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에서 처음으로 탄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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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겨울은 확실히 북한에 비해 따뜻했다. 더구나 어디 가나 더운 히터바람이 넘쳐 자연을 초월하는 전기 덕에 굳이 두터운 옷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렇듯 북한보다 기온이 높은 남쪽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겨울 스포츠 시설이 많아 나는 신기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유럽에나 있는 줄만 알았던 스키시설이 몇 군데다 있다는 사실 또한 매우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특권층의 스포츠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어느 날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왔다. 회사 선배들이 주말을 이용하여 스키 타러 가자고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울 근처도 아닌 강원도라고 해서 그 먼 거리를 어떻게 2일 동안에 오고 가나 싶었다. 북한 같으면 여행증 준비는 물론 설사 빠른 열차를 탄다고 해도 보통 열흘 넘게 걸리는 구간이어서 더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도로와 교통이 잘 돼 있는 남한에선 어디든 반나절이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말여행이 보편화 돼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남한 국민이 된 자부심을 크게 느꼈다. 드디어 우리 일행은 강원도 평창 스키장에 도착했다. 스키를 난생 처음 타본다는 흥분보다 나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던 것은 숙박시설이며 스키장 근처에 널린 스키용품 대여상점들이었다.

우선 숙박시설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혀를 찼다. 고급호텔 못지 않아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너무 과분한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송구할 지경이었다. 스키용품도 내 눈에는 최고급이었다. 현장에서 손 쉽게 빌려 쓸 수 있다는 편리함과 그런 서비스가 일부의 권력이 아닌 모든 만인에게 충실하게 제공되고 있는 남한의 현실에 일일이 감격했다. 스키장을 뒤덮은 하얀 눈은 내가 지금껏 살면서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겨울의 정취를 안겨주었다. 단순히 스키장 전체를 밝히는 현란한 조명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가 알았던 겨울이란 북한에선 배고픔을 더 아프게 허비는 고통의 추위였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위협하는 자연의 고압적 위엄이었다. 그러나 평창 스키장에서 본 남한의 겨울은 아주 달랐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를 위해 만났을 때 만발하는 웃음과 즐거움, 행복의 조화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부부 동반한 노인들도, 연인과 함께 손잡은 젊은이들도, 채 10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이들까지 모두 똑같은 흰 눈 위에서 삶의 여유와 흥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밝은 미소는 지치고 피로했던 일상의 이탈이 아니라 타고 난 삶의 한 부분처럼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 북한 주민들의 얼굴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자유로운 특권처럼 돋보였다. 회사 선배들은 스키 타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만을 대충 말과 손으로 가르쳐주고 곧바로 나를 상급자 코스로 몰아갔다. 스키란 넘어지며 배우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회사 선배들의 격려에 실려 리프트를 타고 높이 올라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자신이 스키선수라도 된 듯 우쭐했다.

그러나 리프트에서 내려 정작 발 밑으로 뻗어 내린 아찔한 경사를 굽어보게 되는 순간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고 말았다. 상급 코스가 아니라 죽음의 벼랑처럼 너무 가파르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모르고 남자들의 장난에 속아 올라왔던 여자 두 명이 눈 속에 처박혀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내 뒤에서 폭소를 터뜨리는 선배들이 더 얄미웠다. 그래서 벌벌 기어서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만신창이 되어 밑에까지 내려온 나는 그 오기로 다시 올라갔고, 선배들의 훈시처럼 넘어지는 요령으로 스키를 배우게 됐다. 그 해 겨울 평창 스키장에 세 번째로 갔을 때에는 제법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중급 코스의 스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때 함께 갔던 남한 친구들이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북한에서 스키를 꽤 많이 탔나 봐, 하긴 남한보다 더 추운 곳이니깐 당연하겠지" 그때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너희들을 보니 이젠 알겠구나, 당연한 것, 그 이해의 차이가 곧 남북 수준의 현실차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