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나에게 문화의 힘만 깨우쳐 준 것이 아니었다. 북한인권을 세계에 알리려면 뉴포커스의 영어서비스가 필수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국내에서 아무리 탈북자매체로서의 전문성과 자신감을 피력해도 그 메아리가 국경 밖을 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판단됐다. 더구나 서방에서 본 남한의 대북주장은 너무 소외 돼 있었다. 분단국으로써 대북문제를 주도해야 하는데도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활용하고 그 잣대에 따라 대북정책도 휘둘리는 바람에 일관성이 부족한 탓이었다.
심지어 대북분석과 판단에서까지 사대주의 경향이 농후했다. 평시 탈북자들이 주장하던 내용도 해외 언론에서 전하면 국내 언론들이 특종처럼 인용 보도했다. 국내의 자산을 두고도 해외 언론의 가치를 빌리는 셈이었다. 나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탈북자들의 증언과 대북문제를 소개한 기사들만 일부러 찾아보았다. 그 중에는 해외 언론사 입장과 의도에 맞춰 탈북자 증언을 이용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분명 대북판단에 중대한 혼선을 주는 기사인데도 탈북자 이름을 빌려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면서도 오보의 책임은 공개적으로 탈북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뻔뻔한 언론도 있어 '탈북자들은 거짓말쟁이'라는 선입견이 전염병처럼 퍼져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해외언론의 기획기사에 끌려 다니며 경험과 상식에서 탈선한 증언을 장황히 늘어놓는 탈북자들 또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진실된 탈북자들의 주관과 주장을 대변하고, 그것으로 대북문제나 탈북자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만들자면 뉴포커스의 국제화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면 해외 언론 환경에 맞는 번역과 기사구성이 우선인데 그런 수준의 번역가를 섭외하기엔 뉴포커스 재정 형편으로써는 어림도 없었다.
진실은 모든 길로 통하는 법이다. 영국 방문기간 나의 영어 통역을 맡았던 셜리가 선뜻 무료 번역과 웹사이트 개설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녀의 번역은 역시 영국 옥스퍼드 대학 졸업생답게 흠잡을 데가 없었다. 물론 영어를 모르는 내가 아니라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그녀는 단순히 번역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외 언론과 독자들을 설득해야 하는지 표현과 기술의 방식을 알았고, 교류와 연계채널도 스스로 확보해 나갔다.
해외 지부가 만들어지자 뉴포커스 지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 예전에는 국내 언론사들만 인용 보도했었는데 미국이나 유럽, 중동에서까지 뉴포커스 기사들이 확대됐다. 기회들도 더 많아졌고 다양해졌다. 영국의 어느 유명 방송국에서 북한에 대한 영상 편집 물을 함께 제작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 방송이 나간 후에는 여러 나라들에서 미디어 합작 문의도 잇달았다. 세계인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외국의 유명신문사들과 기사 제휴도 하게 됐다.
미국의 어느 언론종합매체에서는 각국을 대표하는 언론사 50개를 선정했는데 그 중 뉴포커스를 북한매체로 유일하게 인정하고 유로계약도 맺었다. 그 통에 북한의 공개협박도 강해졌다. 나를 인격살해하기 위해 개인 사이에도 하기 힘든 온갖 거짓과 모욕을 다 했다. 나름 국가를 자처하는 북한 공개매체의 영어 수준은 뉴포커스의 국제화에 비할 수 없이 낙후했다. 역시나 폐쇄로 우둔한 독재의 부끄러운 일면을 보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런 상대적 비교가 뉴포커스의 국제화를 더욱 지원해주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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