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없는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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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로 보험 아줌마가 찾아왔다. 보험도 잘 들어야 한다며 지인이 특별히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보험이란 용어조차 몰랐던 나여서 보험 아줌마의 긴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아들었다. 내가 손해를 입었을 때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보험회사에서 내준다는 것이었다. 보험이란 그런 딱한 경우에 대비하여 정기적으로 소정의 돈을 지급하는 일종의 안정장치였다.

남한에는 그런 보험이 다양하다. 사망에 대비한 사망보험, 치료에 대비한 실속보험, 교통사고에 대비한 교통보험, 그 외에도 화재보험, 재난보험 등 살아가고 사업하는 과정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인들을 극복하도록 설계가 돼 있다. 내가 보험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게 된 계기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였다.

차 운전 중 실수로 앞차를 심하게 들이받았던 것이다. 실내에 에어백이 터지고 연기가 가득 찰 정도였으니 외관은 더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방의 차를 보았을 때는 기가 막혔다. 한 두 푼도 아닌 차가 고철덩어리처럼 흉측하게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달려가 보니 운전자는 거의 실신한 듯 눈 감고 신음을 내고 있었다. 순간 차도 차지만 사람이 다쳤으니 거기에 들어갈 돈이 더 많을 것이란 타산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사고차량 견인차가 달려왔다. 성가시게 자꾸 뭘 물어보는 그 견인차 기사에게 내 차를 버리겠으니 가져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나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다시 돌아보니 내 차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수리비용이 더 많이 들어갈 것이란 타산에 얼른 가져가라고 대답해버렸다.

그 날 보험사로부터 대인, 대물처리까지 다 합쳐 천만 원 조금 안 되게 나왔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많은 돈을 보험사가 다 내준다는 것이었다. 대신 내년 보험비가 20만원 정도 더 높아질 것인데 그것도 3년 동안 무사고면 다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보험회사 직원은 내 차 수리는 어디서 하겠냐고 물었다. 버렸다는 나의 대답에 황당해하던 직원은 당일 사고 견인차를 추적하여 내 차를 찾아 자동차 수리업체에 맡겼다. 그 수리 비용까지 보험사가 다 책임져 준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원상대로 복원되어 다시 나타난 내 차를 보니 북한체제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북한에는 보험이 없다. 단 하나 있다면 당과 수령의 신임과 믿음뿐이다. 그런 정치적 보험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무사항이며 평생, 아니 대를 이어 충성해야 하는 노예계약에 불과하다. 강요의 그 보험을 허무하게 믿고 충성의 가난으로 굶어 죽고 병든 사람들, 심지어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구하다 청춘을 바친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래선지 마치도 남과 북한의 체제차이가 보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북한은 개인의 운명까지 수령과 당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전체주의이다. 아무리 월 납부 정기조건 계약이라도 도움이 가장 절박한 시점에 물질적 보상을 해주는 그런 개인보험의 회사가 있다면 북한엔 더는 추상적인 수령주의 따위를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훈장이나 표창장, 선물과 기념사진 따위로 오직 충성에만 전념하도록 세뇌를 시키고 경쟁을 부추겨야 하는데 그런 명예의식을 산산이 깨버리는 실제적 보상의 물질적 제도를 북한 정권이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북한 정권은 허울뿐인 무상치료를 근거로 김씨 체제를 보험이 필요 없는 우월한 나라로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 자체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무시하고 박탈하는 독재라는 확신을 더 깊이 가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