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 관계자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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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서 지원하는 대북지원 물자들을 보면서 많은 의문이 들었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정권이 악의 정권인 줄 알면서도 왜 지원을 할까? 주민들에 대한 공정한 정권지원이란 있을 수 없는 독재의 나라인데 왜 인도주의 지원물자라고 이름을 붙일까? 대북지원은 곧 정권지원인데 왜 주민지원이라고 할까? 더구나 남한의 대북지원물자들을 총괄적으로 관리 분배하는 통전 부에서 근무했던 나여서 그 궁금증은 더 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통전 부 직원들에게 주는 매 달 월 공급은 모두 대북지원물자들인데다 타고 다니는 차량들도 남한의 현대 차들이었기 때문이다. 월 공급물자들은 달마다 틀렸는데 어떤 때는 생필품이 들어있었고, 또 어떤 달에는 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남한에서 보내는 대북지원물자의 품목이 일관하지 않아서였다. 통전 부 직원들은 월 공급을 받을 때마다 대남전사들의 건강은 남한에서 지켜준다며 멍청한 한국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사람을 태우거나 서류를 급히 날라야 할 때에도 남조선 덕분에 대남공작의 신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농담을 곧잘 주고 받았다.

남한뿐 아니라 미국이나 국제사회에서 보내주는 인도주의 대북지원물자들도 통전 부 직원들은 반드시 전시개념 차원에서 노획물자라고 했다. 어느 대북지원단체 초청으로 강연 갔을 때 내가 이런 말부터 했더니 분위기가 싸늘해지면서 청중 중에서 거짓말 하지 말라는 외침까지 들렸다. 나는 당황했다. 사람을 초청해놓고 왜들 이러나 싶었다. 마침 어떤 스님이 손을 높이 쳐들었다. 자기들이 보낸 대북지원물자들은 다 기억하고 있으니 그 품목 중 하나라도 정확히 설명해보라고 했다.

나는 2000년에 2000대의 자전거가 들어왔고, 몇 달 후에는 애기 분유와 기저기용 가재천이 들어왔다고 했다. 자전거 2000대는 김정일 명의로 대홍단군에 집단 지원한 1000여명의 제대군인에게 선물했고, 애기 분유 "매일맘마"와 폭 60cm, 길이 24m가 한 필인 기저기용 가재천은 통전 부 직원들에게 공급됐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기저기용 가재천과 관련한 일화도 알려주었다. 그때 통전 부 간부들이 분유를 다 가져가는 바람에 창고에 남은 것은 기저기용 가재천 뿐 이었다, 가져가겠다는 직원들이 없어 통전 부는 가재천을 외화로 팔기로 했다. 그런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북한 실정에 애기 기저기를 외화로 주고 채워주겠다는 수요층이 없어 직원들은 대부분 포기했다.

대신 다음 번 배로 받아가겠다며 손을 터는 통에 한 필에 10달러였던 가재천이 나중엔 2달러로 내려앉았다. 하여 싼 맛에 가져간다며 몇 명의 직원들이 통째로 가져갔는데 뜻밖에도 그들이 큰 돈을 벌었다. 북한은 생리대가 없어 대부분 여성들이 가재천을 쓴다. 장마당 상인들은 통전 부 직원들이 내다 판 가재천을 손수건 크기로 작게 잘라 생리대로 팔았다. 길이 24m에서 보통 수 십장의 생리대가 나왔기 때문에 한 필에 2달러가 아니라 7달러까지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다. 결국 가재천을 싹쓸이 해 간 통전 부 직원들은 3배 이상의 폭리를 보았다.

그 일화를 들었을 때야 대북지원 관계자들은 혀를 차며 분해했다. 나에게 질문을 들이댔던 스님은 "맞다. 폭이 60cm이고, 길이가 24m짜리 가재천이 맞다. 애들 쓰라고 줬는데 특권층의 돈벌이로 이용되다니!"하면서 강연 주최측의 무책임한 대북지원 관리체계를 꾸짖었다. 그날 강연 이후 식사 자리에서 나는 대북지원 관계자들에게 대북지원 의도와 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그들은 더불어 사는 사회가 선진국의 진짜 모습이라며 하물며 같은 동족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그들 못지 않게 분개했다. 인도주의정책은 못할지라도 외부의 인도주의까지 강탈하는 북한 정권의 혐오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