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북한 농구선수를 못잊는 부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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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기자가 전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캐나다 에 사는 한인부부 최성연 이옥녕씨가 북한의 이명훈 농구선수를 처음 만난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이옥녕: 저한테 얘기 사진도 보여줬어요. 그때 3살인가 4살정도가 되었어요. 와이프도 키가 커요. 어머니는 인삼밭 매니저를 한다고 하드라구요. 제가 천식도 있어서 기침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자기 엄마가 하는 인삼 그거 드시면 좋을 텐데 그러드라구요. 잘 되기만 하면은 자기가 가면 해 주겠다고…

이명훈 선수의 미국프로농구 진출은 북한정부의 외화를 위한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명훈선수를 데려오면 다른 프로농구선수들에 비해 적은 돈을 주면서도 그 인기 이상의 가치를 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년에 수십만딸러이상 벌어들일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북한의 농구에 대한 관심은 특히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이 특별한 농구사랑때문이기도 한데요. 어렸을 때부터 미국프로농구 팬인 김정은은 이명훈씨와 농구팀을 만들어 자주 경기를 즐겼고 최근에는 미국 프로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을 네 번이나 초청해 이명훈 선수와 함께 그의 농구사랑을 과시했습니다.

이옥녕: 미국의 NBA 그거 할려고 굉장히 편지가 많이 오고 갔는데 세라 아빠가 번역을 했어요. 북한에서는 굉장히 그것을 재촉을 하는 거예요. 이사람이 빨리 거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자기가 들어감으로써 이북의 모든 체육을 자기가 더 먹여살린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명훈선수의 미국진출에는 미국과 북한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이 뒤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현재까지 대 북한 경제 제재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미국 내 북한 자산은 지금도 동결된 상태로 북한과의 공식적인 경제거래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자금뿐 아니라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달러는 감시되고 있으며 특히 김정일 정권 때에 그 제재 수위는 더욱 더 높아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이명훈선수의 NBA 미국프로농구진출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캐나다 훈련을 온지 6개월만에 이명훈선수는 짐을 싸야 했습니다.

이옥녕: 갑자기 오라고 했어요. 자기는 몰랐는데 너무 쇼크를 받은 거예요. 11시 반인가 울먹거리면서 전화가 왔어요. 안가면 안되냐 하니까 안된되요. 안가면 어떠냐 하니까, 자기 식구 다 죽는다고, 그때 경제적인 여유도 너무 없어서 많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요.

이명훈선수가 떠나면서 줄게 없다면서 자신이 즐겨듣던 한국노래 비데오 테이프를 선물로 주고 이옥녕부부에게 주고 갔다는데요. 이옥녕부부는 그것을 늘 간직하고 있으면서 이명훈선수를 추억하였습니다.

이옥녕씨는 만약 지금 이명훈씨를 만나면 꼭 하나님을 만나라고 전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다시 만날수 없을 지라도 이명훈씨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 꼭 천국에서라도 만날수 있을 거라고 오늘도 그를 위해 기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명훈선수가 왔다간 다음, 또 다른 북한 선수단이 이곳 오타와에 오게 되었는데요. 이때에도 최성연씨는 이들을 위해 통역등 여러가지 성심성의를 다해 자원봉사했습니다. 그렇게 한달 동안 정이 들고 떠날 때에는 자신의 차고 있던 시계까지 벗어주면서 친자식처럼 대해주었습니다.

최성연씨와 이옥녕부부의 북녘사랑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해 오타와를 방문했던 탈북대학생청년들도 친자식처럼 대해주어 한집안식구처럼 끈끈한 정을 나누었습니다.

북한의 이명훈선수로 부터 시작된 이옥녕부부의 북녘사랑, 우리 한민족의 정은 아무리 긴 분단의 세월도 결코 끊을 수 없음을 깊게 보여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