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북한 무용을 알리는 탈북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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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한인단체인 한인회 행사장에 경쾌한 북한 음악이 흐릅니다.

딱 들어봐도 알겠지만 북한의 대표적인 민속 무용인 칼춤의 배경음악인데요. 이 음악을 타고 무대에는 현란한 손동작과 몸놀림으로 춤을 추는 한 여성이 등장합니다.

캐나다 한인들의 주요행사에는 물론 캐나다 주류사회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행사에도 자주 출연하는 이 여성은 탈북민 김민서씨입니다.

다문화사회를 적극 장려하는 캐나다에서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나라의 정책이기도 한데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데 서 캐나다 한국무용회는 이곳 캐나다에서 선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 의 김미영단장은 전문무용수와 비전문인을 섞어 우리민족의 전통무용을 이곳 캐나다사회에 보여주는 한편, 특히 중국인이나 다른 문화권에도 우리 무용을 보급하고 특히 북한무용의 고유함을 보여주는 김민서씨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새춤(우조춤)-자유를 찾아서 이땅에 온 한 여인이 자유로운 새의 모습을 통해서 그 감격과 환희를 표현하는 춤 (김민서씨가 직접 재창작한 춤).
새춤(우조춤)-자유를 찾아서 이땅에 온 한 여인이 자유로운 새의 모습을 통해서 그 감격과 환희를 표현하는 춤 (김민서씨가 직접 재창작한 춤). (사진 제공: 김민서)

지난 2012년에 한국을 거쳐 캐나다에 도착한 김민서씨는 한국에서나 북한에서 하던 춤을 이곳 캐나다에서 계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이제 무용은 그의 삶 전체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김민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표현하는 행사 해마다 3월에 했고, 4.15행사는 기본이고 김정숙 생일 때 그건 다 공통된 것이니까, 그리고 저희는 유치원 부분이니까, 국제 아동절에 전국적인 시연회 해가지고 중국에 예술 대표단으로 해서 중국에 들어가고, 그것이 가장 크게 준비한것으로 기억에 남아요.

하지만 김민서씨가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대에서 환영의 꽃다발을 받고 관중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김민서: 저희 때는 선물도 주고 이불도 주고 했는데 아무래도 생활이 바쁜 분들은, 교양원들이 제일 생활이 바빴어요. 그래서 저희는 좀 생활이 괜찮아서 그렇게 생활이 바쁜 분한테 선물을 양보하고 그것이 저한테 기억이 제일 남아요.

김민서 북한에서 살 때는 그래도 성분이 나쁘지 않고 기본적으로 유족한 생활을 했는데요. 어떻게 탈북할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들어봤습니다.

김민서: 저의 오빠가 있는데 사망 되었어요. 국가보위부에서, 그래서 가정이 많이 어려워졌죠, 총살은 아닌데 고문 중에 너무 맞으니까 사망되어가지고, 우리 할아버지가 한국에 있는데 그 할아버지하고 전화통화를 했나봐요. 그런데 중국에 사사여행자로 나와 가지고 , 거기에서 전화를 했나봐요. 그런데 그것이 도청이 되었나봐요. 그래서 형님하고 둘이 잡혀들어갔지요.

그래서 그때 서부터 아니다시피 풍비박산이 난 것이지요.

김민서씨는 탈북해서 한국에 오고 또 이곳 캐나다에 와서 처음에는 어떻게 살지 막막했지만 북한에서 했던 무용을 계속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김민서씨는 무용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한국에서 대학도 등록해서 공부하면서 북한무용뿐 아니라 한국무용도 출연하면서 더욱 전문적인 예술인으로 준비했는데요. 더욱 전문적인 예술인으로 자신을 키워갔습니다.

김민서: 우리 북한춤은 가만 여기 와서 느낀 것이 중국하고 구 소련 춤이 많이 접목되었어요. 북한무용은 3분 4분을 초과 안하는데, 한국무용은 7분, 10분 이렇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북한무용은 아주 빨라요. 빠르고 경쾌하고 그런데 여기 한국무용은 아주 동작도 느리고,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어찌보면 한국의 무용이 아주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저의 북한 동작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서 배워주다 보면 기권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김민서씨는 북한춤은 아주 전통적인 우리 춤이 아니라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새로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게 변경한 부분이 많지만 그것을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북한 역시 여러가지로 예술을 발전시키려고 한 노력이 많이 보이는데요. 실례로 오직 북한에서만 개발했다고 하는 주체무용표기법은 80년대에 나와 일반 대중에게까지 보급되긴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김민서씨와 함께 하는 캐나다에서 그의 예술의 삶, 다음시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