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꼭 데려오고 싶어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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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현장 음)

아버지한테 나 (한국에) 갈 가, 그러니까 갑자기 막 우시더라고요. 그렇게 힘들 때도 한번도 눈물 안보이시던 분이….

탈북민 김유진씨가 북한을 떠나오면서 기억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 소녀였던 유진씨를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모습이었습니다.

캐나다는 지금, 오늘 이시간에는 그런 아버지를 남겨두고 중국과, 몽골, 한국을 거쳐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시에 살고 있는 올해 25살의 김유진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유진: 저랑 엄마랑 저의 동생이랑 여름에 배도 따오고 막 따오면 안되잖아요. 모르게 따고, 어떤 때는 막 주어오고, 썩은 거, 그렇게 먹고 살았거든요. 그리고 밭에 가서 아직 자라지 않은 콩 막 따 가지고 , 훔쳐가지고 그렇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했었어요. 제가 6살, 제 동생 4살 때…

북한에서의 기아는 많은 탈북민들이 겪은 공통적인 것이지만 김유진씨의 가정은 특별합니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오직 당에 충실하고 직장 일에 충실한 평범한 노동자였습니다. 청진 제련소에서 일했지만 배급을 주지 않은지는 너무 오래되었고 모든 것을 자체로 구해 살아야 했습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유진씨 아버지는 집에 지붕에 얹은 함석과 철판을 뜯어 팔아 얼마간의 식량을 구해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신 유진씨 온 가족은 지붕이 뚫려 별이 보이는 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집의 버팀목을 하나하나 내다 팔다 보니 결국 장마 때 집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집을 잃어버린 유진씨 가족은 이때부터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요. 유진씨 아버지 어머니는 유진씨 남매를 고아원에 보내고 아버지는 공장에 어머니는 돈을 벌러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김유진: 우리엄마한테 고아원에 보내라고 그러면 밥이랑 먹을 것이랑 다 준다고 그래서 우리엄마가 진짠 줄 알고 그날에 개울가에서 저희를 샤워, 목욕 시키고 거기다 놓고 간 거예요. 저랑 저 동생을, 여섯 살 때..동생은 네 살 때,

자신들이 살아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어린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 참담함 그 자체일 텐데요.

김유진: 저희는 엄마가 없어져서 막 울고 있는데. 그러다가 거기서 동생을 잃어버렸어요. 저는 동생이 집에 간줄 알고 저 혼자 집에 찾아갔어요. 엄마 아빠 한 테로요. 그때도 저의 집이 아니고 남의 집 빵집을 빌려가지고 살았었거든요.

결국 유진씨 어머니는 다시 유진씨를 고아원에서 데려오지만 끝내 동생은 찾지 못하게 됩니다.

유진 씨 가족은 빵집에서도 쫓겨 나게 되고 결국 아버지 직장 한구석에서 살게 됩니다. 그 해 유진씨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유진씨는 이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공장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요.

김유진: 엄마 간 다음에는 그 메주콩 3키로가지고 한 달 동안 살았어요. 아버지랑 저랑, 그 절구도 없어서 돌로, 그 콩 몇 알 놓고 아빠가 돌로 막 찧어가지고 거기에다 풀 뜯어 넣고 끊여서 그 물 마시고…. 콩을 그거 한번에 다 먹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고, 그렇게라도 살아야 하니까

유진씨는 북한에서 단 한번도 학교에 가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친구들도 없고 아버지 직장한구석에서 어른들과 함께 돌 가루와 공구들을 만지며 자랐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두 부녀가 서로 의지하면서 10년을 살던 중 사라졌던 어머니한테서 소식이 왔습니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간 어머니가 딸 유진씨를 찾아 사람을 보냈던 것입니다.

김유진: 아버지한테는 정작 떠나올 때 얘기를 못했어요. 그전에 슬쩍 (아버지한테) 어머니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나 오라네, 그러니까 갑자기 우시더라고요. 나한테 눈물 한 방울, 힘들어도 안보이시던 분이, 내가 너까지 가면 뭘 믿고, 내가 널 위해서 살았는데, 이렇게 없는 데서도 널 먹이며 살았는데, 그런데 어떻게 네가 가면 어떻게 사니, 그렇게 막 우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막 안 갈게, 안 갈게 그랬어요.

아버지를 그때 같이 데리고 왔더라면…

아버지와의 눈물의 이별, 유진씨는 그 지금도 아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유진씨의 탈출이야기와 자유의 땅에서 삶, 다음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