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이현주의 음악산책] 세시봉과 2011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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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산책> 김철웅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줍니다.

김철웅 : 이번 주 남쪽은 '하늘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 이 두 가지가 큰 화제였습니다.

이현주 :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김철웅 : 신문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그야말로 눈 폭탄을 맞았습니다.

이현주 : 네, 눈 때문에 시장 지붕이 무너질 정도잖아요?

김철웅 : 그러게 말입니다. 동해 쪽은 눈이 1 미터가 넘게 왔고 또 눈이 좀처럼 오지 않는 울산이나 포항에도 50 센티 이상 눈이 와서 난리입니다. 이런 눈 소식 외에 또 이어지는 소식은 에짚트와 이란의 민주화 소식입니다. 30년 동안이나 이 나라를 통치했던 무바라크 대통령이 국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물러났는데요, 이런 민주화의 바람은 뜌니지에서 시작돼 에짚트를 거쳐 이제 이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것은 하늘의 일이라면 에짚트의 민주화는 사람이 해낸 일입니다.

이현주 : 설명 듣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이 해낸 일도 대단합니다. 에짚트 국민들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지만 무려 18일 동안 민주화 시위를 이어 갔고 결국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김철웅 : 무바라크가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날, 에짚트 시민 인터뷰한 것을 텔레비전 보도에서 봤거든요, 한 여성이 앞으로 우리는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갈 거라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 말이 그렇게 부럽게 들릴 수 없었습니다. 물론 독재자가 물러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에짚트가 민주화되고 또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까지 그 길은 험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민의 힘이 있는 나라이기에 그 미래가 기대됩니다.

이현주 : 우리 흔히 폭설, 태풍, 지진 이런 것을 천재지변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바로 이런 천재지변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오늘 <음악산책>, 지난 시간에 이어 1960,70년 대 남한 젊은이들의 쉼터였던 음악다방, 세시봉 얘기를 이어갑니다.

첫 곡, 김세환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곡 1 사랑하는 마음 - 김세환

이현주 : 세시봉은 1960년대-1970대 남한 젊은이들이 드나들던 음악다방입니다. 세시봉은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음악에 재능 있는 젊은이들의 등용문 같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이곳 출신 가수들이 방송에 출연해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40년 전 세시봉을 다시 추억하고 있습니다.

김철웅 : 세시봉을 드나들었던 50-60대 기성세대들과 또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어보는 20대까지 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좋은 음악은 시대와 국경에 상관없이 좋은 음악입니다.

이현주 : 철웅 씨, 꽃미남이라는 말 아시죠?

김철웅 : 알죠! 제가 꽃미남이었습니다. (웃음)

이현주 : 라디오여서 안 보인다고 거짓말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웃음) 꽃미남은 곱게 생긴 미남자에게 쓰는 말입니다. 주로 젊은 청년들에게 많이 쓰는 말입니다. 40대 이후에는 꽃중년이라고 합니다.

김철웅 : 이 노래를 부른 김세환 씨가 원조 꽃미남이었다고 하죠? 목소리도 참 차분하고 미성인데요, 여성들에게 참 인기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현주 : 네, 이번 설날 세시봉 공연에서 관객석에 있던 중년 여성들이 모두 김세환 씨 팬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부모님과 함께 방송을 봤는데, 아버지가 질투하실 정도로 어머니가 좋아하셨습니다.(웃음)

김철웅 : 김세환 씨 노래는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손 벽치며 불러야 딱 좋은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네요.

이현주 : 딱 그 시절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에 맞는 노래풍입니다.

선곡 2 축제의 노래 - 트윈 폴리오

김철웅 : 트윈 폴리오, '축제의 노래' 들으셨습니다. 지난 시간에서도 트윈 폴리오를 소개해 드렸죠? 세시봉 출신 가수 중 가장 처음 대중 가요계로 진출해 인기를 얻은 것이 트윈 폴리오였습니다. 1967년 송창식, 윤형주 두 명의 남자 가수가 트윈 폴리오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등장했는데, 통기타를 치며 좋은 화음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현주 : 그렇지만 이들이 부르는 곡은 대부분 외국 노래를 가져와 노랫말만 바꿔 부른 곡이 많았는데요, 이 노래 축제의 노래도 이탈리아의 유명 가수, 밀바 Milva의 노래에 노랫말을 붙여 만든 곡입니다. 그러다가 이 둘은 1970년 서로 각자 활동을 하게 됩니다.

김철웅 : 두 사람이 갈라진 뒤에는 윤형주는 가수보다는 방송 진행자, 기업가, 광고 음악 작곡가로 더 이름을 날렸고 사실 가수로써는 송창식 씨가 더 주목을 받습니다. 송창식 노래 한곡 듣고 얘기 이어가죠. 78년 발표한 노랩니다. '나의 기타 이야기'.

선곡 3 나의 기타 이야기 - 송창식

김철웅 : 공연 실황으로 들려 드렸습니다. 송창식 씨 노래는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 이렇게 듣는 것이 더 좋네요.

이현주 :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죠? 철웅 씨, 남쪽을 대표하는 가수 하면 누구를 꼽으시겠어요?

김철웅 : 당연히 조용필 아니겠습니까?

이현주 : 많은 가요 평론가들이 조용필과 함께 송창식을 꼽습니다. 송창식은 트윈 폴리오가 갈라지고 1970대 말부터 1980년 초까지 정말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외국곡을 번안해서 부르기보다는 자신이 곡을 썼습니다.

김철웅 : 특히, 노랫말을 참 잘 지어요. 지금 들으신 이 노래도 그렇지만 다른 곡들도 노랫말이 참 솔직하고 쉽거든요? 꾸미는 것도 없고 소박하고요. 그래서 가슴에 더 잘 와 닿습니다. 지난 시간에 세시봉에서 활동하던 가수, 이장희가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삽입곡을 불러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얘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이 <별들의 고향>이라는 영화와 함께 70년대 대표적인 청년 영화로 꼽히는 작품이 1975년 하길종 감독이 만든 <바보들의 행진>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곡은 모두 송창식이 불렀습니다.

이현주 : 이 영화 주제곡으로 송창식은 대중들에게 트윈폴리오가 아닌 송창식이라는 이름 세자를 확실히 기억하게 합니다.

김철웅 : <바보들의 행진>도 <별들의 고향>과 참 비슷하네요. 사랑 얘기이고 이런 젊은이들의 사랑 얘기를 통해 1970년대 답답한 사회 현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뇌를 보여줍니다.

이현주 : 영화 속에서 주인공 병태의 친구 영철이가 술만 마시면 동해로 고래 사냥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동해에서 고래 사냥이 가능합니까? 황당한 얘기죠? 아마 그 시절 젊은이들의 꿈을 이렇게 비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동해로 떠날 때 바로 송창식의 노래가 나옵니다. '고래 사냥'.

선곡 4 고래사냥 - 송창식

이현주 : 저는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끝 장면에 군대 가는 주인공 병태에게 여자친구 영자가 찾아옵니다. 영자가 훈련소 가는 기차에 타고 있는 병태에게 뽀뽀를 하려고 하는데 기차 창문이 너무 높아서 영자가 까치발을 해도 안 닿아요. 기차는 움직이려고 소리를 내고 기차 창문은 높고, 옆에 있는 헌병이 영자를 번쩍 들어서 도와줍니다.

김철웅 :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이현주 : 이 영화에서 부른 '고래사냥', 그리고 '왜 불러'라는 곡으로 송창식은 그 해 최고 가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80년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발표해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송창식 씨 노래는 참 다양한데요, 어떤 곡은 트로트풍이고 어떤 노래는 국악을 가요에 접목시켰고 또 어떤 노래는 포크나 록 같은 외국 노래 풍을 섞었습니다.

김철웅 : 가요로 참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는 얘기죠?

이현주 : 맞습니다.

김철웅 : 송창식 씨는 참 방황을 많이 했답니다. 부모님을 일찍 잃었고 삼촌과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서울 예술 고등학교라는 한국에서 제일 알아주는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다짐한 뒤 매일 기타를 연습했답니다. 그러다가 친구 따라서 간 홍익대학교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세시봉 주인이 보고는 한번 와서 노래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 오늘의 송창식을 만들었습니다.

선곡 5 새벽길 - 김민기

김철웅 : 지금 들으시는 곡은 김민기 씨의 노래, 새벽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노래, '아침 이슬'은 70,8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불린 대표적인 저항가요인데요,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바로 김민기입니다. 그리고 김민기도 세시봉 출신입니다.

이현주 : 1970년대 세시봉에서 음악으로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위로받던 젊은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걸 밖으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남한은 1980년대 격동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김철웅 : 요즘 세시봉 뿐 아니라 1970년대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자정 넘으면 통행금지였다고 하죠, 남자들은 머리도 못 길렀다죠, 여자들은 치마 길이도 단속했다고 하고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답답했다고 하는데 왜 그 시대를 얘기하면서 행복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현주 : 젊은 시절의 추억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김철웅 : 글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때가 그 시절보다 더 나아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생을 돌아볼 때, 그 순간이 그 인생의 시작보다 좋았다면 아무리 어려운 시절도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 탈북자들도 북쪽에서 살았던 얘기, 중국에서 고생한 얘기를 추억처럼 얘기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몇 십년 뒤에는 지금 이 어려운 시설을 추억으로 회상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현주 : 오늘 <음악산책> 시간이 다 됐습니다. 저희는 좋은 노래들과 함께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