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임감이 우리를 변화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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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자가 전합니다.

토론토 북쪽에 자리한 영앤핀치 지역은 토론토에 있는 두 개의 코리아타운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에도 토론토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요.

캐나다가 좋은 나라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땅에서 삶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많은 탈북민들이 이것저것 부딪치는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이곳에 정착한지 이제 6개월 남짓 되는 김순희 여성은 북한에서 군인가정에서 자라 군인복무를 하고 군인가정에 시집간 대표적인 군인 출신 탈북민 인데요. 캐나다에서 어떻게 새 삶을 개척해가는 지 들어봤습니다.

9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홀로 사는 김순희씨는 지난 2002년에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아버지가 강원도 최전방에 위치한 대남연락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국가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공급받아 김순희씨의 어린 시절 생활은 어렵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김순희씨는 평양방어사령부에 배치 받아 고사포중대에서 군인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군사복무 5년간 김씨는 오직 당과 수령을 위해서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는 오직 그 하나 일념으로 꽃다운 청춘 시절을 고스란히 바칩니다.

그렇게 군사복무를 마치고 또 마침 중대에서 사귀던 군관과 결혼하게 된 그는 귀여운 딸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고난의 행군, 즉 식량난이 시작되면서 군인가족들도 부족한 물자공급으로 물물 교환으로 여러 가지 필요한 식량이나 물건을 외부에서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까지 가게 된 순희씨는 북한과는 너무나 다른 중국의 발전된 모습에 여기에서 꼭 돈을 벌어 좀 잘 살아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안 순희씨는 중국에 간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그냥 이웃동네에 가는데 한 두 달 있다 올 것이라고 하고 인사도 변변히 못한 채 가족들과 헤어집니다.

그렇게 몇 달이면 될 줄 알고 떠난 길이 10여 년이 넘도록 돌아가지 못하게 될 줄 몰랐다는 순희씨, 가족들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때문에 해마다 언니들에게 돈을 보내주는 것으로 조금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이제 작년부터 이곳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 순희씨, 지금 난민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캐나다에 도착하자부터 양로원봉사를 다니고 북한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남 먼저 나섰습니다.

김순희: 처음에 너무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북한사람들이 모이는데 하나라도 동참하고 싶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합쳐서 캐나다에서 잘 살아갔으면 하고….

그래도 순희씨가 제일 많이 도움을 받는 곳은 이곳 한인사회, 특히 교회에서 집구하는 것이며 일자리 같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점점 김순희씨는 점점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김순희: 그래야 되는 줄 알았어요.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에서 날 도와주고, 한국사람들은 차가 있으니까 나를 도와줘야 해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북한사람들은 항상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그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통역도 웬만하면 안 쓰고, 차도 안 쓰고, 그러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도와주고 싶어하더라구요.

김순희씨는 많은 탈북민들이 이곳에서의 너무도 좋은 생활에 가끔 북한에서 어렵게 살던 때를 잊는 것 같다며 우리는 누구도 쉽게 겪을 수 없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함부로 살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김순희: 항상 당당하게 북한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다니고 나의 행동과 말에서 감동을 주자, 정말 북한사람들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알리고, 어디 가서 북한사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그러는, 작은 책임감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 같아요.

이제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주역이 된 탈북민들, 그 힘과 용기가 다시 이 캐나다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떠받히는 힘으로 합쳐지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