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 다른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 표현을 계속 억누르다보면 웃고 싶어도, 울고 싶어도 아무런 표현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여러분은 감정 표현 가능 상태입니까?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 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탈북 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 맞서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인 고충에 대해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규림 학생은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인다고 하는데요. 사연을 먼저 들어볼까요?
김규림: 내 행동 하나하나가 탈북자를 대표하잖아요. 나쁜 일이 생기면 탈북자가 했다고 하지, 누가 했다라고 안 하잖아요. 항상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노력했어요. 대인관계를 어떻게 할까. 저도 사람들 많은 데 가면 떨리거든요. 그런 걸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까 했는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어'와 '오'자 구분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잘 안 되는데, 자꾸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 사회적으로도 아직은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죠. 규림 학생도 그래서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데요. 탈북자들은 아무래도 남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되겠죠?
전: 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북한 정권과 북한 사람들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요. 뭔가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하면 북한에 대한 안 좋은 생각과 연관시켜서 말하는 남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요.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포용적이지 못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들, 우리 사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방인이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요. 직장 취업문제나 사회 복지 등 혜택이나 권리를 나눠가져야 한다는 피해의식도 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탈북자들이 특히 남한 사람들을 처음 대면하는 자리나 모임에 가서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려워하고요. 자기표현도 서툴다고 합니다.
김규림: 자기표현을 잘 못해요. 짜증나면 짜증난다고 표현을 잘 못해요. 참는 거에 익숙하다고 할까요.
이: 자기표현에 서툴다고 말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걸 계속 참는 건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일 텐데요. 그렇게 참다가 마음의 병이 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요?
전: 일단 감정 자체를 표현하지 못하면 병이 되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꾸 쌓아두면 병이 되거든요. 실제로 '감정 표현 불능'이라는 병도 있거든요.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표현하지 못하면 두통이나 가슴이 답답하고 화병처럼 가슴이 화끈거리는 듯한 신체적인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요. 그런 것들이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상태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 규림 학생도 자기표현을 억제하느라 쭉 눈물을 참아왔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고민이랍니다.
김규림: 몇 년 동안 눈물이 없었어요. 울고 싶은데도 눈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예전에 너무 눈물을 많이 참아서 거기에 익숙해진 거예요. 지금은 눈물이 좀 나오긴 하는데 눈물이 좀 나오려고 하면 저도 모르게 울면 안 돼 하고 참아요. 기도하러 가면 가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거든요. 그런데 저도 마음이 그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이걸 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죠.
이: 규림 학생은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먼저 이성적으로 자제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괜찮을까요?
전: 예. 사실은 이런 상황이 이성적으로 자제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거든요. 내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못하고 그러다보면 심각한 심리적 문제까지 나타날 수 있는데요. 예전에도 감정노동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점원이나 판매원이 항상 웃어야 하고 기쁘게 손님을 맞아야 하니까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우울하게 만든다는 연구도 있거든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눈물도 그렇지만, 탈북자들이 웃음에도 어색한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김규림: 저희 북한 사람들이 웃는 게 어색하대요. 웃는 연습을 거울 보면서 하고 있어요. 오징어 뒷다리 아세요? 리~를 10초 동안 하는 거거든요. 이거 하면 입 꼬리도 올라가고 눈 애교 살도 생긴대요. 그러면서 자연스러워진대요.
이: 연습하면 웃음도, 눈물도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선생님께서 직접 상담하신 탈북자들 가운데 감정표현에 서툰 경우가 많이 있던가요?
전: 북한이탈주민들과 상담해보면 자신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 실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억누르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북한이 전체적으로 개인의 감정을 살리기보다 전체적인 감정 표현을 중시하고 개인의 개성과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은 울거나 웃지만 그런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북한 사회 전체를 대변해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텔레비전에서 보면 어떤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의 감정표현을 보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 같은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남한에 와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그런 것들에 서툴고 자신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것도 위험해질 수 있겠네요. 웃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규림 학생도 그렇고요. 웃음의 코드라고 하는, 같은 희극을 보더라도 탈북자와 남한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시점이 영 달라서 애매한 경우가 생긴다고 하는데요. 규림 학생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실까요?
김규림: 정말 힘들 땐 저도 도망쳐요. 남한 애들하고 얘기하다보면 얘기 도중에 나오는 웃음의 순간이 잘 맞지 않아요. 어떻게 끼어들 수가 없는 거예요. 괜히 끼어들면 분위기가 싸늘해질 것 같기도 하고요. 고민을 너무 앞서서 하는 거죠. 표정관리가 안 되죠. 그러면 자리를 피해버리죠.
이: 웃음의 시점이 다르다는 단면을 얘기했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대화가 안 통하게 될 것 같아요.
전: 네. 이것은 문화적인 문제로 볼 수 있는데요. 문화를 공유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죠.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 있죠. 저만 해도 제 또래보다 어린 사람들과 공연이나 텔레비전을 보다보면 웃음의 시점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은 문화적인 차이이기 때문에요. 북한이탈주민들도 적응하다보면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인 것 같고요. 조급해서 빨리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긴장하고 힘들어지니까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접근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이번에 만나 얘기해본 규림 학생은 영특하다고 할 정도로 매일 다음날에 뭘 할지 계획표도 짜면서 적극적으로 생활하고요. 그렇게 낯선 환경, 새로운 만남에도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에 좋아지긴 어렵겠지만 꾸준히 자기 마음을 성찰하고 다잡을 필요가 있겠죠?
전: 네. 급히 먹는 밥이 체하죠. 한꺼번에 다 바꾸려고 하면 내가 오히려 조급해지고 그러다보면 일을 더 그르칠 수 있고 긴장해서 더 적응하는데 늦춰질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꺼번에 다 바꾸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고요. 그러다보면 적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실제로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던 한 주부가 웃음을 활용해서 치료하는 웃음 치료를 받고 평소 일부러 큰 소리로 웃거나 서운한 일이 있으면 즉시 감정을 표현했더니 혈압도 낮아지고 스트레스 지수도 떨어졌다는 얘길 들었는데요. 정신 건강 뿐 아니라 신체 건강을 위해서도 자신의 감정은 잘 표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 도움 말씀에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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