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작곡가 안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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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한민족이라면 이노래를 불러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 가요가 된 노래가 있습니다. 남 북한의 통일모임에서는 빠지지 않고 심지어 남북한 정부관리들이 만나는 장소에서도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네, 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인데요.

이 노래는 남한에서 지어졌지만 북한에서 열린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에 참가한 임수경씨가 처음 부르면서 북한에 급속히 퍼졌고 이제는 사상과 신앙을 초월해 남 북한뿐 아니라 전세계 흩어져 있는 우리 한민족이 통일을 소원하며 부르는 겨례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노래를 지은 작곡가, 캐나다 교민 안병원씨가 지난 5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별세했는데요. 고인의 마지막 길에는 그가 지은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함께 했습니다.

작곡가 안병원씨는 생전에 "장장 65년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니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제는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고 긴 분단의 아픔을 토로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세계로 울려 퍼지면서 하나가 되기 위한 남북한 민족의 얼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고 바로 통일이 우리민족을 살리는 길임을 확고히 심어준 희망의 노래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작곡가인 안병원씨는 사실 지금 일반인들은 거의 모를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1970년대에 캐나다로 이민가면서 한국에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안 씨는 어려운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통일 음악회, 북한어린이 돕기 등 여러 활동들을 계속했습니다.

안병원씨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는 1947년 갓 해방된 한반도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노래가 탄생할 당시 노래의 원제목은 "우리의 소원"이었고 가사의 내용은 "우리의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 이렇게 독립을 소원하는 가사로 시작됩니다. 당시 해방되어 맞이 하는3.1절을 기념하는 독립의 날 특집방송을 위해서 만든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해방은 되었지만 남한은 미 군정이, 북한은 쏘련이 들어와 있었고 남북한 정부도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좌익과 우익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상황에 안병원씨에게 우리의 소원은 진정한 독립이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된 "우리의 소원" 노래는 1947년 3월 1일 방송을 타고 전국곳곳에 퍼져나갔고 이때 대중의 반응은 가히 폭발 적 이었습니다.

하지만 1948년 남북 정부가 각각 따로 수립되자 남북의 분단이 확실해졌고 남한의 문교부에서는 안병원 씨에게 이 노래를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고쳐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때부터 이노래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되고 제목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남한에서는 특별한 행사라든지 기념식 때 불렀는데요 80년대 남한의 학생운동이 일어나면서 주로 운동권내에서 불리워졌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평양 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씨가 부르면서 북한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북한은 이 노래를 합창으로 만들어 평양축전 전 기간 거의 매일 중앙방송으로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가사를 고쳤습니다.

원래 1절밖에 없는 이노래를 북한에서는 2절에서는 "통일"을 "자주"로, 3절에서는 "민주"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즉 미군이 진주해 있고 독재에 억압당하는 남한에서는 자주가 필요하고 민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순수한 통일노래를 개작해 북한주민들에게 선전했던 것인데요.

하지만 당시 북한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북한사람들은 순수하게 통일의 열망을 느꼈고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남한사람들도 이렇게 통일을 원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한을 은밀히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 노래를 이용했던 북한의 의도로 작가 안병원씨도 생전에 끊임없는 이념논쟁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북한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항상 정치적 의견을 피하고 순수한 우리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90년 장장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 한 안병원씨, 비록 그토록 바라는 통일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가 남긴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7천만 우리동포의 마음속에 살아 겨례를 잇고 통일을 이루는 다리로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토론토에서 RFA 장미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