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들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을 전해드리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잡니다.
지난 시간에는 캐나다에서 “다양성유지”와 “평등달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정식 국가정책으로 법제화 한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드렸죠.
“다양성”이니 “평등달성”이니 하는 말이 김일성 주체 사상에 찌들려 획일적이고 통제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북한 청취자 여러분께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는데요. 쉽게 말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캐나다에선 이들이 대부분 각기 다른 고유한 문화나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과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한 국가 안에서 그것도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성유지”와 “평등달성”을 실제로 구현해 나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캐나다도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캐나다의 역사를 살펴봐도 인종차별의 흔적이 곳곳에 있었고 여기에는 이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습니다.
지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캐나다의 인종 차별은 심각했습니다.
캐나다의 역사는 400년 전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이 땅의 주인인 원주민들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깃발을 꽂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야만인”으로 불리운 원주민들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무시당해야 했고 제한된 원주민 지역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현재 캐나다의 자랑이 되고 있는 캐나다 대륙횡단열차는 1880년부터 5년간 1만 7천명의 중국인 노동자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 이면에는 잔혹한 인종학대가 있었습니다.
싼 임금 때문에 중국에서 데려온 노동자중 4천명이 사망했고 철도가 다 건설되어 노동력이 필요 없게 되자 캐나다는 중국인들이 이민오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만들었습니다.
1939년, 독일에서 살던 유대인390명이 “세인트 루이스”라는 배를 타고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 옵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말살정책을 피해서 천신만고 자유의 땅이라 믿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끝내 이들의 입항을 거절했고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유대인들은 70%가 나치독일의 손에 학살당했습니다.
1945년 2차세계 대전에 참가했던 캐나다 군인들 중 원주민과 유대인 출신들은 유독 참전용사연금혜택과 그 권리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인종차별의 역사들은 지금 인권선진국임을 자랑하는 캐나다가 잊고 싶어하는 진실들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 캐나다는 백인우월주의 정책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멸시당해 온 퀘백의 프랑스계 주민들의 불만은 캐나다의 분열을 초래할 만큼 커졌고 이에 위기를 느낀 연방의회는 타협안으로 프랑스어를 영어와 같이 연방의 공식언어로 하고 프랑스계문화의 존속을 법적으로 인정합니다.
착취와 격리의 대상이었던 원주민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 거주 지역을 보호했으며 연방선거권을 법적으로 보장했습니다.
중국철도노동자들에게도 캐나다정부는 과거의 부끄러운 사실들에 대해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며 일인당 2만 달러씩 배상해주었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말살 정책에 암묵적으로 동의 했던 캐나다 정부는 당시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후 적극적으로 유대인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실시했으며 이스라엘 정부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71년 당시 연방총리였던 튀릐도가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를 국가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한 이후 캐나다 사람들은 다문화주의를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이 캐나다인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사람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고 구현해나가는 것은 이를 뒷받침 하는 강력한 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캐나다에 정착한지 올해로 4년째 되는 탈북민 성옥희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옥희 : 그리고 여기 법질서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법이 강하니 범죄가 덜 일어나고 ..그리고 여기와서 느낀 것이 우리가 자녀교육이 많이 뒤떨어졌잖아요. 학교에 가서 보니 선생들이 애들로 취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고.. 우리가 당했던 왕따라든가 차별이 없어요.. 그런게 너무 편한 거예요…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어떤 단어도 캐나다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인, 흑인이라는 말은 캐나다에서는 쓸 수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정치가가 실수로 그런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정치 인생은 끝이 납니다. 북한에선 어쩌면 출신 배경, 즉 성분에 따라 인민을 철저하게 차별대우하고, 성분이 안 좋으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똑똑해도 사회에 나가 뜻을 펴고 출세할 길이 없다는 점에서 현대판 ‘인간 차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캐나다에선 또한 TV방송국의 방송원들은 인종 별로 골고루 나오며 캐나다의 대표 미인으로서 한국인이 선출되기도 합니다. 또한 2005년에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아이티 이민자인 미카엘 장을 총독으로 선출했습니다. 형식적이긴 하나 캐나다 최고의 위치로 연방수상보다 위인 총독을 흑인여성이 맡았다는 것 또한 캐나다다 다문화주의를 철저히 구현하는 나라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전세계가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인권존중의 가치 아래 남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장려하며 그것을 국가정책으로 구현하는 나라가 캐나다입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미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