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런던 국제공항에 도착한 날은 2012년 6월 25일이다. '아시아문학저널' 대표와 시 축제 준비위원인 그의 부인, 이영은 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호텔로 가는 동안 대화를 하면서 이번 축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204개국에서 온 204명의 시인들이라는 숫자의 의미도 컸지만 노벨문학상, 부커상 수상자들과 축제기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로비로 내려오니 벌써 수십 명의 시인이 모여 자신의 책들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서로 아는 사이인 듯싶었다. 하긴 각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인 만큼, 세계문학축제들을 통해 낯을 익힐 기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오직 나만 외로웠다. 더구나 북한의 폐쇄성만큼이나 영어도 할 줄 몰라 다가오는 시인들과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화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언어 감옥'에서 나를 구원해 준 은인은 재미교포 출신 이영은 씨였다. 남편이 영국의 유명시인이며 아시아문학저널 대표여서 아는 시인들도 참 많았다. 그녀가 나를 북한시인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외국시인들은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영국 《파이낸셜 매거진》에서 내 사진과 시를 보았다며 알아보는 시인들도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Wole Soyinka)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고 싶었던 시인이었다"고 이야기하자, 북한시인에 대한 다른 시인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그 때 미국의 16대 계관시인 케이 라이언이 호텔에 나타났다. 이영은 씨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영문판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건네며 나를 소개했다. 케이 라이언은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며 가볍게 인사한 후 객실로 올라가 쉬겠다고 했다.
그런데 두 시간 후 그 시인이 다시 로비로 내려와 나를 찾았다. 그녀는 "내가 잠을 뒤로 미루고 내려온 것은 당신 때문"이라며 "침대에 누워 한 장 두 장 읽다가 단숨에 읽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집은 역사적 증언이다. 책을 괜히 봤다는 생각을 했다. 잠들 수가 없었다. 시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을 북한의 시인으로부터 받아서 충격이었다. 정말 슬펐다. 그런데 시여서 아름다웠다."
그 외에도 영국의 계관시인인 앤드루 모션, '시의 여왕'이라는 조셉 코트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북한에도 문학이 있고, 그것을 정권 유지로 악용하는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면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나는 선한 얼굴의 그 시인들이 인권이란 단어 앞에서는 투사로 돌변하는 것을 보며 한국의 작가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유명 작가, 시인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은 북한인권에 소극적이다. 마치 북한인권을 말하면 독자들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포기하고 보수 쪽으로 치우친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까, 매우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인권은 결코 정치적 용어가 아니다. 인권, 그 자체인데도 남한에서는 북한 인권이 보수진영의 정치적 독점물인 것처럼 포장돼 있다. 작가들의 양심과 지성까지도 뒷걸음 칠 만큼 남한 정치권이 한동안 북한인권을 왜곡한 결과인 것이다.
내가 이 점을 말해주자 축제에 모인 외국시인들은 머리를 흔들다 못해 혀를 차기도 했다. 한국문단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북한인권이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동안 정치의 목소리만 있었지 문화의 주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그 영예로운 일을 당신 같은 북한 망명작가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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