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2)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RFA PHOTO/ 장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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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탈북민 김영희씨가 남들이 다 굶어 죽는 시기에 그의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가족을 살려낸 이야기, 그렇게 살아남기는 했지만 결국 북한사회에 희망이 없어 마침내 탈북 하기로 결심한 이야기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시간에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김영희: 그런데 나오고 나니까 더 후회되는 것 있잖아요. 신분 때문에, 북한에 있을 때는 중국에 가면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살수 있다. 이렇게만 들었지 중국에서 신분을 못 받고 산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

김영희씨는 북한을 떠나면 뭔가 이보다 더 나은 삶이 기다릴 줄 알고 남편과 딸을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났지만 중국에서의 그 의 삶은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신분증이 없이 살아야 하는 삶은 북한에서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던 삶 못지 않게 치욕적이고 위험한 삶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김영희: 여기, 중국에 불법으로 있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언제 잡혀나갈지 모른 데, 그래가지고 안되겠다 그렇게 알아보니까 한국가면 살수 있다, 그러는 거예요. 한국가면 무료로 보내주겠다. 그러는 거예요. 별다른 대책이 없고 다른 나라로 갈려고 하니까 그런 줄도 없고, 죽는 것은 두렵고 어떻게 하나 살아야겠다 하니까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요.

김영희씨는 북한을 떠날 때부터 캐나다로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캐나다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김영희: 왜냐하면 저의 아버지 친구분이 캐나다에서 고향방문단으로 북한에 오신 거예요. 근데 그때만 해도 외국이라 하면 난 캐나다에만 우리 사람들이 사는 줄 알았어요. 그때만 해도 캐나다에서 왔다. 외국에서 왔다 하면 동경의 대상이었지요. 그래가지고 캐나다에 가면 집에 도움도 되고 뭔가 고향이라고 찾아갈 수 있지 않을 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캐나다에서 고향방문단이 오듯이 나도 떳떳이 고향에 갈수 있지 않을 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영희씨는 캐나다에 가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게 됩니다. 태국수용소에서도 캐나다에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몇 년씩 못 가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결국 한국 행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도착해서 영희씨는 6개월만에 여권을 만들어 가지고 이곳 캐나다로 오게 됩니다.

한국과 캐나다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시기 무비자 협정을 체결해 여권만 있으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나라인데요.

김영희: 한국에 와서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어요. 보니까 중립국가이고 전쟁이 없는 나라이다라고 되어 있는 거예요. 그것을 보니까 아 여기에 가면 평화롭게 살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북이냐 남이냐 할 필요가 없 고 , 그래서 어떻게 하나 가야 되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김씨에게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김영희: 사실 캐나다도 우리 딴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왔어요. 신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말 무섭게 막 마음을 조이고 왔어요. 그리고 여기 캐나다에서 받아줄 가 하는 걱정도 많았지요.

그렇게 찾아온 꿈의 땅에서 김씨는 이제 4년째를 맞고 있는데요. 그렇게 간난신고를 헤치며 끝내는 꿈의 땅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북한땅에서 살던 때를 회고하면서 이곳의 삶이 그렇게 희망에 넘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영희: 그때 고난의 시기에 어떻게 살았냐, 장사하고 살았다 그러면 왜 장사했냐? 그러는데 그것도 뭐 질문이요? 먹고 살자고 장사를 했는데 그럼 살아난 것이 죄란 말이요? 그렇게 묻고 싶었어요. 아 이 사람들이 그 어려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났으면 그것을 국가가 감사해야 하겠는데 그것을 오히려 문초를 하니, 나는 그것이 너무 기가 막히더라고요. 지금에 여기에 와서 내가 노력하는 것만큼 보수가 돌아오고 그러면서도 고맙다 하고, 나도 감사하지만 어디 가서 일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면서 내가 일한 보수를 주거든요. 나는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 가게 주인도 나로 인해서 서로가 벌어먹고 살수 있으니 고맙다 하고 상부상조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사는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김영희씨는 탈 북은 그의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던 꿈의 땅 이곳 캐나다에서 사는 것, 무엇이 인간에게 값있는 삶인지 알게 해주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