁니다 김연자씨의 평양공연은 이쪽말로 하자면 대박이었죠 너무 새로운 창법과 새로운 음악 매너와 조명 모든 것에 평양사람들이 넋을 잃었었고 그때 당시의 모든 것들이 우리 서로에 대한 오해, 불신, 서로간의 차이 이런 문화의 모든 것들을 해소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역할에서 김연자씨를 좀 더 칭찬해주고 싶네요

또 평양공연에서 가장 인기 있었죠 북한의 인기가요 휘파람을 자기만의 창법으로 불러 정말 큰 박수를 받았죠

김연자의 휘파람입니다


김연자 ‘휘파람’

오중석 :

네 김연자의 휘파람을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휘파람이란 노래를 접했을 때 참 좋은 노래구나 생각했는데 이곡을 김연자가 부르니까 더 좋더라구요 사실 김연자씨의 평양공연은 남한이나 일본 언론에서도 대서특필 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연자씨의 평양공연이 성사 될 때까지 북한 최고위층의 뜻이 반영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이야 어떻든 김연자는 우리 북한사람들한테도 인기를 얻은 아주 훌륭한 가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김철웅 :

네 김연자씨를 통해서 저는 그때 당시 몸은 비록 평양에 있었지만 또 다른 통일의 한 모습을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그 당시의 음악하나 노래하나를 통해 아 남한이 멀지 않구나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럼 계기가 됐던 그래서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자주하게 되네요

오중석 :

사실 70년대 음악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70년대가 그만큼 우리 한국음악계, 남북한을 통틀어서 한반도 음악계에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 시기였다고 봅니다

혹시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는 물론 아시겠죠?

김철웅 :

네 물론 알죠 제가 가수는 양희은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오중석 :

그렇습니다 통기타가수의 대표인 양희은씨가 부른 노래인데요 사실 이 노래는 양희은이 불러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지만 작곡자는 따로 있습니다 작곡자가 누구인지 아세요?


김철웅 :

잘 모르겠는데요

오중석 :

김민기라는 사람입니다 김민기씨가 이 곡을 작곡하고 본인이 직접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 발표를 했는데요 처음 발표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 김민기씨가 작곡한 아침이슬을 당시의 젊은 통기타 가수였던 양희은씨가 불러서 대단한 히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목청이 좋고 워낙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서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아마 70년대 최대의 히트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곡입니다

지금 나오는 곡이 ‘아침이슬’입니다


양희은 ‘아침이슬’


오중석 :

사실 이 아침이슬이라는 곡은 십여년 동안 금지곡으로 묶여있던 곡입니다 당시의 체재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금지곡이었었는데요 1979년 12.6 사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금지곡으로 묶여 있다가 그 후에 해금이 돼서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그런 음악입니다


김철웅 :

남한에서도 여러 곡이 금지된 시절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결국 지금은 모두 해금이 되었지만요 우리 북한에도 모든 노래들이 세계의 모든 노래들이 해금되어 자유롭게 부르고 들을 수 있는 이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

오중석 :

정말입니다 남북한을 통틀어서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세계의 모든 노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정말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김철웅 :

네 70년대 음악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마지막 곡으로 평양공연에서 큰 성공을 일으켰죠

조용필의 ‘친구여’ 들으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시간에 또 만나뵙겠습니다


조용필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