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꼭 데려오고 싶어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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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탈북민 김유진씨가 북한에서 겪었던 기아, 그리고 남겨진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버지를 두고 떠나야 했던 사연을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시간에도 계속됩니다.

김유진: 중국에 들어가서 8일 동안 중국에 있다가 바로 엄마가 선 연결해줘서 그래서 어느 집에 가니까 사람들이, 북한사람들이 모였더라고요. 저까지 9명…

김유진씨는 중국을 거쳐 몽골로 가는 탈 북 길을 따라 남한 행을 하게 되는데요.

김유진: 그때 브로커가 말하길 철조망 두 개를 넘어야 한데요. 그리고 낮데요. 갈수 있데요. 운이 좋으면 30분안에 몽골군인을 만날 수 있데요. 길어봤자 두 시간, 그 소리 듣고 밤에 몽골국경을 넘었어요. 그런데 쇠살창이 낮기는 고사하고 철조망이 2미터도 넘는 거에요. 그런데 철조망이 반경이 5센티, 뾰족뾰족한 가시로 세워놔 가지고 넘을 수가 없었는데 막 그냥 올라탔죠. 살살 넘으려고 하는데 뒤에 아줌마가 그렇게 넘으면 잡힌다 그래서 막 잡고 올랐는데 거기서 내리자니까 막 무섭잖아요. 2미터 되는데 올라서 뒤에서 밀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쿵 하고 떨어졌어요. 제가 살려고 그랬는지 하나도 안 다쳤어요. 만약에 다쳤으면 누가 날 책임졌겠어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인데..

유진씨와 그 일행은 피범벅이 된 채로 정신 없이 걸었는데요.

김유진: 보니까 여기가 다 찢어진 거예요. 다른 아줌마들도 다 피 다 손에 나고 밤이니까 몰랐죠. 손잡고 가는데 뜨끈뜨끈해서 이게 뭐 땀인가 그랬는데 그게 다 피 인 거예요. 아픈 것도 모르고 잡힐 까봐, 무조건 달려야 한다, 그리고 분명 철조망이 두 개라 그랬거든요. 하나 더 넘어야 몽골이다. 그래서 마음을 못 놓고 계속 걸었거든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거예요. 사람이 막 정신이 돌아가더라고요. 벌써 이게 5시간이 넘는데, 밤 12시반에 넘었는데 새벽이 되었는데도 끝이 안 보이는 거에요. 그때 물 한 병이랑, 소시지 한 개랑 이렇게 가지고 떠났거든요.

15시간동안 걸었지만 여전히 끝이 안 보이고 가시풀이 섞인 몽골의 모래바람은 사정없이 몸에 닿아 입고 있던 신발과 옷이 다 찢어진 상황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떨어진 일행은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는데요. 그때 유진씨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김유진: 그냥 거기에서 제가 그랬어요.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늘에 대고 하나님, 나 죽기 싫어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 나갔거든요. 나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죽기 싫어요. 차라리 여기 오지 않았었으면 아버지 곁에 그냥 있었을걸, 내가 여기 와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굶어 죽고 추워죽고, 나 죽기 싫다고, 내가 죽으면 시체를 누구도 못 찾을 거 아니냐고, 내가 그냥 모르는데 내 존재라는 것이 이렇게 사라질 거 아니냐고, 나 싫다고, 그런 말을 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데 얼마 후 놀랍게도 일행 앞에 넘어진 전봇대가 나타납니다. 어른들은 다 이게 길이 아니라고 했지만 유진씨는 전봇대를 따라가면 인가가 있을 거라고 주장했고 결국 일행들은 모두 유진씨 말대로 따라갑니다.

마침내 일행은 인가에 다 달았고 거기에서 몽골군인들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유진씨 일행은 대한민국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유진씨는 한국에서 어머니와 상봉하지만 10년간의 헤어짐으로 유진씨에게 어머니는 너무 서먹했고 어머니라기보다는 그냥 어떤 중년여성이었습니다.

그래도 차츰차츰 가족의 정을 살리고 한국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한국에서 일찍 결혼하고 아기를 가지면서 유진씨는 또 다른 심각한 가정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난 2013년 유진씨는 캐나다에 인도주의 난민신청을 했고 이민국은 유진씨의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자신만의 새 삶을 꿈꾸고 있는 유진씨, 아들이 좀 더 자라면 무엇이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직업여성으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

하지만 지금 유진씨에게 보다 절박하고도 가장 큰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 있는 아버지를 데려오는 것입니다.

평생을 당을 위해 살았지만 결국 굶주림으로 집도, 아내도 자식도 다 잃어야 했던 아버지에게 인간의 가장 초보적인 권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바깥세상사람들이 어떻게 향유하고 있는지 꼭 보여주고 싶고 함께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