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으십니까?

추방명령을 받고 아기와 함께 캐나다를 떠나려고 하는 한 탈북민.
추방명령을 받고 아기와 함께 캐나다를 떠나려고 하는 한 탈북민. (RFA PHOTO/ 장미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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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 때 잘 나갔지' 이렇게 과거가 더 화려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과 다른 과거를 숨기고 싶은 사람도 있고요. 혹은 과거를 왜곡하거나 포장하는 사람도 있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탈북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그 나라로 해외 이민, 망명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잘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최근 늘고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먼저 도착한 사람이 브로커가 되어 또 다른 사람을 유혹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모집하는 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났습니다. 제가 상담했던 그 친구도 브로커의 말만 믿고 여러 명이 함께 떠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착하면 집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걱정 없이 살 거라던 브로커의 말과는 정반대였답니다. 영주권을 주기는커녕 복지도 자국민들에 한하여 잘 되어있는 것이지 새로 들어오는 난민들에게는 차례지는 혜택이 아니더랍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주택도 주고 생계비도 주고 여러 가지 탈북자지원정책들이 많았는데 그 때에 가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겠더라고 하더군요.
외국에서도 북한에서 직접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난민으로 인정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국적을 취득한 후 그것을 속이고 다른 나라들에 입국할 경우 지문인식 등을 통하여 거짓 여부를 검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론 영주권은 고사하고 생활비도 안 주다보니 자연히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 그 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시 돌아오는 사례들이 더 많습니다.

이예진: 사례들 여러 가지를 말씀해주셨지만 해외에 이렇게 더 적응하기 힘든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마순희: 사실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에서도 어려운데, 말과 글이 모두 다른 외국에서의 삶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사회복지가 잘 된 나라일수록 어린이나 노인들,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지만, 근로능력자들 즉 젊은이들인 경우에는 더 많은 노동과 세금으로 복지예산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그렇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 그렇게 마음과 달리 어려움을 느끼고 한국에 돌아온 탈북자들이 다시 정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뭘까요?

마순희: 물론 떠날 때의 사정이나 목적이 서로 다른 것처럼 어려움 역시 서로 다를 것입니다. 단순히 브로커의 말을 믿고 혹은 함께 가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복지가 잘 된 곳으로 찾아 가려고 떠났던 사람들의 경우에도 어려움은 있을 것입니다. 우선 외국에 나가서 난민으로 살려고 하다가 되돌아 온 경우에 더는 한국에서 북한이탈주민 지원제도의 혜택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살던 집을 반납하지 않고 지인들에게 관리를 부탁하고 간 경우에는 돌아와서도 살 수 있는 보금자리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주택공급에서도 북한이탈주민 우선공급 지원도 받을 수 없고 다만 한국의 일반 무주택자들처럼 똑같은 자격으로 신청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처음에 돌아 왔을 때 가족이나 친척이 있으면, 불편하지만 주택이 공급될 때까지 얹혀살면서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럴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은 교회나 쉼터 등 시설들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가끔은 대출을 받아서, 혹은 승용차나 화물차 등을 할부로 샀다가 다른 사람에게 팔고서 가는 경우도 있었고 사업을 한다고 사업자금을 지원받고 그대로 몰래 출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그 채무가 해결되기 전에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거든요. 제가 알고 있던 그 친구처럼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보험사기, 대출사기 등 불법을 저지르고 출국한 경우들도 있는데 외국에서 생활이 아무리 어렵고 또 돌아오고 싶어도 법적처벌이 두려워서 돌아오지 못 하는 경우들도 있어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예진: 그런 경우 법적으로 구제가 가능한가요?

마순희: 무조건 구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법률상담을 받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는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해당한 채무를 변제하든가 불법을 저질렀다면 법적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지요.

이예진: 브로커 말만 믿고 네덜란드로 갔다가 브로커가 자신의 손전화로 국제전화를 사용하는 등 신용불량자가 되어 한국에 다시 돌아온 탈북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구제가 될 수 있을까요?

마순희: 일단은 남북하나재단의 무료법률상담을 신청하도록 도와드리기는 했는데 먼저 신청한 건들이 이미 예약이 되어서 다음 주로 예약해 놓았습니다. 법률상담을 받아 보아야 어떤 해결방안이 있는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해결 방도는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점, 그리고 건강보조식품 구입비용도 그 동안 외국에 가 있어서 연체된 이자가 더해져서 금액이 원금보다 더 많게 책정된 부분은 해결될 확률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러나 분할지급을 하는 방법으로라도 본인이 사용한 통신요금이나 건강식품 비용 등은 본인이 부담하도록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예진: 아마도 다시는 안 올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마무리를 잘 짓지 않고 떠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마순희: 그런 경우들도 간혹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떠나갔다가 여의치 않아서 다시 돌아오는 거잖아요? 떠나기 전에 주변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디에 가서 살던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떠난 탈북자들 중에는 북한을 황망하게 떠났던 경험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마순희: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을 떠난 이유가 사람마다 서로 다 다르지만 떠날 때의 상황도 서로 다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처 정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처리하지 못한 사례들이 있는가 하면 의식적으로 탈북을 염두에 두고 챙겨가지고 떠난 사례들도 있더라고요.
10여 년 전에 하나원을 한 기에 수료한 지인이 있었는데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자기 고향에서 있었던 사실인데 상점, 한국에서는 슈퍼라고 하지요. 상점에서 점장으로 일하던 사람이 2월과 4월 명절공급을 하면서 받았던 현금을 입금시키지 않고 몽땅 가지고 탈북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몇 달 동안 그 연대적인 책벌로 간장, 된장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 생각만 하면 그 일이 떠오른다고 했는데, 세상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좁더군요.
몇 년 후 그 사람을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서로 안 좋은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저 사람이 내가 말하던 그 상점 점장이라고 몰래 알려주더군요. 서로 내색들을 안 하고 살면서도 많이 불편해 하더라고요. 정말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한반도가 참 좁은 땅덩이 같네요.

마순희: 네. 북한 같은 곳은 정보가 서로 공유가 안 되어 잘 모를 수 있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범죄가 엄중하거나 한 경우에는 인터폴이라고 국제공조 수사를 하여 죄인을 잡아서 넘겨주는 것도 있잖아요?

이예진: 그렇죠. 물론 해외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북한은 예외지만 말입니다. 북한이 폐쇄된 국가다보니 사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 중에는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숨기거나 조금 과장해서 말하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마순희: 아무래도 남한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아 저도 모르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튀어나오는 거라고 봐야겠지만, 그런 거짓말이 다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탈북자들끼리 앉아서 얘기하다 보면 금방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한국이나 제 3국에서의 삶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거잖아요.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힘들고 기억하기 싫은 과거는 아예 지우고 각색하는 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기도 할 거라고 좋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 내게 된답니다. 거짓말을 한 것이 밝혀지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다시 평가해 보게 되더라고요. 언제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꺼리는 일을 했다면 항상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게 살아야 될 것 같네요. 한마디로 발편잠을 못 잔다고나 할까요?
이예진: 과거를 잊고 싶고 덮어두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잘 정리하지 않으면, 잘 치유하지 않으면 이렇게 한국을 떠나면서도 문제를 새로 만들게 됩니다. 현재를 만드는 건 과거라는 사실 잊지 않으시면 좋겠죠.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