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호적을 고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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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 호적은 평생 따라다니는 자신의 족적입니다. 북한의 신원과 같은 거죠. 고칠 수 없지만 탈북자들의 경우 고치고 싶은 호적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호적을 고치는 이유를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 분들이 한국에 와서 곤란해 하는 것 중 하나가 복잡한 서류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특히 신상과 관련한 일들은 자료로 남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기가 어렵잖아요.

마순희: 우리 탈북자들이 북에서 살 때에는 태어나서부터 신분이 등록이 되어 평생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한국에서는 자신에 관한 자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동심문과정에서 자신의 인적사항에 대하여 조사를 받고 진술하게 되고 그 자료에 근거하여 자신에 관한 서류들이 작성되게 됩니다. 말하자면 그 때에 진술한 자료가 평생 자신의 신상기록으로 따라다니게 되는 겁니다.

저희들이 한국에서 첫 합동심문을 받게 될 때에는 같은 가족 구성원이라도 모두 조사가 끝날 때까지 따로따로 독방에서 진술을 하게 됩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의 진술이라도 서로 다르게 되면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정도로 정확하게, 엄격하게 조사한다고 봐야죠. 가끔 언론에 허위진술하고 위장신분으로 입국한 사례들이 나와서 저는 참 대단하다,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혼자라서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예진: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오셨으니까요. 그런데 합동심문에서 거짓말이 통하기가 어렵잖아요?

마순희: 그렇죠. 실제로 자신이 살아온 경력에 대하여 진술하면서도 어린 시절 유치원부터 인민학교, 중학교 과정과 졸업 후 직장생활의 매 시기마다 가족은 물론이고 선생님으로부터 동창생이나 직장동료나 주변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사실을 진술하는 것도 그러한데 만일 의식적으로 어떤 자료를 고치고 싶다고 하면 앞뒤를 맞추기가 참으로 보통이 아닐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조사 자료에 기초해서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기간에 매 개인에 대하여 주민등록등본이 만들어지고 호적이나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학력확인서 등 모든 서류들이 구비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로 보였던 그러한 일들을 작정을 하고 허위로 진술한 사례들도 없지 않아 있더라는 거죠.

이예진: 하나원에서 북한에서 살아온 일생과 가족, 친척, 동네 주민들과의 관계까지 다 확인한다는 말씀인데, 선생님 주변에도 실제로 그런 분들이 계시던가요?

마순희: 살다가 보니 그런 사례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제가 잘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도 여러 가지로 신상정보를 거짓으로 진술한 사람들이 여러 명 되었는데 각자의 이유들이 있었지만 저로서는 어떻게 그렇게 진술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가령 혼자서 온 경우라면 물론 가능하기도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만 우리 식구들 같은 경우에 누가 나이를 한 살이라도 속이거나 하면 네 식구가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고 학교로부터 사회에 나와서 생활할 때까지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짜고 거짓말로 진술할 수밖에 없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어떤 목적으로든지 혹은 크든 작든 신원을 속였다고 하면 평생 법 앞에는 물론이고 가족이나 지인들 앞에 특히는 자기 자신 앞에 떳떳치 못한 괴로운 마음의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예진: 정말 크든 작든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원래대로 신원을 회복하기가 어려운 건가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자신의 신원에 대하여 한 번 작성한 서류는 웬만해서는 고치기가 쉽지 않지요. 물론 고의가 아니라 부주의로, 혹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잘못 기입이 되었을 경우에는 보증을 세우는 등 많은 노력 끝에 수정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했습니다. 이예진: 하나원에 있으면서 이름은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질까봐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나 출신성분 등을 속이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마순희: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경우 이름을 개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이유로, 혹은 신변상의 이유나 새로운 제2인생을 살겠다는 의미로 개명신청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워낙 합법적인 신분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개명해서 부르면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개명이 가능하잖아요.

개명신청은 개명하려는 이름과 개명을 신청하는 사유서를 써서 살고 있는 지역의 관할법원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은 후, 한 달 이내에 거주지의 주민센터에 개명신고를 하면 힘들이지 않고도 개명을 하실 수는 있습니다. 주민등록이나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등은 자동으로 개명된 이름으로 변경되지만 그 외에 운전면허증이라든가 은행 통장들, 각종 자격증 등은 자신이 일일이 알아서 개명한 이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를 속이는 이유도 여러 가지인데요. 한 사례로는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정책이나 제도들이 계속 바뀌는 부분이 많은데 우리가 하나원을 나올 때에는 만 30세 이상이 되면 결혼여부에 관계없이 주택을 주었거든요.

그래서 제 딸들은 30세가 안 되어 주택을 못 받고 한 집에 네 식구가 살게 되었는데 중국에서 이미 주택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입국한 고향에서 온 딸의 친구 중에는 나이를 30세 이상으로 하여 따로 주택을 받아가지고 나온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이 드신 분들 경우에는 60세 이상이면 근로능력이 안되어 노령 가산금을 지급하니까 나이를 속여서 입국서류를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예진: 평생 따라다니는 것 중 하나가 이름과 나이, 그리고 결혼여부도 해당되잖아요. 특히 북한에 배우자를 두고 온 경우에 한국에서 새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배우자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다시 결혼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던데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중혼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에서의 생활을 그대로 진술하다보니 배우자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경우 혼인관계증명서를 떼어보면 북한의 배우자가 올라와 있거든요. 많은 경우 북한에서 이미 결혼생활이 파탄된 경우도 있고 또 오랜 시간 중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갈라져 있다 보니 결혼생활이 이미 끝난 경우가 많지만 서류상에는 혼인으로 되어 있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한 사례를 소개하자면, 하나원 나온 지 한 달 정도 된 여성이 전화를 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남편이 사망했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자신의 혼인관계증명서에는 남편이 등록되어 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사망된 것으로 고칠 수 있냐고 전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사망 소식은 언제 들었는가고 물어 보았습니다. 하나원 나온 후에 북한으로 전화했었는데 아는 사람이 남편이 사망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서류는 본인이 진술한 자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사망으로 고칠 수는 없는데 굳이 사망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았습니다.

이예진: 뭐라던가요?

마순희: 그제야 하는 말이 탈북한 후 중국에서 조선족 남편과 함께 살아왔는데 그 남편을 데려오려니 국제결혼으로 수속해야 하는데 혼인관계가 정리되지 않아서 남편의 사망으로 서류를 고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성분에게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북한의 남편과 이혼으로 서류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고 그것도 본인이 하나원 나온 후 6개월 이후에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중국인 남편과의 국제결혼도 6개월 이상 시간이 지난 후에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예진: 실제로 이런 경우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북한에 배우자가 있는 경우 사망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는 거죠. 소문만 듣게 되고 말이죠. 서류로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건 앞으로 계속될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이 시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남북하나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