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고 있던 고향을 떠나 새 곳에 정착하는 것은 삶의 전체를 바꿔야 할 만큼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북한에서 나온 탈북민들이 세계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캐나다에서 단 2-3년 만에 남의 도움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는 것,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얼핏 상상이 잘 가지 않을 텐데요.
지난 2010년에 북한을 탈출해 2013년에 이곳 캐나다에 들어와서 북에서 배운 재봉기술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는 탈북민 유선옥씨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유선옥: 여기 오자마자 뭔가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가지고 한번 한인들이 산다는 거리, 크리스티에 한번 가보자 하고 왔거든요.
언어와 문화는 삶을 살아가는 데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요. 어디 가나 영어를 써야 하는 이곳 토론토에서 한인들의 상가가 많은 코리아 타운은 초기 한인이민자들은 물론이고 탈북민들도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곳의 하나입니다.
유선옥: 보니까 길가에 "옷 수선집"이라고 쓴 간판이 보이는 것 이예요. 그래서 무조건 찾아 들어갔지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아 이거 나도 수선 좀 할 줄 아는데 일하면 안되냐고 하니까, 이분이 그러더라고요, 한 삼 일 동안 자기가 테스트 치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바지 단 수선하는 일을 했는데 하루 일하는 것 보더니 "다음날부터 일하러 오세요" 그러는 거예요.
유선옥씨가 이렇게 바로 주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깔끔하게 마무리를 잘한 그의 일솜씨 덕분이었는데요. 대개 처음에 온 한인이민자들이나 탈북민들은 시작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비슷합니다. 우선 식당에 들어가서 접시닦이로 부터 시작에 좀 식당에 눈썰미가 있으면 주방 일을 하고 손님들과 영어가 가능한 정도에 이르면 접대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남자들 경우는 식당에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요리사로 일하기도 하는데요. 스시, 즉 일본식 회집의 요리사가 가장 인기도 있고 돈도 잘 법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거의 10년정도 걸리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유선옥씨 같은 경우에는 북한에서 어머니한테서 배운 재봉기술로 바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선옥: 북한에서 재봉일을 배웠어요. 학교 졸업해가지고 부모님이 무조건 이거 배우라고, 그때만해도, 우리 때만해도 일을 안 하면 안전 부에서 바로 검열이 오고, 너 왜 무결하냐 그랬는데, 그때 당시 어머니가 그거 이겨 내면서 간부들 찾아 다니면서 뇌물 고이고 그러면서 배워서 처녀 때는 일을 하다가 시집을 바로 가가지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거예요.
그렇게 어머니 한 테 열심히 배운 기술이지만 그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그것만으로 밥을 먹고 살수가 없었던 선옥씨는 장마당에서 음식을 파는 장사를 했는데요. 그랬던 그 재봉기술이 이렇게 캐나다에 와서 큰 도움이 될 줄 몰랐다고 합니다.
유선옥: 처음에는 맨 어려운 일, 어깨 달고 그런 것을 하나 시키더라고요. 그게 비로도 옷인데 엄청 가공하기 힘들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한 시간에 15불씩 받아요. 너무 좋은 것 있잖아요. 그 기술 배운 것이 참말 다행이다…
이렇게 일을 시작한 유선옥씨는 처음 한 달에 천 달러를 벌었고 3년 지난 지금은 한 달에 3천 달러씩 어렵지 않게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번 돈 중 10퍼센트, 즉 3천달러를 일년에 한번씩 꼭꼭 북에 있는 형제들과 어머니에게 보내준다는 데요. 이것 또한 그들의 형제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유선옥씨는 이제 독립해서 자신의 가계를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그러자면 영어를 배우고 캐나다 사회를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합니다. 똑 같은 일을 해도 손님이 캐나다 사람이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한 것만큼 보수를 받는 이곳, 기술이 있는 것만큼 성공하는 나라에서 유선옥씨의 창창한 앞날이 기대됩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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