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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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옛 속담에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가지 안에 값나가는 물건이 담길지, 허드레 물건이 담길지는 뒤웅박 임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 만나기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여성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 가운데 70%이상, 그러니까 2만여 명이 여성이라고 하죠. 최근에는 남한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탈북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단을 조직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활동을 벌이는 일들이 많아졌는데요. 그만큼 어느 정도 삶의 여유나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겠죠. 그런데 반대로 아직은 낯선 사회에 잘 정착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분들의 얘기를 해보죠. 최근에 이와 관련한 상담이 있었나요?

마순희: 네. 얼마 전에 상담한 40대의 한 여성의 상담사례입니다. 북한에서 국군포로 가족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오던 그 여성은 10여 년 전 어느 날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브로커, 그러니까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탈북하다 보니 중국에 와서 오갈 데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래도 그 여성의 경우에는 좋은 분들의 소개로 꽤 큰 도시의 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고 식당에 드나들던 조선족 사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회사긴 하지만 직원 수십 명을 거느리고 사업하고 있었던 사장은 그녀의 처지를 알게 되자 자신의 회사에 취직을 시켜주었답니다.

오도 가도 할 수 없었고 중국말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고 동료들 사이에서 사소한 문제라도 생길세라 성의껏 관심해 주는 사장님이 너무 고마워서 그 여성은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제 일처럼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신뢰가 생기자 그에게 회계업무를 맡기게 되고 마침 미혼이었던 그 사장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딸이 태어나게 되었고 중국말도 어지간하게 하게는 되었지만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라 중국에서의 삶은 항상 불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고향에서 온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 가면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한국에 가고 싶어 하기에 먼저 나가서 자리를 잡고 남편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여성은 4년 전에 한국에 왔답니다. 아시는 것처럼 하나원 수료 후 6개월이 지나야 여권수속이 되기에 기다렸다가 국제결혼 수속을 마쳤고 2년 전에 남편이 딸을 데리고 한국에 오면서 세 식구는 아무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답니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딸은 어린이집과 복지관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익혔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별 문제 없었지만 남편이 문제였습니다. 중국에서는 크지는 않았지만 회사를 경영하고 사장으로 일했던 그는 한국에 와서도 남들보다 더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랍니다. 회사에도 취직해 보았지만 적응하지 못해서 얼마 못가서 사직을 하군 했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것 외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마침 그 여성이 국군포로 가족이라 정부에서 받은 돈이 얼마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턱대고 사업을 하겠다고 한답니다.

한국에서 몇 년 살면서 개인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시작했다가는 십중팔구는 접어야 하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는 그 여성이 극구 말리게 되자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고는 난폭한 언어로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이예진: 중국에선 안 그러던 분이 환경이 바뀌니까 사람까지 바뀌었던 거군요.

마순희: 네. 얼마 전에는 남편의 기를 살려 준다고 차를 사주기도 했는데 도저히 마음을 못 붙이고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어 보기도 했는데 싫다고 가는 사람 굳이 붙잡을 필요가 무엇인가, 그냥 가겠다면 보내버리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답니다. 매일 술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남편이 지겨워서 이혼했으면 좋겠는데 아홉 살 딸이 걱정되어 망설인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전화였습니다.

마침 여성이 서울에 살고 있고 얼마 멀지 않은 곳이라 전화로가 아니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만나게 되었고 전화로 미처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 것이 좋을 것 같은지 물었더니 남편이 마음을 잡고 딸이랑 세 식구가 한국에서 잘 살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남편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성에게 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의지가지 할 곳 없는 자신을 어떻게 보살피고 가족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남들은 브로커 비용 때문에 한국에 정착하면서 처음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기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걱정 없이 지내다보니 일자리도 자신이 선택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잡을 수 있게 된 것이 다 남편의 도움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중국에서는 사장으로 당당하게 직원들을 거느리고 사업을 해왔고 가족 앞에서도 떳떳한 가장 노릇을 해 왔는데 한국에 와서는 서로의 입장이 달라지게 되다보니 얼마나 혼란스러울지를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새겨보게 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지금의 상황에서 남편의 심정도 이해해주고 중국에 가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말고 다녀오도록 해라, 갈 때에 이혼을 하고 보낼 것이 아니라 한 번 부부가 헤어져 있으면서 서로가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고 그 이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문제다, 한 번 결정한 후에 번복하기는 서로가 쉽지 않을 것이기에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도록 상담해주었습니다. 더욱이 둘 사이에 딸이 있기에 어떤 선택이 딸의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문제지만 다시금 짚어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해 보았더니 지금 부부는 이혼은 하지 않고 남편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매일이다시피 전화가 온답니다. 딸이 보고 싶어서라도 한국에 오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괘씸하게도 자신이 보고 싶다는 말은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더 해주었죠. 딸을 사랑하고 보고 싶다는 것은 곧 자기를 보고 싶다는 것인데 이혼하겠다고 중국에 갔던 사람이 쑥스럽게 그걸 말로 표현하겠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 주면 곧 돌아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얼마 안 있어서 그 남편이 한국에 돌아온다고 하니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저도 믿고 싶습니다.

이예진: 결혼생활에 고비는 늘 있기 마련이라고 하니까요. 좋은 소식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탈북자 분들을 보면 한국에 정착한지 얼마 안돼서 결혼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희가 한국에 정착하는 때인 2003년에는 하나원이 본원은 남성들과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있었고 분원은 여성 탈북자들을 위한 곳이었는데 그 때 산업연수원과 시설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탈북자 여성들이 산업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던 미혼인 남성들과 서로 사귀게 되고 가정을 이룬 것도 여러 건이 되더라고요. 또 지역에 배치 받게 되면 많은 분들이 탈북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여러 가지로 연계되게 됩니다. 혼자 사시는 분들인 경우 주변에서 소개도 하고 만남을 주선하기도 해서 결혼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답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알게 되어 결혼까지 가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탈북자들의 모임에 가보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다들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상대가 같은 탈북자인 경우도, 중국인인 경우도 있고 또 한국에서 살고 있는, 본토박이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드문 예이기는 하지만 국립의료원에서 근무할 때는 미국인과 살고 있는 여성도 제가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이예진: 그런데 그 선택은 신중했을까요? 탈북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 다음 이 시간에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