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산책> 김철웅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줍니다.

김철웅 : 북쪽도 설날 텔레비전에서 특집 방송을 하는데요, 이건 남쪽도 비슷합니다. 물론 내용은 다르죠. 중국에서는 우리 설에 해당하는 춘절날에 몇 시간씩 설 특집 생방송을 요란하게 하는데, 그것에 비하면 조용하지만 유명 가수, 배우가 총출동해서 노래하고 춤추고 오락(게임)도 하고 뭐... 다양합니다.
이현주 : 북쪽에서도 특집 방송하는 군요. 주로 어떤 방송을 해요?
김철웅 : 전통 놀이 소개, 민속 음식 소개 같은 특집 방송이 있어요.
이현주 : 요 몇 년 동안은 젊은 ‘아이돌’ 가수들이 설 특집 방송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서 나이 드신 분들이 정말 볼 것이 없다고 불평이 많았습니다.
김철웅 : 10대, 20대만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아닌데 좀 아쉬운 면이 있었죠? 올 설도 비슷했지만 이 방송이 있어서 아쉽지 않았습니다. ‘세시봉’, 70년대 명동에 있었던 음악다방 이름입니다. 이 세시봉 출신 가수들이 꽤 많은데요, 이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공연을 했습니다. 이름하여 세시봉 콘서트. 이들의 음악과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낸 50, 60대들도 또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어보는 20대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현주 : 잔잔하고 서정적인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는 우리 청취자들도 분명히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오늘 <음악산책>에서 세시봉과 통기타 가수들의 얘기, 노래 들려드립니다.
첫 곡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입니다.
선곡 1 ‘하얀 손수건’ - 트윈폴리오
김철웅 : 1960,70년대. 남쪽에서는 이 시기를 개발 시대라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시기입니다. 북쪽은 천리마 운동이 한창이었죠?
경제는 발전했지만 반대로 문화적으로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장기 집권으로 정치판은 답답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생맥주와 청바지, 통기타를 통해 자유와 낭만을 꿈꿨지만 수 없는 단속과 금지 속에 숨이 막혔습니다. 이런 청춘들의 숨통을 뚫어주는 공간이 바로 이런 세시봉 같은 음악다방이었습니다.
이현주 : 세시봉은 무슨 뜻인지 아세요? 불어로 좋다.. 이런 뜻인데요, 음악다방, 세시봉은 1950년대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시청 부근, 무교동에 있다가 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세시봉의 주인은 휴전 이후 암울했던 시기에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이런 음악다방을 열었다고 하는데요, 철웅 씨, 음악다방 가보셨어요?
김철웅 : 저야 북쪽에서 왔으니 가봤을 리가 없죠? 현주 씨도 못 가봤을 것 같은데요.
이현주 : 맞습니다. 저도 못 가봤어요. 음악다방은 저희 부모 세대 얘기고요, 80년대에는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음악다방은 약간의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면 음료수 한잔이 일단 나오고 그것을 마시면서 내가 나가고 싶을 때까지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술은 안 팔았다고 해요.
김철웅 : 그건 아쉽네요 (웃음) 방송을 보니까 그 시절에는 세시봉에서 아주 살았다... 이런 말씀하시는 분도 많던데 그야말로 입장료 내고 온 종일 집처럼 계셨던 거네요.(웃음)
이현주 : 맞습니다. 세시봉에서는 음악만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을 대상으로 노래 경연 대회도 했고 신인가수 선발 대회, 시낭송 대회 같은 행사도 자주 열었다고 합니다.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리를 마련해줬다는 얘긴데요, 이런 기회를 통해 세시봉에서 단골로 노래하던 사람이 바로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이장희 같은 가수들입니다.
김철웅 : 당시 통기타가 젊은이들 사이의 유행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이 가수들 대부분은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통기타 가수입니다. 세시봉에서 활동하다가 그것을 발판으로 직업 가수로 나서긴 했지만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는 다들 그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이현주 :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세시봉 무대에서는 트로트를 성악풍으로 불러서 유명해졌다는 세시봉의 큰형입니다. 가수 조영남의 노랩니다. ‘딜라일라’.
선곡 2 ‘딜라일라’ - 조영남
김철웅 : 조영남 씨는 참 특이한 사람 같습니다. 구수하게 생긴 생김새에 남한에서는 야상이라고 하죠? 이 군인들이 입는 잠바를 지금이나 그때나 항상 허름하게 입고 다닙니다. 노래 실력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탁월하지만 이상하게 대표곡이 몇 개 없습니다.
이현주 : 지금 들으신 딜라일라 또 80년대 발표한 화개 장터를 대표곡으로 꼽는데요, 평생 남의 노래만 부르지만 남의 노래도 조영남이 부르면 조영남 노래가 돼버리는 대단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입니다. 이 딜라일라는 원래 미국 가수, 톰 존스의 노래입니다. 번안곡이죠?
김철웅 : 번안곡,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은 처음 들어보셨을 거예요. 외국 곡을 그대로 들여와서 노랫말만 바꿔 부른 것을 남쪽에서는 번안곡이라고 합니다. 특히, 첫 곡으로 들었던 트윈폴리오 노래, 조영남 노래는 이런 번안곡이 많습니다.
이현주 : 북쪽에도 사실 번안곡이 있죠? 남쪽 노래를 가져다가 노랫말만 바꿔 부르는 곡도 많던데요?
김철웅 : 많죠. 그런데 번안곡이라고 따로 얘기 안하니까 모르는 거죠.
이현주 : 그렇군요.
김철웅 : 트윈폴리오는 윤형주와 송창식이 함께 활동한 남성 이중창단입니다. 1969년 음반 ‘하얀 손수건’을 발표하면서 경쾌한 통기타 선율과 아름다운 화음으로 순식간에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윤형주의 목소리는 참 잔잔한 미성이고 송창식은 탁 트인, 참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목소리입니다.
이현주 : 참 다른 이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요, 이렇게 만들어낸 화음은 윤형주의 목소리도 송창식의 목소리도 아닌 잔잔하고 따뜻한 음색입니다. 트윈폴리오 노래 한곡 더 들어볼까요. 웨딩케이크입니다.
선곡 3 ‘웨딩 케이크’ - 트윈폴리오
김철웅 : 1970년 초반, 남쪽 가요계는 트로트 아니면 미군 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수들이 주류를 이뤘고 이런 조영남이나 트윈 폴리오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대중 가요계로 대거 진출한 계기는 1973년, 가수 이장희가 발표했던 바로 이 노래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입니다.
이현주 : 이장희는 번안곡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곡을 만들고 노랫말을 붙였습니다. 노랫말이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솔직하고 직설적입니다. 반주도 통기타 대신 전자 기타와 드럼 등을 이용해 화려한데요, 당시 어니언스의 편지와 함께 젊음의 상징 같은 노래로 꼽혔습니다.
김철웅 : 바로 이 노랩니다. ‘그건 너’.
선곡 3 ‘그건 너’- 이장희
이현주 : 지금 들어도 가사가 직설적이에요. 그건 너라잖아요?
김철웅 : 그래서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한번 하죠. ‘그건 너’는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을 대표하는 노래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영화가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입니다.
이현주 : 저도 이 영화 기억납니다. 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불황기였다는 1974년 개봉해서 46만 명의 관객을 모은 작품입니다. 27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경아’라는 여인을 통해 70년대 한국 사회의 우울하고 어두운 풍경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김철웅 : 이 영화의 삽입곡이 전부 10곡인데요, 이 중 9개를 이장희가 부릅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한 소녀가 울고 있네', 지금까지 사랑 받는 좋은 노래들이 많습니다.
이현주 : 이 노래 한번 듣죠. <별들의 고향>의 삽입곡, 한잔의 추억입니다.
선곡 4 ‘한잔의 추억’ - 이장희
김철웅 :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노래도 많은데요, 벌써 시간이 다 됐습니다. 세시봉에서 활동하던 이 가수들, 평균 나이가 66세랍니다. 대단하죠? 세시봉에서 활동하던 그 시절이 40년 전 얘기입니다. 이제 팬들도 함께 나이가 들었습니다. 이날 세시봉 공연에는 세시봉을 드나들던 팬들도 함께 자리했는데 팬들도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이현주 : 저는 참 좋아 보이던데요.
김철웅 : 우리들도 나이 들면 어떤 가수 노래를 들으면서 젊은 시절을 기억할 날이 곧 오겠죠? 이분들은 세시봉이 고단했던 그 시절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북쪽의 젊은이들을 한번 생각해봅니다. 세계 어느 곳이나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도 젊은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로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것 하나 편할 것 없는 내 고향의 젊은이들은 더 하겠죠? 음악도 듣고 하고 싶은 것도 한번 해보라고 이런 세시봉 같은 음악다방 하나 그곳에 옮겨놓으면 좋겠다는 덧없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이현주 : 세시봉, 남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갑니다.
김철웅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이현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