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통일되면 남북도 통일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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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기자가 전합니다.

다음달 대한민국 무주에서는 WTF 세계 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 전세계 172개국의 1,588명이 참가하기로 예정되 있는 이번 세계 태권도 선수권대회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될 것이라고 합니다.

최홍희씨의 저서 태권도와 나.
최홍희씨의 저서 태권도와 나.

그런데 이번 선수권대회에 북한의 ITF 국제태권도 시범단이 참가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올림픽 체육종목으로서 태권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우리민족 고유의 자랑스러운 무술인데요, 이곳 캐나다에서도 태권도는 일반 체육관에도 거의 꼭꼭 태권도교실이 있을 정도로 인종과 국가를 초월에 가장 사랑받고 있는 체육종목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권도가 둘도 나뉘어 있다는 것은 사실 대한민국이나 이곳 미주지역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북한주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더 잘 알고 있는데요. 이는 북한에서 가장 인기를 끈 영화중의 하나인 "민족과 운명"에서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씨와 남북 처럼 둘로 갈라진 태권도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2경제 산하에서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탈북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권효진씨는 지난해 캐나다에 처음으로 오면서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최홍희씨 였다고 전합니다.

권효진: 그때 당시 사람들이 해외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었는데 나 뿐 아니고 누구나 다, 그 민족과 운명 영화에서 최홍희가 그 마누라하고 같이 미국에서 캐나다로 차를 타고 노래 부르며 육로로 오잖아요. 그 장면이 전 북한사람들의 로망이었을 거에요. 아 저렇게 미국하고 가깝게 있구나, 실제로 많은 북한사람들은 실제 북한영화에서 승인되어 나온 캐나다의 평화로운 넓은 들판을 보며 언제인가 꼭 캐나다 등 넓은 세상에 나가보고 싶은 꿈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태권도 보급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에게 외부세상의 눈을 뜨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최홍희씨는 사실 태권도의 창시자였지만 정치적으로 남과 북 양쪽 모두에게서 희생당하거나 이용당한 비운의 망명객이었습니다.

함경북도 명천이 고향인 최홍희씨는 일제 강점시기 조선학병을 중심으로 반일동맹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8.15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해방이 막 되었을 때 최홍희씨는 일본에서 배운 가라데를 중심으로 한국군에게 무술을 가르쳐야 겠다고 결심하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선보였고 이 대통령은 이를 보자 바로 "우리 무술 택견이구만" 하고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1955년 4월 이승만대통령의 인가를 거쳐 이는 정식 "태권도"라는 이름이 정해졌으며 1959년에 최초의 태권도 교본이 만들어 짐으로서 민속놀이에 속하는 무술인 태껸을 잇는 현대 우리민족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최홍희씨는1959년에는 대한태권도 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선출됩니다.

하지만 최홍희씨는 북한영화 "민족과운명"에 나오는 것처럼 박정희정부와의 갈등으로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최씨는 저서 "태권도와 나"에서 박정희 전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의 선후배로서 함께 쿠테타를 모의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적고 있는데요. 후에 5.16쿠테타에 자신을 소외시키자 박정희 대통령과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후 최홍희씨는 계속해서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힘썼고 1966년 9개 나라가 모여 국제 태권도연맹 ITF를 창설해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기구가 됩니다.

태권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3월 태권도를 "국기"로 지정했으나 박정희 대통령 과의 계속되는 마찰로 최홍희씨는 정치적 생명을 잃게 되고 마침내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게 됩니다.

최홍희씨가 망명한후 1973년 서울에서는 전세계 17개국이 참가한 제1회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이는 오늘날 WTF 세계태권도 연맹의 출발점이 됩니다.

둘로 갈라진 우리민족의 태권도, 다음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