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지난 두주간은 캐나다에서 탈북자 관련 중요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시간들이었는데요. 캐나다다 상원에서 북한인권, 특히 탈북자 문제연구가 정식으로 진행되고 그 내용을 발표해 캐나다가 두 개의 국적을 갖고 있는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받아야 한다는 권유를 자유당 정부에 직접 전달했습니다.
또한 캐나다의 탈북자 단체인 탈북인 총연합회는 한국전쟁 66주년을 맞으며 가장 중심가인 토론토 시청에서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전을 진행해 캐나다시민들에게 북한 실상을 탈북자 자신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달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탈북인 총연합회의 김록봉 회장의 북한에서의 생활을 지난 시간에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김록봉: 올라가는 데 눈이 갑자기 내려 앞이 안 보이는 거에요. 그 순간 생각했지요. 이것은 하늘 이 준 기회다, 라고 생각하고 그 순간 절벽에서 뛰어내렸지요.
김씨는 두만강 옆에서 보위부에 잡혀서 끌려가다가 탈출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간절함과 믿음의 위대함을 그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김록봉: 믿음이라는 게 믿음 그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다고, 믿느냐가 중요하지 그 믿음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그렇게 마지막으로 북한을 탈출하고 중국에서 살게 된 그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벌목장, 식당, 등 중국동북지방을 헤 메고 다녔습니다. 때로는 홑옷을 입고 눈보라 치는 겨울에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자야 했고, 쓰레기장 안에서 공안들을 피해 있어야 하는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북송 되는 탈북자들이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김록봉: 나는 너무 많이 체험하고 봤어요. 차가 그때 할빈에서 도문으로 가는 가 그랬는데 호송도중에 북한여자애가 화장실 갔다 오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렸어요. 그 옆에 사람들이 도와줬는데 다 아니까 너무 불쌍하니까, 그런데 일이 안 될라니 떨어져서 머리가 맞아서 뇌가 터져서 즉사하고, 내 눈앞에서 임산부가 얻어맞는 것도 봤고, 할아버지가 허약에 걸려서 죽는 것도 봤고…
그때 김록봉씨는 주변 동료들과 혈서를 쓰고 다짐한 것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가 자유롭게 되는 날 꼭 이 도문땅에 다시 와서 탈북자들의 원한이 서린 도문변방대 감옥을 폭파해버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004년 한국에 도착하게 된 김씨는 대학에 등록해 공부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캐나다 원주민 선교 팀을 따라 캐나다에 와보게 됩니다. 말로만 듣던 캐나다를 직접 보게 된 그는 꼭 이 천국 같은 캐나다에 와서 살아야 겠다는 꿈을 품고 마침내 2007년 이곳에 가족과 함께 들어오게 됩니다.
처음 들어와 난민신청을 하고 인정에 합격한 그는 낮에는 영어학교와 성인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영어를 익혔고 밤에는 커피 점에서 일하면서 가정살림을 꾸려갔는데요.
캐나다에서 전문대로는 가장 유명한 곳인 조지브라운 전문대학에서 온수난방, 전기기술자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자신만의 회사를 열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국어에 능통한 김록봉씨는 자신의 능력과 재능, 그리고 열정을 이제 또 다른 꿈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창립된 캐나다탈북인 총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김록봉회장은 제2대 회장으로 지금 많은 시간을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난민 지위 해결과 정착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요.
자신이 겪었던 지난날이 결코 그들의 자식들에게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이 캐나다 땅에서 탈북자라는 어둡고 불행한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살수 있도록, 또한 그가 지난날 중국 땅을 헤메면서 품었던 생각, 바로 탈북자 구출과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라는 꿈을 위해 지금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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