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곳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생활 소식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 등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남수현 기자가 전합니다.
모래를 박차고 해변가를 따라 달리는 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날리는 머리카락 한 가닥을 잡은 얼굴 없는 한 소녀의 손.
살아있는 배경 속에 알 수 없이 감춰진 얼굴, 조용하지만 생생한 자유로움으로 가득한 풍경들이 사진작가 전세영 씨(가명) 의 사진작품 들입니다.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의 모습을 담는 캐나다의 사진 작가, 전세영 씨를 오늘 만나 봅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난 뒤 세계 각지에서 학업을 마치고, 한국은 물론 북미 지역과 유럽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의류업자 와 연예인 들의 화보 촬영 감독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전세영 씨는 지난 2008년 부터 탈북여성들을 주제로 한 "Under My Breath" ("나지막한 목소리로") 라는 일련의 사진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업사진 전문작가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전 씨가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7년이었습니다.
2007년 봄,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온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속에 담아 "할머니" 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던 전 씨는 그에 대한 초청 강연을 위해 방문한 미국의 명문 콜롬비아 대학의 한 교수에게 처음 탈북자들에 대해 전해 듣게 됐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인 작품활동에 열중해 왔고,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의식 말고는 북한에 관련된 어떤 내용도 전혀 생소했던 전 씨에게, 탈북자들의 상황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씨
: (At the time I wasn’t interested in North Koreans because I didn’t have a very good impression..) 그 당시에는 북한에 대해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패션계, 의상계에서 일하면서, 사회적이나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심도 없었구요.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 별로 들은 바도 없었고, 북한을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몰랐어요. 처음 탈북자들이 존재 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충격받았고,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고통스런 지난 날을 견디고, 세상 모든 이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아픈 과거를 세상에 알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에 감동했던 전 씨에게 자유를 찾는 탈북자들 의지력 또한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 씨
: (Finding out about comfort women and North Korean refugees, I became more aware. I became super Korean…) 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탈북자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의식이 새롭게 생겼어요. 피가 물보다 진하구나, 이걸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구요. 한국에 관련된 문제라서 가슴이 끌렸어요. 전세계에 난민들이 있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마음은 너무 다르더라구요. 또 남과 북으로 갈린 우리나라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마음의 짐이잖아요.
탈북자들에 대해 알게 될 수록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한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탈북자 정착보조 기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뒤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며 수많은 탈북 여성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하늘 꿈 학교 등 탈북 청소년들의 정착을 돕는 기관들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또래의 청소년들과도 접촉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알아 갈 수록,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합니다.
전 씨
: (We tend to pity them but they are stronger than us. They went through that and they are able to talk about it…) 모르는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고생을 많이 해서 안됐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살아남아서, 거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게 그만큼 더 강하다는 얘기니까요. 또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됐구요. 목숨과도 바꾸겠다는 그런 절실한 의미의 자유요. 탈북자들이 떠나올 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찾는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됐어요. 또 그런 절박함까지는 없다고 해도 우리 모두가 과연 얼만큼 자유로운 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구요. 모두들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는데, 세상의 잘못된 것들이 우리를 가둬 놓잖아요. 어떤 경우에는 정치적인 억압에 의해서 어떤 경우에는 물질적인 것에 묶여서.
탈북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게 되면서, 영상작가로서 그들을 보는 시각 또한 바뀌어 갔습니다.
전 씨
: (I am moved by the beauty and the strength of these people. I am tired of trying to capture people to be sad and pathetic…) 전에 힘들었다고 해서, 힘든 곳을 나와 지금 살고 있다고 해서 그 힘든 과정에만 중심을 두고 슬프고 불쌍하게 탈북자를 그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물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살아있는 그분들의 현재에 대해서, 또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 아름다움과 의지력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와 함께, 탈북에 성공한 이들이 자유를 찾은 다음에 새로운 인생에 적응해 가는 시기, 그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고 전 씨는 또 전했습니다.
전 씨
: (Most docs focus on the danger of escaping. I want to focus on how they adjust, and how they move on. What do you do once you have found freedom? …) 대체로 탈출의 위험함과 비극적인 결말을 포착하는데, 저는 현재 살고 있는 그 분들의 모습에 중심을 두고 싶어요. 어떻게 적응을 하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 가는지. 자유를 찾아 왔지만, 자유를 찾은 그 다음에는 뭘 합니까? 사회적으로, 정신적, 감정적으로 너무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탈북자들이 정착하는 데 느끼는 이런 어려움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좀더 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자유를, 더 나은 곳을 찾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이들의 외로움이 전 씨에겐 낯설지 않습니다. 특히 생명과 자유를 찾아 온 여성들에 대한 전 씨의 마음은 각별합니다.
전 씨
: (I never feel like I fit in anywhere. I’m Korean but I am not really Korean. I just feel that I fit in everywhere … I never felt like my identity was one thing. I always felt like a nomad, and so I am intrigued by nomads and refugees.)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완전히 한국사람이란 느낌이 안들어요. 그래서인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난민들의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아요. 탈북한 여성들을 보면 마음이 가고, 언니 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요. 탈북자 중 많은 분들이 여성들이고, 남자들보다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 오는 분들이기도 하구요. 여자로서 서로 이해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남 같지 않은 탈북여성들을 만나면서, 전 씨는 그들의 인내와 의지를 담은 사진작품을 계획할 영감을 받게 됐습니다.
전세영 씨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토론토에서 RFA 자유 아시아 방송, 남수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