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한국을 위해 참전한 형제 이야기

캐나다 토론토 인근 브램튼시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해서 희생된 전사들의 이름을 새긴 위령의 벽.
캐나다 토론토 인근 브램튼시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해서 희생된 전사들의 이름을 새긴 위령의 벽. (RFA PHOTO/장미쉘)

0:00 / 0:00

앵커: 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들 그리고 한인사회 소식을 전해드리는 캐나다는 지금, 토론토에서 장미쉘 기잡니다.

61년 전, 한반도에 수많은 민족의 비극을 만들어 낸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잠시 휴전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한국전쟁에 2만 7천명의 군인들을 파병했던 캐나다는 휴전이 되기까지 516명의 캐나다 젊은이들의 목숨을 이 전쟁에 바쳐야 했습니다.

이 들 중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의 하늘아래 묻힌 한 평범한 캐나다의 시골청년인 죠셉 허시(Josph Hearsey)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1년이 지난 4월 25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죠셉(Josph Hearsey) 허 시의 동생 아치 허시(Archie Hearsey)의 유해가 형과 함께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안장합장 기념행사가 열린 것입니다.

과연 이들 형제에게는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 일가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즉각 이를 북한의 남한에 대한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를 포함한 16개국은 유엔군의 깃발아래 한국전쟁에 참가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은 시골 마을인 이그나스에서 살고 있던 허시 가족에게 한국전 참전소식이 전해졌을 때 허시(Hearsey)가족의 3형제 중 둘째인 아치 허씨는 누구보다도 먼저 한국전쟁에 지원하게 됩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태평양 건너 멀리에 있는 자그마한 나라,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간다는 것, 이들에게 한국전 참전은 어떤 의미였을 가요?

캐나다 한인 "한국전 참전 용사 회" 회장 김광웅 예비역 대령은 아치 허시를 비롯한 많은 캐나다 젊은이들이 한국전에 참가한 것은 위험에 처한 이웃나라를 돕는다는 정의감, 그리고 그 어떤 나라이든 자유를 빼앗기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광웅: 유엔이 한국전에 참가한다고 결정했을 때 캐나다가 제일 먼저 파병했습니다.

캐나다는 세계인류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동생 아치 허시가 21살의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여하자, 철도 공무원이었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던 형 조셉 허시가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며 참전하게 됩니다.

1951년 10월 13일. 영 연방 제27여단 제1사단에 배속되어 임진강 서북쪽에서 싸우던 동생은 중공군과 한 차례 격렬한 야간 교전을 치른 직후 인근 참호에서 그와 같은 성을 가진 병사가 총상을 입고 중태에 빠져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됩니다.

달려간 참호에는 뜻밖에도 고향에 있는 줄 알았던 형 죠셉이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형을 부둥켜안았지만, 형은 이미 초점 잃은 시선으로 동생을 쳐다보다가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전쟁이 끝난 후 캐나다 시골마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형이 자신을 위해 참전했다가 죽었다는 죄책감과 전쟁 후유증(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으로 평생을 괴로워 합니다.

사망하기 전 25년간을 폐결핵으로 고생했던 그는 그렇게 한국에 가서 형을 보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갈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의 유엔참전용사 방한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의 병이 이미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진 때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 딸을 대신 보내어 형의 무덤에 가보게 했습니다.

딸이 돌아와 들려주는 한국의 눈부신 발전이야기는 평생 형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죽은 후 형이 묻혀 있는 한국의 UN참전용사 묘지에 형과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하지만 부산유엔공원에는 참전용사의 아내만이 합장할 수 있었고 형제는 합장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허시 형제의 사연은 캐나다의 한국계 연아 마틴(Yonah Martin) 상원의원의 도움으로 한국국가보훈처로 전달됐으며 허시 형제의 참전동료들은 허시 형제의 합장 안장을 위한 모금운동이 벌였습니다.

캐나다 정부에서도 허시 형제의 유엔기념공원 합장 안장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한국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가져 끝내 허시 형제의 합장 안장을 성사시키게 됩니다.

마침내 2012년 4월 22일,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는 한국 인천공항에 죠셉 허시의 유해가 한국땅에 도착했습니다. 60전에 떠난 한국, 그리고 그 땅에 묻힌 형을 잊지 못하고 죽어서나마 그를 찾아서 온 캐나다의 한 평범한 참전용사.

그의 귀환을 그가 지켜낸 땅의 후손들이 뜨겁게 맞았습니다.

한국 국가보훈처의 성원들을 비롯하여 육군과 해군, 공군 의장대의 대표들이 비행기에서 내린 아치볼트 허시의 유해와 그의 딸 데비 허시, 손자 그리고 캐나다 참전용사들을 맞았습니다.

4월 25일에는 부산 유엔기념공원 전몰장병 추모명비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캐나다 참전용사와 시민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합장 안장 기념식을 거행했습니다.

한국을 지키러 온 동생과 그 동생을 지키러 한국에 온 형, 그리고 60년 만에 무덤에서나마 다시 만난 형제, 그 형제의 합장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졌습니다.

"형제로 태어나 전우가 되어 영원히 함께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