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입국한 날짜는 2004년 6월 24일이다. 그날 한국 대사관 차로 북경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20분이었다. 이미 한국대사관의 보호를 받는 몸이었지만 나는 그 현실을 의식할 수 없었다. 내가 과연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과 뒤따르는 공포로 공항 곳곳에 배치된 군복 입은 중국 공안을 볼 때마다 극도의 불안에 떨어야 했다.
대사관 직원들도 매우 서두르는 눈치였다. 미리 비행기표를 떼고 기다리던 대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세관 검사를 마칠 때까지 걸린 시간 또한 불과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탑승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울렸을 때는 대사관 직원들이 나를 맨 앞자리로 몰아갔다. 여기만 통과되면 분명 서울로 가게 되는 것인가? 그 순간 나는 내 가슴의 박동소리를 난생처음 길게 들었다.
왜 그렇지 않으랴,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양의 중앙당 연락 부 부원으로 근무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살인수배자로 신고한 북한 보위 부와 중국공안의 끈질긴 추적을 받아야만 했다. 마치도 내 뒤로 길게 쭉 늘어선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의심 어린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마지막 검열"인 탑승절차가 끝났다. 나는 미소 띤 얼굴로 임시여권을 돌려주는 공항직원이 이내 생각을 고쳐먹을 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비행기와 이어진 긴 연결통로를 지날 때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마침내 열려 있는 대한항공 비행기 문이 보였다. 나에겐 거대한 자유의 관문 같았다. 그 안으로 성큼 들어설 때였다. 입구에 서있던 승무원 여자가 배에 양손을 가볍게 얹은 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하면서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쫓기듯 다급한 처지에서도 나는 그 정중한 인사 앞에서 엉거주춤했다. 내 뒤로 한국의 높은 간부가 뒤 따라 오는가? 이 생각이 머릿속으로 짧게 스쳐지나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1호인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북한에선 상대에게 90도로 허리 숙이는 "1호인사" 예법은 오직 수령에게만 하게 돼 있다. 수령의 지위는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그래서 일반인과 반드시 차별화되어야만 한다. 만약 간부가 아래 사람에게 그런 높은 인사를 받으면 개인우상화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엎드려 하는 절대신 서서 인사하는 것만큼 잔등이며 엉덩이 끝까지 보이도록 충성의 깊이만큼이나 최대한 허리를 숙여야 한다.
그런 "1호 인사"를 받으실 분이 나와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단 말인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승무원여자의 "1호인사"를 받을만한 높은 분은 없는 듯했다. 그냥 평범한 여행객들이었다. 그것도 남보다 호기심 많고 걸음도 빠른 20대 여자애들이 재잘대며 따라 섰을 뿐이었다.
자유의 품을 찾아 북한체제를 탈출한 나에게 베푸는 대한민국의 특별한 인사였는가? 하는 생각에 그 동안 겁에 잔뜩 질렸던 어깨가 저절로 슬며시 펴졌다. 아닐세라 비행기 좌석도 남보다 제일 앞자리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 바쁘게 한껏 미소를 지어 보이는 승무원 여성들의 얼굴에서도 나에 대한 특혜가 역력해 보였다. 귀순을 축하하는 꽃다발이라도 안겨줄 것만 같았다. 그러면 비행기 안에 탑승한 여행객들 모두가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쳐주겠구나, 하는 상상에 벌써부터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시간이 왔다. 탑승객들 전원이 착석하고 비행기 엔진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승무원 여자가 좀 전처럼 배에 양손을 얹은 그 정중한 자세로 바로 내 앞에 섰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만 해당된 줄 알았던 그 "1호인사"가 비행기 안의 모든 남녀노소를 향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더구나 승무원 여성에겐 여행객들이 초면이 아닌가? 인사를 안 한다고 버릇없다고 야단칠 권리도 없는 인연들이다. 그런데도 승무원 여성들의 "1호인사"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잠깐 사라졌다가 여행객들 앞에 나설 때마다 기내 원칙이라는 듯 어김없이 예의를 차렸다.
북한에선 수령이 왕인데 남한에선 고객이 왕이라는 너무 다른 체제의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 감동은 비단 승무원들의 고객 충성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비로소 남들과 똑같은 인간의 우대를 받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재발견에 대한 감동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본 한국의 인사 법, 그 뒤의 현실은 과연 얼마나 무궁무진할까? 하는 한껏 부푼 기대로 나는 비행기 차창 밖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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