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남한서도 뿔뿔이 흩어져 산다면

설날을 일주일여 앞둔 12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설날을 일주일여 앞둔 12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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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온 가족이 북적북적 모이는 남한의 설 명절이 되면, 탈북자들은 온갖 추억이 깃든 고향과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외로움이 커집니다.

그런데 탈북자들 중에서는 북한이 아닌, 같은 남한 땅에 살면서도 의가 상해 가족끼리 떨어져 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설 명절, 외로움이 더 커졌다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북한에서도 음력설을 기념하죠? 한국과는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요?

마순희: 물론 북한에서도 음력설을 쇠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을 때에는 그래도 양력설을 2-3일 쇤다면 음력설은 하루 쉬는 정도였는데 지금 북한에서 떠난 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의 말에 의한다면 음력설을 더 많이 쇤다고도 하더라고요.

북한에서의 설 명절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답니다. 한국에서는 설 명절이면 고향에 찾아간다고 몇 시간씩 밀리는 차를 타고 고생고생을 하면서 가게 되는데 북한에서는 전혀 생각도 못한 풍경인 것 같습니다.

설날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푸짐한 설음식을 빠뜨릴 수가 없겠지요.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한 북한이었지만 그래도 설날을 위해서 한 줌 한 줌 쌀을 모아서 따로 모아 두었다가 떡을 하거나 한 푼 한 푼 돈을 모아서 선물을 사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아주 절박했던 몇 년을 빼고는 그래도 설날이면 떡도 하고 고기국도 끓이고 술도 장만하는 등 나름대로 명절분위기를 내군 했습니다.

이예진: 한국에 와선 설날 주로 어떤 음식을 드시나요?

마순희: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도 북한에서처럼 떡도 하고 국수도 먹었거든요. 한국에서는 떡국을 먹잖아요. 북한에서는 아침에 기름진 음식과 떡을 먹고 저녁에는 반드시 시원한 국수를 먹거든요. 여기에서 떡국을 먹는다는 게 많이 다르죠. 남한에선 동태전 같은 여러 가 지 전도 하고 잡채도 하죠. 북한에선 잡채를 모르거든요. 북한에선 녹마국수가 비슷한데 그걸 양념에 버무려서 채소나 고기를 버무려서 하는데 참 맛있더라고요. 저희도 한국에 와서 산지 오래 되니까 다른 일반 집처럼 똑같이 해먹고 있습니다.

이예진: 네. 북한에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해도 고향과 가족, 친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추억이 아련한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해마다 음력설이 되면 탈북자들이 모여 설음식을 장만하거나 단체들이 행사를 마련하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어떤 해에는 여러 단체들에서 같은 시간에 설날 모임을 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도 금년까지 서울에 와서 벌써 열두 번째로 설을 맞이하는데 해마다 설을 맞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떤 해에는 이웃들이 함께 모여서 설을 보낼 때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아는 분의 별장에서 모임 겸 설을 맞은 적도 있었네요.

탈북자 단체와 함께 차례상을 차려놓고 고향을 향하여 제를 올린 해도 있었고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던 설날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해에는 북한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통일전망대에 찾아가서 우리들이 직접 만든 북한음식을 차려놓고 망향제도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음식도 나누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설날도 있었습니다.

이예진: 남한에서 맞는 탈북자들의 명절, 다양한 행사가 있다고 해도 고향이나 가족 생각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탈북자들이 많이 있잖아요. 설이 다가오면 하소연하는 전화도 많을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가족이 함께 오신 분들도 있지만 혼자 오신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명절이라고 즐기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도 집에만 있지 않고 남산타워나 광화문광장, 그리고 인사동이나 민속촌 등에서 여러 가지 민속놀이도 하고 명절을 즐기는 경우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간혹 가족이 왔어도 여러 가지 안 좋은 사연들로 서로 의가 상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할머니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려고 자신이 저축했던 돈과 지인의 자금까지 다 동원해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돈을 제 때에 갚지 못하다 보니 가족들을 독촉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한 가족 사이에서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언성을 높이게 됐고 그러다 서로 걸음을 안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는 할 말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더니 혼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신세타령을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예진: 힘들게 남한에 와서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져 산다면 더 마음 아플 것 같아요. 그 할머니 가족은 올해 설 명절에 다 같이 모이지 못했겠네요?

마순희: 며칠 전 지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게 되는 모임이 있었는데요. 그 할머니가 너무 기뻐하시면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자식들도 한국에서 좀 살다보니 돈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마음으로 가족을 데려오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다고 기뻐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설에는 선물이라도 사가지고 그 분들을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다행이네요. 어느 가정이라고 다 행복하기만 하겠습니까만 설 명절이 다가오면 아무래도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더 커지잖아요. 그래서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탈북자들은 더 힘든 명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사례들이 가끔 있기는 합니다. 인천에 살고 있는 40대의 한 여성은 13세 딸을 북한에 두고 돈 벌어 온다고 중국에 왔다가 다시 돌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공안의 눈을 피해서 러시아의 어느 한 농촌에 피해서 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러시아 벌목공으로 와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고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오고 나서 북한에 두고 온 딸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는데 남편은 북한에서 다른 여성과 재혼하였고 사춘기가 된 딸은 엄마를 찾아서 중국으로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딸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흑룡강 성의 농촌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딸을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딸만 찾으면 만사가 해결될 것 같았지만 딸은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 했습니다.

낯선 한국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새 아빠도 남동생도 못마땅하기만 하여 매일이다시피 엄마와 싸운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가서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냐면서요. 그럴 때마다 아들은 어디서 저런 아줌마가 와서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하면서 누나와 싸우고 그러다보니 그 여성은 너무 속상해서 차라리 딸을 데려오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울면서 하소연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예진: 아무래도 딸이 엄마에 대한 원망이 풀리지 않아 그런 것 같네요. 지금 그 가족은 어떻게 서로 잘 화해가 됐나요?

마순희: 결국 딸이 엄마 집에서 살기 싫다면서 대안학교로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물론 몇 년 전 국립의료원에서 일할 때 들은 사연이었고 지금은 잘 적응해서 딸은 회사에서, 그리고 아들은 아역배우가 될 꿈을 안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열심히 연기공부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예진: 다행이네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바로 가족이겠죠. 다음 주로 다가온 음력 설 명절, 미리미리 서운한 건 없었는지 가족의 마음을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