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들 그리고 한인사회소식을 전해드리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잡니다.
캐나다 토론토시의 동남쪽에 자리한 빅토리아 파크 부근에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한인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올해 80세를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혈기 왕성한 모습으로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등 5개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정협모 노인인데요. 정 노인이 쓰는 한국어는 많은 탈북민들의 어투와 똑 같은 토박이 함경도사투리입니다.
정 노인의 고향은 백두산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혜산 가까이에 있는 백두산 밑 '대편진리'라는 산악지대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야망이 한창 무르익던 시기에 형을 따라 청진에 있는 소학교에서 입학하여 일본말로 초등교육을 받은 정 노인은 특수영재학생으로 뽑혀 일본 유학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유학은 허울일 뿐 정 노인이 간 학교는 적군의 함정에 육탄으로 날아가 폭파시킬 인간폭탄을 양성시키는 소년항공 병 훈련소였습니다.
여기에 계속해서 있을 경우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깨달은 당시 15살의 정 노인은 훈련도중 매맞은 귀가 아파 들을 수가 없다고 사정해 결국 무사히 함북 청진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품에 돌아온 것도 잠시, 정 노인은 바로 만주에 건너가 국민당과 일본을 반대해 싸우는 팔로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가 8.15 해방을 맞을 즈음, 정 노인은 중국공산당정부가 정권수립을 위해서 억류해놓았던 일본인 차량기술자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자동차운전과 수리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일어난 한국전쟁, 정협모 노인은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정협모: 그 팔로 군에서 장개석을 반대해서 싸우다가 조선전쟁이 일어나니까 우리는 조선에 파견되어서 인민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신의주 6대대에서 대포를 끌고 전선에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번 안동에 물자를 실으러 오니 거기에는 소련의 스탈린이 김일성 후퇴 하라고 고급 차 4대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지프차가 하나 있는데 운전수가 없어서 내가 그 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 차가 인민군 총사령부 통화사령부 차였습니다. 그래서 통화에서 근무하다가 평양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김일성 최 측근인 남치호 최고검찰국 국장의 통역관으로 근무하다가 휴전 직전에 중국으로 제대되어 돌아왔습니다.
북한 쪽, 즉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으로서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체험한 역사의 증견자, 정협모 노인은 6.25 전쟁 발발 당시 제일 먼저 휴전선을 넘어 남진한 북한의 105 땅크사단에 있던 자신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며 전쟁이 일어나기 두 주 전 인가부터는 대포와 군인들을 실어 나르느라 남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차표조차 구하기 어려웠다는 등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다시 중국 동북으로 돌아온 정 노인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의 서쪽 끝인 티베트로 가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티베트를 점령해 자신의 자치주로 만들어 놓고 그곳의 지하자원을 중국본토로 실어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어 길을 닦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술을 갖고 있던 정 노인은 마침 티베트의 대 부호를 만나게 되고 그의 차를 운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티베트에서 다시 중국정부를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고 정 노인을 이를 피해 인도로 가게 되는데요. 거기에서 놀랍게도 티베트 불교의 최고수장인 달라이라마의 비서를 만나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 후 인도에서 부처의 제자로 얼마 동안 살게 됩니다.
그때 정 노인의 마음속에 언제부터인가 자리잡게 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대한 동경, 그로 하여 정 노인은 어느 날 대담하게 인도 봄베이 항에서 미국으로 가는 일본상선에 몰래 타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선장은 밀승선한 정 노인을 죄인 취급했고 태평양과 대서양 등 3대양을 돌아 결국 일본에 입국하게 됩니다.
이때 정협모 노인의 팔로 군과 인민군출신의 특이한 이야기는 일본 신문에 대서특필되었고 세상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습니다.
백두산 밑 삼수갑산의 산골배기 정협모 노인의 넓은 세상을 향한 파란만장한 노정,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보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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