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비에 집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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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남한에서는 탈북자들에게 정착지원금 외에 자립해서 직장을 구해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기 전까지는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생계비를 지원해줍니다.

남한의 어려운 가정에도 지급되는 생계비는 가족 인원 수 등에 따라 매달 수백에서 수천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요.

탈북자들 중에는 여전히 직장을 구하기보다 이 생계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이 생계비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최근 북한인권정보센터 등에서 탈북자들의 취업과 실업, 소득 등 고용동향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이 조사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인 탈북자 400명 가운데 남한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인구는 239명으로 59.3%,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164명으로 40.7%로 나타났습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시간을 통해서도 종종 말씀드렸습니다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는 탈북자분들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취업자 비율을 보면 4, 50%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제가 며칠 전 60대 초반의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12살 정도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고 아들은 지방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에 와서 아들이랑 함께 살고 싶은데 갑자기 서울에 와서 일자리를 찾지 못할까봐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40대 초반의 아들이 건강하다고 하니 일자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한전이라는 대기업에서 탈북자 단체를 통하여 검침원으로 취직시키는 사례도 있어요.

이예진: 검침원이라면 집집마다 전기를 얼마나 썼는지 그 양을 점검하는 일을 말하는 거죠.

마순희: 네. 그런 좋은 일자리도 생길 수 있다고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말이 그런 일자리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아니 왜요?

마순희: 지금 아들이 150만 원, 1500달러 정도를 벌고 있는데 좀 더 받으면 자기와 손주가 생계비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리지 않으려면 150만 원 정도의 일자리만 구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예진: 한국정부에서 주는 생계비를 말하는 거죠?

마순희: 네. 그래서 두 식구가 받는 생계비가 얼마인지 물었더니 그게 적지 않더라고요. 100만 원이 넘더라고요.

이예진: 1000달러가 넘는다는 거군요. 매달 받는 거죠?

마순희: 네. 그 돈을 포기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도 가끔 일당으로 조금씩 일하는 것도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소득으로 잡히면 생계비를 못 받게 될까 봐요. 그 아들이 지금은 독신으로 되어서 그렇지만 서울에 와서 손주랑 한 가족으로 등록하면 2인 가족으로 되기에 부양의무자 기준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알려드렸지만 괜히 그러다가 생계비를 잘리면 어떻게 하냐면서 그런 일자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탈북자뿐 아니라 남한 사람들 중에서도 경제활동하기 어려운 가정에는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있죠. 하지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소득이 어느 정도 생기면 생계비 지원은 또 다른 어려운 가정에게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탈북자들 중에는 실제로 몸이 안 좋거나 노인들 외에도 계속 생계비 지원을 받으려다 법적으로 복잡해져 상담을 하게 되는 탈북자들도 꾸준히 있는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매번 하게 되는 말이지만 낯선 환경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내가 몸담고 살아 온 북한이나 중국에 비해 물질적으로 많이 풍요한 대한민국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일할 능력이 있고, 또 일할 조건이 되면 누구나 일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로 일할 조건이 안 되면 그것 역시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입니다.

우리 탈북자들 중에는 한국까지 도착하는 기간 부닥치는 온갖 위험과 어려움들을 극복하면서 오는 도중에 다치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하여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일을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하면서 생계비를 받으면서 살다보면 정작 건강이 회복되어도 취직하기가 겁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냥 좀 적게 쓰고 살더라도 지금 생계비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 이 현실에 안주하고 싶으실 겁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도 전투잖아요. 또 회사생활 적응도 걱정이 되고 혹시 자녀가 있다면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하는 것도 걱정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 때문에 선뜻 취업을 못하고 수급자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문 밖에 나서면 그것 역시 할 만 한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예진: 탈북한 것만큼의 도전의식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걸 깨지 못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마순희: 네. 어제 어떤 모임에서 만난 제 또래 여성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북한에서 교사로 30년을 살아오다가 자식들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무슨 일이든지 할 것 같아서 일하러 나갔답니다. 식당에 갔으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대요. 음식을 잘 만들 수도 없고, 서빙을 할 수도 없고, 북한에선 접대라고 하는데 그것도 못할 것 같고, 그래도 설거지는 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일하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정작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을 가시려니까 쉽지 않더래요. 설거지를 하고 물통을 비워야하는데 들 수가 없어서 그릇으로 퍼서 버리려니까 식당 주인이 “아줌마, 그것도 못 들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는가?”하고 면박을 주더래요.

북한에서 만날 ‘선생님, 선생님’ 소리를 들으면서 살다가 ‘아줌마, 아줌마’ 하면서 대접을 못 받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에 온지 7년 되었지만 그냥 생계비 받으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를 보고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동갑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니 그냥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하더군요.

이예진: 이분도 사실 선생님이었으니까 그쪽으로 준비를 조금 더 해서 탈북학생들을 위한 학교도 있잖아요. 조금 더 잘 알아보고 일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그런데 몸이 고되지 않은, 쉬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그런 일일수록 준비가 필요하죠?

마순희: 그렇지요. 단순노동은 힘이 들고 누구나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수 역시 적지요. 그러나 전문직으로 일하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이 덜 들더라도 보수도 많고 긍지감도 있고, 장점이 많습니다. 물론 전문직으로 일하려면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어느 지역 고용센터에 근무한다는 한 탈북여성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 여성은 북한에서도 기능공으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은 힘들지 않았고 급여도 더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중국에 온 후 식당에서 일하면서 짬짬이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답니다. 그러다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일하는 동안에도 해당분야의 공부를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서는 처음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보리라 결심했다고 하네요. 하나센터교육이 끝난 후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반회사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면서 사이버로 대학을 다녔습니다.

이예진: 동영상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대학을 말하죠.

마순희: 네. 그런 사이버로 대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일하면서 대학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전혀 모르고 있던 한국의 사회복지와 심리상담 등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4년이 언제 지났는지 몰랐대요. 금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그동안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지인들의 소개로 고용지원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물론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신청을 하고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절차를 다 거친 것이지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여 일반생산직 노동자로부터 공무원으로 된 거죠. 40대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이예진: 이른 나이도 아니었는데 정말 열심히 하셨나 봐요. 이렇게 나이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탈북자들의 얘기,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