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전화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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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한 살부터 다시 나이를 먹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인생을 그렇게 표현한 건데요. 그래서 탈북자들에겐 주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큰 용기라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큰 용기를 내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이번 추석,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둔 탈북자 분들에게는 또 가슴 쓰린 명절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래도 가족과 함께, 그리고 남한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은 뜻 깊은 명절이 되었을 것도 같습니다.

마순희: 그럼요. 특히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당당하게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하루 빨리 고향에 가서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을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탈북자들 중에는 낯선 사회에서 정착을 도와주는 주변의 손길을 발판삼아, 혹은 주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자신의 성공을 일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남한정착을 잘해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착한사례 발굴 취재차로 전라북도 지방에 갔었는데요. 거기에서 군산명문 요리직업학교에서 한식요리 강사로 일하는 윤명옥이라는 탈북여성분을 만났습니다. 50대 중반의 그 여성분은 전라북도 전주지역의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 선생님을 통하여 추천받은 분이었습니다.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통일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의 100여 명의 전문상담사들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어느 지역에서나 그 지역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그 지역을 담당하는 전문상담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사례를 발굴하자면 전문상담사분들의 추천을 받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군산지역의 전문상담사이신 송은하 선생님과 함께 그 여성분을 만나려고 군산으로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그 강사분에게 우리가 찾아간다고 전화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보세요, 통화 가능하십니까?"하고 전화를 하는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저에게까지 들려오는 것입니다. "네, 미운 오리 전화 받습니다"하더라고요. 그래서 송은하 선생님이 "원 무슨 말씀을요, 선생님은 미운 오리가 아니라 오리 선생님이십니다", 이렇게 농담 섞인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는 모습을 보노라니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선생님에게 그 분이 왜 미운 오리라고 말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상담사님이 웃으시면서 그건 그 분에게 물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예진: 아니 왜 자신을 미운 오리라고 표현하신 걸까요?

마순희: 저 역시 궁금한 것은 못참는 성격이라 명옥 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자신이 미운오리인가구요. 그랬더니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을 귀찮게 해드리니까 저 스스로 저에게 붙인 별명이랍니다"하더라고요.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명옥 씨에게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전화기에 손이 갔고 전화의 상대는 예외 없이 상담사 선생님이셨다고 하네요. 밤이고 낮이고 문의 전화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한심했는지를 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하면 아무리 소중한 자리라도 뒤로 미루고 달려와 주었고 이해하지 못해서 두 번, 세 번 곱씹는 질문에도 늘 한결같은 어조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면서 상담사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늘 마음속에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옥 씨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배워서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명옥 씨도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에는 바다 한 가운데 혼자 버려진 것처럼 막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딸들을 생각하면 주저앉을 수 없었기에 닥치는 대로 일하였습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식당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간단치는 않았습니다. 처음 접하는 식당일이 서툴기도 했고 말투가 이상하다고 조선족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옥 씨는 탈북자임을 당당히 밝혔고 자신의 성실함으로 그 모든 편견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점차 사장도 직원들도 명옥 씨를 신뢰하게 되었고 차츰 안정적으로 적응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남겨진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정신없이 돈을 벌어서 2년 후에 드디어 딸을 데려오게 되었답니다. 일밖에 모르던 명옥 씨도 조금은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실제로 많은 탈북자 분들이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나 북한의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일보다는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일을 하더라고요.

마순희: 네 그분도 그제야 자신이 식당에서 일만하는 것보다 무엇인가 배우고 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의 대학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사실 윤명옥 씨는 북한에서 교원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사이도 없이 좋은 배필을 놓질 수 없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인물도 빠지지 않았지만 귀국동포 가족이라 일본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명옥 씨도 잘난 남편을 만나는 것이 로임도 없는 교원으로 취직하는 것보다 비할 바 없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부모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결혼을 선택했고 두 딸을 출산하고 전업주부로만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망한 후 급격히 어려워진 경제적 형편 때문에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온다고 떠났던 길이 한국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어느 날 한국에서는 나이가 있는 사람도 대학에 간다는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지인에게 내비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나는 것이 대학졸업생인데 연세도 있으신데 일하면서 돈이나 벌어라 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자신을 생각해서 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무시하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나도 꼭 대학공부를 해 보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았는데 그 때에도 역시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하게 되었답니다.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자신도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알아보게 되었고 서해대학 야간학부에 다니게 되었던 거죠.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이면 공부해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점점 공부에 재미를 붙여 보란 듯이 자격증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웠었기에 가장 어려웠던 영어공부도 열심히 외우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영양사자격증 시험을 보았는데 6명 중에 합격자는 윤명옥 씨 혼자였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소리쳐 자랑하고 싶었고 온 세상 기쁨은 자신이 혼자 독차지한 것 같았답니다.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더더욱 소중한 자격증이었고 자신도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준 첫 자격증이었으니 더더욱 소중했고 자랑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담사 선생님과 상의해 결국 군산명문 요리직업학교에 한식 요리강사로 취직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스스로를 미운 오리라고 했지만 동화 속의 미운 오리는 결국 더 우아하고 멋진 백조였잖아요. 그분은 아마도 자신이 백조가 될 걸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 분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뭔가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게 많더라고요. 그분은 또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실까요?

마순희: 윤명옥 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교원들을 나라의 미래를 키워가는 혁명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연령층도, 직업군도 각이한 교육생들의 특성에 맞게 취업훈련을 잘하여 전원이 합격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인 자신의 영예로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요. 사실 지금은 더 나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다고 오라는 곳도 많지만 처음부터 자신이 탈북자임을 알고도 자신을 믿고 채용해준 직업학교의 원장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은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고 끝까지 믿어 주시는 원장님은 명옥 씨의 오늘이 있게 해 주신 또 한 분의 은사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윤명옥 강사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배움을 중단하지 않고 더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는 명강사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주변의 도움으로, 그리고 스스로 남한에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 탈북자들의 얘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