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한 선교사가 체험한 북한 실태와 대북선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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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들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을 전해드리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잡니다.

캐나다에서 사는 한인들 중에는 캐나다의 화려하고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십 여 년 간을 중국과 북한을 오가면서 식량구호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시간에 전해드린 김선중 선교사인데요. 이번 시간에는 중국에서 다년간 활동을 하고 있다가 마침내 북한으로 들어가게 된 김 선교사가 북한지역에서 당국의 감시 속에 구호활동을 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북한에 식량을 전달해주기 위해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게 된 김 선교사가 식량난보다 더 충격적으로 목격하게 된 것은 바로 수령우상화였습니다.

김선중: 내가 간 날이 9월 8일인데 9월 9일이 북한의 국경일이에요. 그런데 간 첫날부터 라진 시내가 불이 환해서 야, 이거 북한이 좋네 하고 생각했는데 같이 가는 중국친구가 저거 하루 지나면 다 꺼지고 깜깜해진다.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외국사람들도 다 동상에 가야 한다는 거야 안 갈수가 없어요. 동원 시키니까… 나도 그래서 꽃 한 송이 사려고 갔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어. 그 조그마한 애들이 양말도 없이 고무신 그런 신을 신고 그 꽃을 사려고 아침부터 줄 서 있더라고. 그 얼마나 수령님을 사랑하는 마음 여러분 이거 상상도 못합니다. 그 열정, 그 사람들한테 그거 빼면 그 나라 망합니다. 그래서 갔는데 참 훈련이 잘 되어있어요. 하나 흐트러지는 것도 없이 착착착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뭐 군말하는 사람도 없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고… 우리가 또 조선사람이 한다는 밥 집에 갔어요. 근데 가서 밥만 먹기 뭐해서 노래 좀 하나하자고 했더니.. 근데 노래를 부르는데 위대한 수령님의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2절부터는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는데 밥 먹다가 다 숙연해지는 거야, 북조선 인민들의 고난의 행군 삶의 고통 그 속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그 수령님의 영원한 미소밖에 없는 거야, 우리 수령님이 언젠가는 행복하게 해주겠지..언젠가 때가 오겠지 그러다 살다가 이 모양이 된 거예요.

김 선교사는 또한 가는 곳 마다 북한주민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 선교사는 특히 구호물자를 구해서 보내주는 과정에서 북한이 얼마나 모순에 차있는 사회인가를 더욱 똑똑히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선중: 우리는 구호물자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구호물자라고 하지 않아요, 지원물자, 지원하는 것이지 구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지원물자를 싣고 함경도 태백산을 넘어가다가 강도가 올라탔어요. 그때는 강도가 참 많았어요, 우리를 인솔하는 공장 지배인이 막 뛰어가서 잡아라, 도적이야 하고 소리치는데 뭐 몇 개 가져갔는지 몰라요… 그러고 나서 공장지배인이 자꾸 그 강도를 때려요, 그러면서 너 잘됐다. 우리 장군님이 내리는 하사품에 손을 댔으니 너는 이제 죽었다. 이러면서 자꾸 때려요, 아니 물건은 내가 가져가는 것인데 내가 주인 아니요, 근데 왜 지도자가 어쨌고 이러는가 말이요,

김 선교사는 다년간 북한구호활동을 하면서 얻는 교훈은 절대로 북한당국에 대량으로 식량 같은 구호물자를 보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아원이나 실질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을 선정해서 보내주고 철저히 잘 전달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렵고 사람이 살수 없는 곳이라 여겼던 그곳에서 그는 우리 한민족의 얼이 살아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했고 그로 해서 감격했습니다.

김선중 : 네 번째 가게 되었을 때 이제 우리가 가야 하니까 마지막 생각하니까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하나 있어요... 그래서 내 고향을 부르자니까 아, 다 환영해요 … 다같이 한번 손잡고 노래합시다 하고 불렀어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런데요.. 1절을 다 불러가는 동안 눈들을 보니까 다 촉촉히 젖어있어요. 다 끝나고 손을 잡고 있는데 우리 같으면 기도하자고 하는데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위하여"도 할 수 없고 그러다가 거기서 중국에서 온 조선족 당 서기가 그래요..우리가 이거 다 조선민족인데 국적은 다 다르다 이거야.. 조선공화국에 있는 조선사람이 있고 중국에 있는 조선사람이고, 그리고 캐나다에 있는 교포..이거 우리가 다 한민족이다. 그러고 더 말을 못해요 무슨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거기서 발견한 것은 우리는 한민족이고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고 가능이 있는데 선교라고 하는 차원에서 볼 때는 간접선교예요.예수 믿으라고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다 알아야.. 이렇게 느낌으로 전해지는 얼마나 중요한지 다 알아요 말을 못해서 그렇지….

김선중 선교사의 북한 사람 이야기… 이날 모인 탈북자들에게도, 북한인권 운동가들에게도 한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서로 떨어져 있고 서로 다른 상황에 있다 해도 바로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우리민족은 언젠가 꼭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