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낸 사고, CCTV는 보고있다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로망'이 하나씩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어의 낭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나만의 작은 소망'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탈북자들의 로망은 뭘까요? 자기 소유의 승용차를 갖고 그 차를 운전하는 로망은 어떠십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 탈북자들의 운전 면허증 취득과 자동차 운전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오늘은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시간입니다.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합니다.

마순희 : 2008년에 한국에 온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북한에서도 무역 관련 일을 하는 아버지 덕에 생활에 어려움이 없이 살던 그 여성이 탈북하게 된 동기는 바로 승용차였다고 합니다. 장마당에서 한국드라마 CD를 사서 밤새워 이불속에서 보고 그랬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천국의 계단"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면은 여성들이 승용차를 몰고 달리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나도 한국에 가서 저렇게 차를 한 번 몰아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지금 한국에 와서 꿈에 그리던 좋은 차를 타고 서울거리를 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예진: 그럼 탈북자들이 운전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건 뭔가요?

마순희: 아무래도 처음 나왔을 때에는 도로나 교통정보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운전기술도 서툴다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체험하면서 느낀 건데요, 운전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면서 익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간혹 당황하면 제동장치를 밟는다는 게 가속페달을 밟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엄청 주의를 기울여야겠지요. 우리 탈북자들이 처음 나와서 운전을 하면서 교통법규를 잘 모르기도 하고 또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큰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상담하면서 알게 된 사례인데 그리 크지 않은 접촉사고를 냈던 내담자가 전화 온 적이 있었습니다. 사고는 크지 않았지만 접촉사고를 내고도 그냥 가 버렸기에 뺑소니로 되어 더 큰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어느 길이나 사람은 없었지만 CCTV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던 거죠.

이예진: 남쪽은 거의 모든 길이나 빨리 달리거나, 교통 법규를 위반하거나, 사고를 내거나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CCTV 카메라가 설치돼있는데요. 그래서 이분은 어떻게 돼셨나요? 법적처벌을 피하기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 그래서 법률 상담으로 연결을 해드렸는데요. 사실 저희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위반하는 게 이런 교통법규입니다.

이예진: 교통 법규는 기본이기 때문에 그것만 지켜도 큰 사고가 없을 텐데요... 지난 8월 기준으로 한국에서 등록된 자동차 수는 약 2055만대로, 국민 2.5명당 자동차 1대씩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그만큼 차가 많고 운전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고도 많죠. 탈북자들이 사고를 당하면 더 당황하실 것 같아요.

마순희: 아무래도 잘 모르다보니 더 당황할 수도 있겠지요. 한국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보험회사에 연락하면 그 즉시에 달려와서 처리해주고 있기에 그분 같은 경우에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사고처리를 했더라면 문제가 커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아무리 명심하느라고 해도 본인의 부주의나 혹은 상대방의 과실에 의해서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더욱이 차를 처음으로 운전하는 초보운전자인 경우에는 뒤창에 여러 가지 문구들을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거든요. 저도 운전연수를 하는데 맏딸이 스티커들을 찾아서 인쇄해서 저에게 붙여야 한다고 하면서 내용을 보여주더라고요. 뭐라고 쓰여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예진 : 재밌는 게 많죠. 뭐를 붙이셨습니까?

마순희: 초보운전, 애기가 타고 있어요... 이런 건 기본이고요. 저는 '2시간째 직진 중' 이라고 붙였습니다.

이예진: 옆으로 빠져 나가야하는데 초보 운전자라 옆을 볼 경황이 없다... 이런 얘기죠.

마순희: 그리고 초보중의 왕초보, 답답하시죠, 저도 환장하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웃음)

이예진: 초보운전자들은 운전이 미숙하니까 뒤에서 오는 차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문구를 그렇게 재미있게 붙이기도 하죠. 선생님도 곧 붙이셔야겠네요. 그런 문구를 붙이고라도 자가용 승용차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탈북자들 중에 차가 필요 없는데도 굳이 좋은 차를 사는 분들도 계시다고요?

마순희: 제가 상담 받은 사례 중에 잊을 수 없는 사례는 한 수녀님의 전화였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나와서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 무슨 제약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사연인지 물어 보았더니 한국에 나온 지 6개월 된 탈북청년을 알게 되어 도와 주고 있는데 차를 사서 운전사로 일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3000만원이 넘는, 약 3천 달러 정도 되는 스타렉스라는 승용차를 사려고 하기에 아는 분을 통하여 돈을 빌려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 주민센터에 물어 보았더니 아무리 본인이 일하는데 필요한 차라고 해도 기준이 있다고 하면서 생계비는 물론 의료보험도 급여1종에서 제외된다고 하더랍니다. 과연 사실인지 물어 보더군요. 그래서 자세한 내용 설명해 드렸습니다. 차를 사도 생계용 화물차나 10년 이상 된 승용차, 2000CC이하의 차를 사야 제한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남의 돈을 빌려서 차를 타고 일하려 다니게 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도와주는 것이 될지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예진: 자신이 열심히 벌어서 또 연습도 많이 해서 자동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을 빌려서 새 차를 갖고 처음부터 일을 시작하는 게 걱정스럽다는 말씀이셨군요.

마순희: 아무리 차를 필요한 직업이라도 남쪽에는 중고차도 많습니다. 굳이 남의 돈을 빌려서 그 비싼 차를 살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례는요. 경기도에 살고 있다는 한 청년이 화가 나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취업특례로 5년 동안은 4대 보험회사에 다녀도 의료보험은 의료급여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맞다고, 왜 그러시는지 물어 보았더니 자신은 아직 5년이 안 되었는데 의료급여가 대상이 안 된다고 하여 지금 주민센터에 찾아가서 사회복지 담당자와 따져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시더라도 잘 알아보시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하나하나 상담을 해 보았더니 고급 자동차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승용차 허용 기준을 이야기해드렸더니 그럼 어떻게 남자가 낡은 차를 타고 창피하게 일하려 다니겠는가고 하면서 탈북자들을 우습게 보는 거라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에게 잘 설명해드렸습니다. 1년에 병원에 몇 번을 가는지, 그리고 수급자와 직장의료보험과의 금액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면서 슬그머니 한 마디 해줬어요.

사실 회사에도 다니고 있는 젊은 청년이 병원에 가서 의료급여로 접수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격에 안 맞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 만큼 정착하셨으면 당당하게 직장의료보험으로 진료를 받는 게 더 당당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이죠. 웃으면서 잘 이야기했더니 그제 서야 마음이 풀려서 한 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딱히 의료급여를 받자고 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같아서 한 번 성질 내본 것이라고요. 정말 가끔 상담하다보면 엄연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생트집을 걸어 보는 짓궂은 분들도 간혹 계시거든요. 그럴 때는 같이 정색하여 대답하는 것보다 농담을 섞어 가면서도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는 것이 바람직 한 경우들도 있더군요. 저도 앞으로 운전을 하여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르고, 문화시민답게 교통법규도 잘 지켜서 자신도 안전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안 주는 그런 운전자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권리에는 항상 의무가 따릅니다. 본인이 자동차를 갖고 운전하고 다닐 권리를 누리기 위해 교통 법규를 지키고 안전 운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의무, 지켜줘야겠죠.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