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만에 합격한 운전면허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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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자가 전합니다.

1885년 독일의 기계기술자인 카를 벤츠가 휘발유자동차를 발명한 이래 자동차는 현대문명의 상징으로 되어왔으며 자동차 없는 세계는 이제 상상 할 수조차 없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구대비 자동차 보유량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 인구 1.2 명당 한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뒤로 이탈리아, 캐나다, 스페인 순입니다. 캐나다는 인구 1.5명당 한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어 한 가정에 만도 여러 개의 자동차가 있는 것은 보통입니다.

자동차에 대한 수요는 이곳 캐나다에 정착한 탈북민들도 예외가 아닌데요. 열심히 벌어 자동차를 사는 것도 그들에게 큰 꿈이지만 아니지만 무엇보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더 큰 도전입니다.

황해남도 연안 군이 고향인 김성호씨, 캐나다에 정착한지는 이제 2년 반, 그 동안 식당일, 청소일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 그가 마침내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했습니다.

그의 좌충우돌 운전면허 시험과정 들어봤습니다.

김성호: 아무래도 이 나라가 워낙 크니까 자동차가 꼭 필요하겠다 생각하고 기 쓰고 달라붙었는데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다 떨어지고 마지막 열 번째에 합격 맞았어요.

김성호씨는 많이 연습하고 갔어도 갈 때마다 떨어졌던 것은 여기 문화를 잘 몰라 쑥스러워 대답도 잘 못하고 부족 점을 알려줘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가버렸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운전면허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뉘는데요. 실기시험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바로 합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시험지도 각 나라 언어로 되어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는데요.

실기시험은 영어를 쓰는 시험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도로에서 여러 가지 규칙에 따라 안전하게 운전을 해야 합니다.

대개 캐나다사람들인 경우에 두 번이나 세 번째 만에는 합격하고 다른 새 이민자들도 보통 못해도 다섯 번째 만에는 시험에 통과된다고 하는데요. 김성호씨처럼 이렇게 9번씩이나 떨어진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절망한 나머지 김성호씨는 정말 포기하려고도 생각했지만 마지막 용기를 내어 10번째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간 목사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김성호: 이번에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Would you speak slowly please?" 하라고 하시 더라구요. 그래서 천천히 "Left turn please" 하니까…. 말도 몰라서 문제였지만 제가 도덕이 없었어요. 언어에는 도덕이 담겨있거든요. 이번에 목사님이 알려준 그 말은 평생 안 잊어먹을 것 같아요.

그런데 김성호씨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 바로 합격한 다음 순간이었습니다.

김성호: 그때 목사님은 기도하고 있었고, 나는 시험 치고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때 캐내디언들이 많았어요. 시험접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들어오자마자 '목사님!' 하니까 사람들이 쫙 나한테 쏠린 거예요. 목사님도 깜짝 놀라가지고 나를 돌아보는데, 내가 ' 나, 패스되었어요!' 하니까 그 캐나다사람들은 '패스'라는 말을 아니까 뒤에서 박수를 쫙 치는 거예요. 캐내디언들이, 나를 축하한다고, 그래서 인사를 했지요. 그때 참, 사람이 고생을 해봐야 행복을 알아요. 그렇게 열번째 만에 합격하니까 그때는 막 눈물이 나올 지경이드라고요.

그날 함께 온 목사님은 집에 갈 때까지 자기 차를 타고 가라며 열쇠까지 김성호씨한테 주고 김씨는 그야 말로 온 세상이 김성호씨 것이 된 듯, 날개 돋친 듯 차를 차고 온 시내를 돌았습니다.

계속되는 실패에도 주저하지 않고 끝내는 원하는 것을 이뤄낸 김성호씨, 황해도 고향에 두고 온 어린 두 자식이 눈에 밟혀와 단 하루도 발편 잠을 자본적이 없다는 김성호씨,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한 이 큰 기쁨을 제일 먼저 그 자식들과 아내에게 알려주고 싶건만,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는 이 현실,

하지만 김성호씨는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자가용 차를 몰고 황해도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자식들과 아내를 만날 날이 반드시 오리라 확신했습니다.

바로 오늘 그렇게도 불가능 할 것 같던 운전면허 시험에 마침내 합격된 것처럼.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